묻히지 못한 자들의 노래
제스민 워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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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작가인 모양인데 처음 읽었다. 1977년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태어나 세 살 때 가족과 함께 미시시피 주 더리즐DeLisle로 이주해 공립학교 흑인 반에 다니다가 똑똑한 ‘흑인 여자’ 아이들이 대개 그렇다고 하는 것처럼 반에서 따돌림을 당해 사립학교를 거쳐 스탠포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라고 Wikipedia에 씌어 있다. 워드의 부모가 미친 모양이다. 그나마 미국에서 흑백 갈등이 다른 곳보다는 덜 한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지랄맞은 주 가운데 하나인 미시시피로 이사해 가다니 말이지. 놀랍게도 이이가 사립학교로 전학할 수 있었던 건 백인들의 도움 덕분이라고 한다.

  그래도 워드의 정체성은 여지없이 흑인이라 이 책 <묻히지 못한 자들의 노래>에서 ‘그나마’ 정상적으로 보이는 백인은 늙은 여인 메기, 딱 한 명만 등장한다. 나머지는 주인공 조조의 생부이며 범죄자인 마이클, 태생적 인종차별주의자이자 전직 보안관인 빅조지프, 메기의 친구이지만 현재는 싸구려 술집 ‘콜드 드링크’의 여주인 글로리아, 콜드 드링크의 마약중독 상태인 여급 미스티, 미스티의 남자친구이며 지금은 악명 높은 미시시피의 파치먼 교도소에 마이클과 함께 복역 중인 비숍, 이들의 변호사이자 미스티와 사이좋게 마약을 복용하는 알, 사냥 실력이 자기보다 좋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열 받아 흑인 청년 기븐의 목과 가슴에 사냥총을 쏴 죽이는 마이클의 사촌 등등. 여기까지만 이야기해도 소설이 펼쳐지는 장소가 미시시피 주인 것과 함께 흑인 소설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근데 제스민 워드가 쓴 이 소설책이 ‘전미도서상 National Book Award'를 받았으며, 무려 하버드를 나온 전 미국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2017에 자신이 읽은 가장 훌륭한 책으로 꼽았다고 한다. 그냥 전미도서상, 하니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미국의 작가-출판사 시스템이 만들어낸 숱한 책 가운데 딱 한 권을 골라 주는 상으로, 영화로 말하자면 아카데미상처럼 다분히 로컬적이기는 하나 꽤 권위가 있다. 요샌 미국 밖의 작품에도 상을 주는 모양이다. 적어도 이 상을 타려면 위에서 나열한 등장인물이 흑인 차별이란 주제를 향해 평면적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제스민 워드는 그리하여 미시시피 주에서 가끔 엮어졌던 커플인 백인 남자와 흑인 여자 부부를 등장시킨다.
  완고한 인종주의자 빅조지프는 아내 메기와의 사이에 마이클을 낳고, 흑인들이 많이 사는 실제 지명인 부아 소바주에서 필로멘과 리버 레드 부부는 리버가 쉰 살에 아들 기븐, 삼 년 후 딸 레오니를 낳는다. 리버에게는 스태그라는 이름의 형이 있는데 너무 잘생긴 흑인이라 하루는 술집에서 백인과 시비가 붙어 먼저 백인이 스태그의 두개골을 이용해 위스키 병을 깨부쉈고, 두개골과 두개골을 감싼 피부에 격한 통증을 느낀 스태그는 문제의 백인 옆구리를 칼로 찌르고 리버한테 도망치는 바람에, 스태그는 폭행죄로 길게, 당시 열다섯 살 먹은 리버는 범인은닉죄로 5년 형을 받아 파치먼에 입소한 전력이 있다. 그러나 리버는 동물의 말을 알아들어 탈주범 체포 목적으로 키우는 개를 사육하는 일을 하면서, 천성이 착해 절도죄로 3년형을 받고 살벌한 파치먼에 들어온 열두 살짜리 리치라는 소년범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 했으며, 세상이라는 것이 참, 몇 십 년이 흘러 소년이었던 리치가 우여곡절 끝에 리버를 찾아오기는 하지만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출소 후 결혼을 하고 무려 쉰 살에 아들을 낳았으니 얼마나 귀한 자식이었는지, 마치 신에게서 받은 듯하다고 이름마저 ‘기븐Given'이라고 지어준 잘 생기고, 몸 튼튼하고 특별히 미식축구를 잘해서 대학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받는 청년은, 위에서 말한 사냥 사건 때 보안관 빅조지프의 조카에 의하여 총에 맞아 세상을 뜨는 불운을 당한다. 보안관은 단순 사고로 처리하여 법원은 범인을 파치먼 3년 형에 처하는데 단, 형의 집행을 2년간 유예하는 판결을 얻어내 이를 창피하게 생각하는 범인의 사촌 마이클이, 처음에는 우연히 나중엔 진짜로 사랑해서 레오니와 연애관계에 들어가고,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직 고등학교 졸업도 하지 않은 레오니로부터 아들 조조를 만든다. 그리고 한 십 년 후, 딸을 하나 더 보태 이름을 미카엘라라고 짓는다.
  그러나 온 몸에 문신투성이인 마이클과 레오니는 기본적으로 부성, 모성을 상실한 성격으로 태어났다. 이들이 꼭 나빠서가 아니라 생겨먹기를 사랑은 하지만 자신들의 욕구, 이기심이라고 하기엔 좀 야박스런 면이 있는 그런 성향으로 인해 새끼들을 외조부모에게 맡겨놓고 거의 나 몰라라 하고 살았다. 그래 조조와 ‘케일라’라고 부르는 미카엘라는 외조부모를 아빠, 엄마라고 부르고 친부모에게는 마이클, 레오니라 그냥 이름으로 부르니 족보 하나는 가히 바둑이 족보다. 친가는 한 술 더 떠서 철저한 인종주의자 빅조지프는 애를 둘이나 낳은 며느리가 자기 집 근처에 오는 걸 보고 엽총부터 챙겨서 득달같이 달려오는 모양이 너무 공포스러워 며느리로 하여금 꽁무니를 빼게 만들 정로라 더 할 말이 없다.
  자,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기엔 더 없이 개차반이 두 가정을 보고 있다. 빅조지프가 이끄는 백인 가족과 리버의 흑인 가족. 이 가족들이 화합, 아니면 화해, 그것도 아니면 적어도 서로 이해는 하겠지? 그래야 소설이니까. 그러나 아니다. 이 책은 흑인과 백인의 상호 이해나 화해 또는 화합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혼혈의 배치부터 그렇다. 남부 골통 미국인들이 그나마 인정해주는 커플이 흑인여자-백인남자 부부. 반대일 경우를 미시시피 백인 촌놈들은 눈뜨고 그 꼴을 못 본다. 책의 주제가 인종 간 이해, 화해, 화합이라면 극단적으로 백인여자-흑인남자 커플을 등장시키고 갖은 고생 끝에 이웃, 지역사회의 인정을 얻어내는 해피엔드로 만들었기 십상이다. 워드는 책을 통해 과거에 행해졌던 흑인을 향한 가혹함이 현재에도 유효함을 설명함과 동시에 흑인들이 겪었던 슬픔과 겪고 있는 아픔의 해원을 위해 책을 썼다고 봐야 하겠다. 물론 어떤 식으로 해원의 한 판 굿을 벌였는지는 얘기하지 않겠다. 독자의 취향에 따라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 독후감은 이쯤에서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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