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김숨 지음 / 창비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홉 편의 단편소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김숨으로 말하자면 장편 <바느질하는 여자>를 읽고 섬세한 신경줄을 건드리는 솜씨에 반했던지라 이이의 다른 책을 선택하는 데는 별 고민이 없었다. 이 책 《국수》에서도 김숨 특유의 화법, 가족간의 의사 불통과 그것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상호간의 오해가 특유의 섬세한 씨줄과 날줄로 섬뜩할 정도로 꾸려나가고 있다. 특히 표제작인 <국수>와 첫 번째 실린 <밤차>, 그리고 구제역 당시 돼지 살처분을 다룬 <구덩이>, 이렇게 세 편을 재미있게 읽었다. 재미? 여기서 얘기하는 재미는 무릎은 쳐가며 웃을 수 있는 재미가 아니라 김숨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서늘함 같은 걸 얘기하는 건 물론이다. 내가 무슨 평론가도 아니고 흔한 서평가도 아니니 단편소설을 놓고 스토리를 소개해가며 작품을 뜯어 해부하고 분석하는 일은 못하겠고, 그저 느낌을 말하자면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 그냥 서늘한 슬픔 또는 상실, 이 정도가 다다.
  많은 작품이 죽음과 질병을 다루고 있다. 첫 번째 <밤차>는 대장암 말기 수술을 받고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려운 며느리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밤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 시어머니, 밀가루 반죽을 해 국수를 해주던 의붓어머니가 설암에 걸려 혀를 잘라내기 전 이제 예전에 그이가 해주었듯이 국수를 밀어 끓여주는 <국수>, 아흔이 넘었으니 호상이긴 하겠으나 어쨌든 치매에 이어 죽음을 맞은 어머니를 앰뷸런스에 싣고 고향으로 향하는 자매 이야기인 <옥천 가는 날>, <고요한 밤, 거룩한 밤>에서는 하필이면 영하 18도의 맹추위가 닥친 겨울밤에 보일러가 고장이나 얼어 죽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선 폐지 줍는 남자가 나오고, 전립성비대증이 심각해 소변을 참지 못해 결국 차 안에서 바지에 방뇨를 해버리는 남편과 갑상선암 때문에 한쪽 갑상선을 떼어낸 아내가 <명당을 찾아서>에 등장하고, 심각한 정서장애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남편과 직장에서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그 밤의 경숙>, 아내가 직장암 말기라 수술을 했지만 전신에 암이 퍼져 의사가 배를 갈랐다가 그냥 덮어버리고 마는 <구덩이>, 마치 부조리극의 주인공 같은 인물과 유방암 말기의 어머니를 등장시키는 마지막 작품 <대기자들>까지 독자들은 모든 작품에서 아프거나 거의 죽음에 가까운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다.
  하긴 세상에 누가 있어 자신이 정상인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국수》의 단편들에서 등장하는 환자, 죽은 자들은 작가가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었을 수도 있는 가족 또는 인간 사이의 불통과 불화, 오해 등을 더욱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치명적인 말기 암환자, 이미 죽음을 예약한 환자들을 자주 캐스팅한 것 같아 약간 불만이다. 김숨의 작품목록을 보니 ‘다작’이라 하기에 충분하다. 자신의 생각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가장 약발이 잘 받는 방법으로 아직까지는 치명적인 병이라 여기는 암환자들을 쓴 것을 두고 독자가 뭐라 할 수는 없다. 작가의 권리이니까. 그래도 아홉 작품 가운데 가망이 없는 말기 암환자가 네 명, 완치가 되었으나 한쪽 갑상선을 절제해버린 인물이 한 명 등장하면 빈도가 아무래도 좀 많다,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근데, 전혀 가능하지 않겠지만, 김숨, 이 사람 한 번 만나서 더도 아니고 딱 소주 한 병씩만 마셔보고 싶다. 얼마나 우울한 사람이면 글들이 거의 빠짐없이 이리 시릴 수 있을까가 궁금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인 2021-05-10 1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세익스피어와 벤 존슨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그 시대에 인기 있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세익스피어만을 기억합니다.
누군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익스피어는 캐릭터를 믿었고,
벤 존슨은 자신을 믿었다.
저는 가끔 이 말을 떠올립니다.

Falstaff 2021-05-10 20:22   좋아요 0 | URL
이 책 쓴 작가세요? 댓글이 진지해서 혹시 하는 마음에. ㅎㅎㅎ 아니시겠지요 뭐.
별 신경쓰지 마세요. 그저 책 읽은 소감이 그렇다는 ‘독후감‘일뿐입니다.
행인께서 하신 말씀이, 어떤 의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맞습니다. 제가 틀렸습니다.
그래도 ‘누군가‘의 얘기보다 아주, 아주, 아주 가끔은 그냥 독자의 말도, 혹시 알아요, 더 들을 만한지. 아, 물론 이 독후감이 그러하다는 건 아닙니다.
아무쪼록 행복하세요. 다음엔 익명의 벽 앞으로 나오시면 더 좋겠습니다만 그저 바랄 뿐입니다. 요구는 아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