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대산세계문학총서 93
나탈리 사로트 지음, 권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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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산세계문학총서를 간행하는 문학과지성사는 책을 낼 때 책의 분류를 정확하게 밝히는 미덕을 지녔다. 예를 들면, 시집, 작품집, 단편선, 장편소설, 희곡 선집이라고 책 표지에 딱 박아 놓는다. 그런데 이 책은 예외다. 1983년. 작가가 여든세 살이 되던 해에 출간했다. 책 뒤편에 역자의 해설을 읽어보면, 1979년 인터뷰에서 자신은 자서전을 쓸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으나 4년 후인 1983년에 이 책을 발표할 당시부터 소설, 희곡과 같은 장르를 표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85년에 다시 문고판으로 출간했을 때는 앞표지에 여섯 살 무렵의 작가의 사진을 실어 작품이 작가의 자서전적 성격을 밝힌 바 있다고 한다. 이 책의 표지는 문고판 표지에 있던 사진이 아니라 ‘세실리아 보’라는 화가가 그린 <어린 시절의 마지막 날>이란 그림이다.
  나탈리 사로트라고 하면 당연히 누보로망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을 듯. 하여 뷔토르, 로브그리예, 유르스나르와 뒤라스의 일부 작품처럼 주관적인 감정의 표현을 극도로 절제하는 형식의 글을 써왔을 것이다. 이 자전적 소설 <어린 시절>에서도 작가는 자신이 쓰는 자신의 자전 소설을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또 하나의 자신을 등장시킨다. 즉 소설가로의 자신과 지금 쓰고 있는 글이 진실에 가까운지 아닌지를 묻고 확인하기 위한 또 다른 나. 아 두 명의 나가 계속 대화를 해가며 사실 여부를 확인한다. 여든세 살의 노인이지만 만일 정신이 멀쩡한 백 세 살의 가까운 생존자가 있었다면 그이를 인터뷰하기 위해 기꺼이 양로원을 방문해 호스피스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을 듯하다.
  작가가 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글을 썼을까. 이이는 좀 복잡한 가정사를 가지고 있다. 완전한 20세기 사람으로 1900년에 모스크바 근교 이바노보의 유복한 유대인 가정에서태어나 1999년에 임종했다. 작품을 보면 아버지는 딸을 천주교든 개신교든, 러시아 정교든 어떤 형태의 기독교에도 개방적으로 키우면서도 자신은 확실하게 유대인의 정체성을 밝히고 자존심을 잃지 않았다고 한 반면, 어머니도 유대인인지는 정확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유년시절이 복잡한 건 당연히 부모 탓이다. 젖을 떼자마자 부모가 이혼해서 어머니는 러시아, 아버지는 프랑스에 거처를 정하고 각기 새로 결혼을 하는 바람에 하여간 엄마 하나, 어머니 하나, 아빠 하나, 아버지 하나, 이렇게 네 명의 직계가족을 가지게 됐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히 이복동생들도 태어난다.
  여든세 살의 노파가 자기가 기억하기에 가장 오랜 시간부터 중학교에 입학하기까지 어린 시절을 쓴다는 것. 그건 그이가 남들과 비교해서 복잡한 가정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 작가라는 직업 자체가 언젠가는 자신의 옛 시절에 관하여 써야 하는 숙명 비슷한 것을 갖고 있어서가 아닐까. 결과물을 발표하던지 말든지는 별개로 하더라도. 그리하여 자신의 옛 시절은 쓴 결과물은 글쓴이에게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 거 같은데, 문제는 동시대를 살지 않은 독자가 읽을 때 특정인의 과거가 중요한 일이 될 것인가, 과거 속에서 공감할 교집합이 얼마나 될 것인가 아닐까 싶다. 그것도 아니라면 과거를 회상하는 정서가 마음에 와 닿았는가 하는 것일 수도. 당시엔 부모가 이혼해 구대륙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겨가며 사는 일이 상당히 특별한 일이었겠지만 이젠 그런 가족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을뿐더러,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20세기 초 부르주아 계급의 한 아이의 추억 또는 스토리가 그리 감격적이지도 않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임에도 모국어인 러시아어와 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독일어로도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트레이닝을 시킬 수 있는 계급의 영애의 어린 시절이 드라마틱하기도 쉽지 않을 터. 원래의 코스라면 평생 손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책이나 슬슬 읽다가 연회장을 빛내주는 역할로 일생을 보내야 하겠지. 그러나 누구의 인생도 다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의붓어머니와 이복형제 사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과 친모와 친부-계모 간의 화해 불가능한 다툼 같은 것 역시 어린 아이의 눈으로 보기에 심각하지 않고, 이제 다 늙어 생각하니까 그렇겠거니 하는 거. 나탈리 사로트도 이것을 구태여 숨기지 않는다.
  나도 이 책에 관해서 독후감을 굳이 더 늘리지 않겠다. 그냥 늙은 작가가 자신의 소년기를 회상해서, (그나마)이게 중요한데,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객관적인 기억을 기록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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