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열매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구판) 4
나탈리 사로트 지음, 남수인 옮김 / 열림원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나탈리 사로트라면 1950년대 누보로망의 기수로 알고 있었는데, 책의 앞날개를 보니 “이제는 그와 같은 분류의 좁은 틀에서 벗어나는 독자적인 시학을 가진 세계적인 대가로 평가되고 있다.”고 쓰여 있다. 책의 한국어 초판이 2002년. 사로트는 1900년에 러시아에서 태어나 1999년까지 살았다. 그러니까 러시아 출생에, 프랑스에서 살면서 파리 문과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해 옥스퍼드에서 수학한데다가 1921~22년엔 베를린에서 역사와 사회학을 수강하며 외국인을 위한 독일어 학사 자격증을 획득했단다. 이 정도면 언어에 수재가 있다고 봐야 하겠다. 어떤 이유로 사로트를 읽어보자고 마음을 먹었는지 벌써 잊었다. 이번에 사로트를 두 권 장만해서 1963년에 출간한 <황금열매>를 먼저 읽고 며칠 후에 83년, 작가의 나이 여든세 살에 출간한 <어린 시절>을 읽을 예정이다.
  먼저 <황금열매>를 읽었다. 1963년 작품이면 이이가 누보로망의 간판을 달고 활동할 때라고 해도 그리 틀리지 않을 듯하다. 당연히 책은 읽기 쉽지 않다. 나도 첫 페이지를 열고 읽어나가긴 했는데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 근 50쪽까지 진도를 빼며, 읽어나가다 보면 저절로 스토리를 알 수 있겠지 싶었는데, 천만의 말씀. 처음부터 다시 읽어도 이하동문일 거 같은 느낌이 (강하게)들었다. 이럴 때 해결방법의 하나, 최후의 방법이기도 하고. 조금 쪽팔리지만 어쩔 수 없다. 책의 제일 뒤편, 해설을 조금 읽어보는 것이다. 그래 역자해설 세 페이지를 읽고 다시 소설의 첫 페이지부터 두 번째로 읽었더니, 거봐라, 쪽팔린 건 순간이고 재미있는 건 적어도 며칠은 간다.
  첫 장면에 <세상의 기원>으로 유명한 화가 쿠르베의 전시회를 나서는 커플이 등장한다. (<세상의 기원>은 네이버 이미지 검색에는 나오지만 구글 이미지에선 19금 처리해서 보기 힘들다. 세상에 야만스런 구글 같으니라고. 교양과목을 말이지.) 누군가가 쿠르베의 복제화가 그려진 그림엽서를 건네자 남자는 엽서를 거의 쳐다보지도 않고 여자에게 건넨다. 엽서를 준 인물은 당연히 기분이 나빠 남자를 째려보고, 민망해진 여자는 남자의 에티켓 없는 태도에 불만을 표시한다. 알고 보니 남자는 며칠 전 관객이 뜸한 평일을 골라 쿠르베 전에 다녀왔단다. 이때 하필이면 신문에 미술평론을 쓰는 ‘뒤뤼’라는 작자와 마주쳤는데 입에 침을 튀며 “대단한 전시회예요. 모두 걸작이더군요. 특히 <개의 두상>이 끝내줬어요.”라고 허풍을 떨었단다. 그러면서 평론가들의 몇 가지 모습, 형편없는 졸작을 끝없이 치켜세우는 벨록, 콩과 팥을 구별 봇하고 언제나 터무니없는 평론을 써 갈겨대는 마자유 등을 거론하며 이런 짓은 영화, 연극, 소설, 연주회, 전시회가 다 마찬가지라고 23쪽까지 떠들어댄다.
  그럼 <황금열매>라는 그림이 나오느냐고? 아니다. 브레이에라는 사람이 쓴 <황금열매>라는 길지 않은 소설이 진짜 주인공, 主人公? 사람이 아니니까 주물공主物公 혹은 주작품공主作品公 정도 되겠구나. 작품은 ‘황금열매’라는 소설의 탄생부터 소멸까지 한 사이클을 그린다.
  처음에는 “그런데 저.... 황금열매 읽어보셨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가 만나는 사람마다 반드시 물어봐야 하는 지식인들의 필수 대화소재가 된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간혹 극소수 조심스레 “황금열매가, 글쎄요, 난 별로인데요. 온통 그 얘기뿐이기는 하지만 말이지요.”라고 솔직하고도 용기 있는 사람도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훌륭하다. 우리 문학에서 그에 비견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스탕달 이후로, 뱅자맹 콩스탕 이후에 쓰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브륄레가 신문에 기고한 이후에 감히 ‘황금열매’에 대해 저항하는 분위기는 단번에 분쇄되어 버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르그리 박사가 ‘황금열매’의 구성에 약간의 결함이 있다고 이야기하자 박사에게 동조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발현하기 시작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건 “언어가 고전적인 것 같지 않고, 복잡하고 바로크적이고 무겁고 때로는 어색하기까지 하며 기본적으로 어려운 책이지만, 현대성 때문에 작품은 마음에 든다.”는 수준에서 멈춘다.
  책 ‘황금열매’를 처음에 사람들이 규정하기를, 속된 말들에 실려 가는 모든 것들, 예컨대 ① 물컹한 것, 흐리멍덩한 것, 줄줄 흐르는 것, 끈적이는 것들을 절대 용납하지 않으며, ② 요란한 웃음, 이글거리는 눈초리, 흥분된 몸짓, 땀에 젖은 손 같은 것 없이, 품격 있는 조심성, 더없이 우아한 정중함, 수줍음, 당당한 자부심으로 충만하다는 거였다.
  이러던 것이 조금 더 시간이 가면 오랜 친구들끼리 비밀리에 속삭이기 시작하기를, 아무리 고쳐 생각해도 사람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는 ‘황금열매’가 과즙이 풍부한 과육을 기대하는데 씹기만 하면 이를 부러뜨리는 금속 열매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들린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이들의 눈과 미소에는 호의, 공모성, 친밀감, 감탄이 동반되는 건 당연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금열매’가 아주 멋진 책이라는 판결이 여전히 유효하지만 어느 날 누군가가 감히 큰 소리로 말을 하지 못하고 쭈뼛거리며 옆에 와서 떨리는 목소리로 “근데 이거 모조품 같은데요, 그렇죠?”라고 의문을 표시하기에 이른다.
  정말 브레이에가 누구를 차용해서 ‘황금열매’를 썼을까, 아니면 작가가 창조해낸 작품을 평론가와 독자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헤쳐보고 해부하고 심지어 발기발기 찢어 뒤져본 후에 이 부분은 틀림없이 셰익스피어야, 여긴 토마스 만인데? 근데 브레이에가 독일어는 할 줄 알아? 프랑스어 판이 나왔잖아, 아냐, 조이스를 참고한 것이 분명해. 등등의 숱한 뒷이야기들. 그 후에 이 책은 어떻게 됐을까? 그것까지는 독후감에서 얘기해주지 못하겠다. 괜찮은 책이니 직접 읽어보시고 알아내시라. 근데 읽기가 수월하지는 않으니 각오는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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