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면 범우문고 277
심훈 지음 / 범우사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충청남도 당진 시로 들어가는 초입에 예부터 줄다리기로 이름난 고을이 하나 있었으니 기지시다. 기지시리로 가자면 당진 행 왕복 이차선 도로로 당진읍내 거진 가다가 왼쪽 오른쪽 작은 로터리가 나오면 바로 거기가 거긴데, 로터리를 넘지 말고 근방에다 일단 차를 세운 후 가게 앞에 의자를 내놓고 앉은 영감님한테 냉장고 속 시원한 사이다 병이나 하나 들이밀고 ‘필경사’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묻는 편이 좋다. 그래 골목을 뒤져 이젠 왕복 일차선의 농로를 따라 야트막한 언덕(이랄 것도 없는 오르막)을 따라 가면 송림 입구에 흐트러진 초막이 한 채 있으니, 붓으로 밭을 가는 필경사筆耕舍라. 이제 서해안 시대를 맞아 송악 IC로 가기 위해 34번 국도에서 38번으로 갈아타면 얼마 가지 않아 왼편 언덕배기에 고동색 표지에 흰 글씨로 ‘필경사’라 씌어 있으니 얼마나 편한 세상인가.
  필경사. 서울 노량진에서 태어나 경성일고, 지금의 경기고등학교를 다니다 3.1 만세운동에 가담하여 장렬하게 퇴학을 맞은 후 중국 유학을 한 댄디보이 심훈이, 만년에, 그래봐야 만 35세에 요절을 해 만년이랄 것도 없지만, 하여간 죽기 4년 전이니까 만년은 만년 아닌가 싶어서, 그때 이미 서울 생활을 접고 당진에 정착한 부모님을 따라 멀고 먼(그러나 지금은 맘만 먹으면 한 시간 반이면 도착할 수 있는) 당진으로 내려가 붓으로 세상의 밭을 가는 필경사를 짓고 글을 썼으니, 이 집에서 쓴 대표작이 바로 조선의 대표적 브나로드 문학작품인 <상록수>. 내가 유일하게 읽어본 심훈. 그것도 어느 새 40년이 훨씬 넘었다. 어휴, 세월이란 대체.

 

​심 훈


  나는 한 번도 심훈을 시인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신문기자 출신의 소설가일 뿐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가 쓴 시 <그날이 오면>을 읽을 기회가 있어서, 이후 언젠가는 심훈의 시집을 한 번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참 오랜 세월 끝에 드디어 이이의 시집을 들춰보게 된 것. 심훈. 옛 사진에 포토 샵으로 포장한 반半 초상화를 보면, 역시 부잣집 도련님, 거기다가 댄디보이의 모습이라 이이가 그리 억센 울분과 갈망과 염원을 지니고 있었는지는 몰랐었다. 그러니 이쯤에서 <그날이 오면>을 한 번 읊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
  이 목숨 끊지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둘처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 1930.3.1. (첫 번째 연 넷째 줄 ‘끊지기’는 ‘끊어지기’나 '끊기기'의 고어, 또는 시어, 아니면 출판사 오식인 것 같습니다.)



  심훈 역시 시인으로서 자신의 은밀한 사생활의 모습도 시어를 통해 고백하기도 하지만, 예상 외로, 거의 대부분의 시가 식민지 조선인으로 살아가는 어두운 광경과, 독립을 향한 애절한 갈망,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스러진 선후배 동지들에 관한 애절한 안쓰러움 같은 것들이다. 놀라운 사실이었지만 이 독후감을 읽는 분은 아시고 계셨을 듯하니 나는 반성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이겠다. 예를 들어 <만가輓歌>라는 노래의 일부를 보자.



  궂은 비 줄줄이 내리는 황혼의 거리를
  우리들은 동지의 관을 메고 나간다.
  만장도 명정도 세우지 못하고
  수의조차 못 입힌 시체를 어깨에 얹고
  엊그제 떼메어 내오던 옥문을 지나
  철벅철벅 말없이 무학재를 넘는다.


  비는 퍼붓듯 쏟아지고 날은 더욱 저물어
  가등街燈은 귀화鬼火 같이 껌벅이는데
  동지들은 옷을 벗어 관 위에 덮는다
  평생을 헐벗던 알몸이 추울 상싶어
  얇다란 널조각에 비가 새들지나 않을까 하여
  단거리 옷을 벗어 겹겹이 덮어준다.  (부분) - 1927. 9.



  동지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모진 고생을 하다 거의 죽어 나왔나보다. 출옥한지 불과 며칠 만에 세상을 등진, 수의조차 입히지 못한 알몸을 그냥 얇은 관에 담아 비가 오는 황혼에 몇 명의 동지들이 비를 맞으며 서대문 형무소 근방의 무악재 고개를 넘어가는 모습이다. 비가 온다니 땅이 언 겨울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추울까봐, 옥 속에서 엄동의 세월을 보내고 이제 자유를 찾은, 넋이 떠난 동지가 추울지도 몰라 동지들이 자기 옷을 벗어 관을 덮어줄 때 가로등은 도깨비 불 같이 껌벅이던 어스름 녘.
  반면에 슬픈 희망의 노래도 있다. <어린이 날>에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해마다 어린이날이면 비가 내립니다.
  여러분의 행렬에 먼지 일지 말라고
  실비 내려 보슬보슬 길바닥을 축여 줍니다.
  비바람 속에서 자라난 이 땅의 자손들이라,
  일 년의 한 번 나들이에도 깃이 젖습니다그려.


  여러분은 어머님께서 새 옷감을 매만지실 때 물을 뿜어 주름살 펴는 것을 보셨겠지요?
  그것처럼 몇 번만 더 빗발이 뿌리고 지나만 가면 이 강산의 주름살도 비단 같이 펴진답니다.


  시들은 풀잎만 얼크러진 벌판에도 붐이 오면은
  하늘로 뻗어 오르는 파란 싹을 보셨겠지요?
  당신네 팔다리에도 그 싹처럼 물이 올라서
  지둥치듯 비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말라고 비가 옵니다.
  높이 든 깃발이 그 비에 젖습니다.  - 1929.5.5. (전문)


  그러나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비분강개의 시 몇 수를 빼고, 심훈의 시를 상찬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 나는 시를 잘 모른다. 이이가 더 오래 살아 한 여든 살 쯤에도 시를 썼다면 내게 훨씬 와 닿는 작품을 많이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하여튼 서른 몇까지 젊은 심훈의 울분과 갈망, 격정과 슬픈 희망과 깊은 애도의 시편들에 나는 공감할지언정, 어쩐지 조금은 미숙하고 거친 것 같다. 이이의 정 반대편에 선 글 좋은 미당의 시를 읊고 바로 뒤에 읽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런 내 의견이 옳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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