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버트 조지 웰스 - 눈먼 자들의 나라 외 3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6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최용준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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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버트 조지 웰스, H.G. 웰스의 책은 <투명인간>과 <모로 박사의 섬> 두 권을 읽었다. 그 외에도 <우주전쟁>이나 <타임머신>같은 과학 추리극, 혹은 과학적 픽션, 자칭 ‘SF 소설의 아버지’다운 작품이 있으나 장편이라면 읽은 두 권으로 만족하겠다. 그래 현대문학사의 세계문학‘단편선’이 아니었다면 그냥 넘어갔을 작가이지만 과연 SF의 아버지가 쓴 단편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읽어보게 됐다. 물론 33편의 작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읽을 수 있다는 유혹도 큰 몫을 했고.
  조지 웰스의 흥미는 과학, 우주, 지적인 우주생명체, 생체학, 생물학, 심지어 심령학까지 인간의 섬세한 감정의 선을 따라가는 기존 문학이 해왔던 것들을 빼면 나머지 거의 모든 분야에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첫 작품 <퇴짜 맞은 제인>은 자기하고 연애하던 배달부 윌리엄이 상점에서 판매원으로 승격을 하고, 당연히 이에 따라 급여가 올라가니 생각이 달라져 다른 여성과 결혼한 것에 열을 받아, 결혼식이 끝나고 ‘신랑 신부 행진’ 이후 교회 밖에서 하객들이 딸 아들 많이 낳으라고 쌀을 뿌릴 때, (자신을 걷어찬 신랑이 아니라) 신부를 향해 장화를 던졌지만 엉뚱하게 불쌍한 신랑의 눈두덩에 맞은 일은 코믹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작품은 어째 조지 웰스치고는 조금 낯설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상적 사건이어서 조금 의아하기는 했다. 그러나 두 번째로 실린 <원뿔>에 이르러 자신의 아내와 불륜관계를 맺어오다가 내일 야반도주를 획책하는 오랜 친구를 유인해 제철소의 용광로 부근에 던져버림으로써 처참하게 태워 죽이는 리얼 묘사를 읽으면, 역시 웰스, 라는 말이 비로소 나오게 된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한 뻥쟁이 생물학자가 위조 추천장을 들고 자신을 방문한 자에게 푸른색의 작은 병 속에 든 것이 살아있는 콜레라균이라고 했다가 방문객이 알고 보니 테러리스트이어서 병을 훔쳐 달아난다. 긴박한 마차 추격전 끝에 급박한 처지에 이른 테러리스트가 콜레라균을 마셔버려 스스로 생물학전 병기가 되어버리는 사건. 그러나 병 속에 든 건 전염병 콜레라가 아니라 온 몸을 푸르게 만드는 정체불명의 병원체였다는 <도둑맞은 세균>으로 초반부부터 자신이 직접 자기 작품을 골라 만든 단편집에 기름칠을 한다.
  이어서 동물의 의식을 혼란하게 만드는 향기를 내뿜은 후 촉수를 뻗어 피를 빨아 먹는 아름다운 흡혈 식물, 보르네오 섬에 있는 천문대에 날아든 희귀한 큰 날 원숭이(large flying ape) ‘클랑우탕’과의 혈투, 지표 아래서 300년 전에 살던 괴조 ‘아이피오르니스’의 알 세 개를 발견해 이 가운데 하나를 부화시켰다가 새끼 상태에서 벗어나자 어쩔 수 없이 새와 생사가 걸린 혈투를 벌여야 했던 이야기, ‘공간의 뒤틀림’ 현상으로 매우 좁은 시야만 갖게 된 한 남자가 런던에서 남극의 현장 중계를 보게 되는 이야기, 자신을 학대하는 발전기 기사를 바로 그 발전기로 감전시켜 태워서 죽이는 아시아 흑인 이야기, 자신의 집에 밤을 틈타 들어온 거대 나방이 일으킨 망상, 환각상태 이야기, 스페인 보물이 묻힌 밀림 속에서 황금 덩어리를 발견하지만 지도에 중국어로 표시되어 있는 방식으로 죽음을 맞는 탐험가 이야기, 머리 좋은 천애 고아이자 건장한 젊은이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유증하는 뛰어난 정신과학자의 불멸 이야기, 수술을 받다가 간 문맥이 절단당해 죽음에 이르러 저 세상을 구경했다가 살아나는 이야기, 하플로테우시스라는 이름의 해저 두족류(오징어, 문어, 낙지, 주꾸미, 꼴뚜기 같은 종류)와의 치열한 한 판 승부 등등 실로 신기한 소재들의 만찬이 독자 앞에 벌어진다.
  저자 서문에서 허버트 조지 웰스는 이렇게 말한다. 책의 뒤편에도 씌어있다.
  “나는 이 책이 신사의 서재보다는 요양소 침대나 치과의 응접실, 기차에 있었으면 좋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꺼번에 읽는 것보다는 잠깐 읽고 또 잠깐 읽고 했으면 좋겠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꾸며 낸 이야기들의 모음집이며, 상당수는 쓰는 동안 무척 즐거웠다. 운운.”
  맞다. 위에 내가 소개한 것들을 보시라. 참으로 기묘한 이야기가 망라되어 각기 한 편씩 읽으면 실로 흥미가 솟을 만한 작품들이다. 그런데 내가 책을 읽는 방식은 한 권 잡으면 다 읽을 때까지 다른 책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편. 그래 한 방에 이 책도 다 읽었는데, 이틀 반 걸렸다, 처음엔 정말 재미있게, 몰두해가며 읽었으나, 틀림없이 보통의 사람은 죽을 때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할 너무도 낯선 이야기가, 너무도 자주, 무려 서른 세 번이나 나오니까 작품의 효용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말았다. 이러한 과학, 지적인 우주 생명체, 생물학, 변종 포유류부터 듣도 보도 못한 해저동물에서 흡혈식물을 거쳐 유령과 죽음 이후의 세계까지 망라되는 모든 것이, 한 300쪽 넘어가면 점점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바뀌어 가는 것을 독자 스스로 느끼게 된다. 설마? 의심스러운 분은 직접 나처럼 무식하게 읽어보시라.
  어쨌든 이 작품집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위에 인용한 작가의 말대로 하는 것이리라. 그리하면 적어도 일 년 동안은, 보름에 한 편 정도를 읽는다면, 엽기발랄한 한 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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