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할 것인가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88
니꼴라이 체르니셰프스끼 지음, 서정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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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는 1828년 사라토프에서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나 신학교에 다니다가 자퇴하고 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역사, 철학, 언어학을 배운다. 이후 본격적으로 유물론에 빠져, 자연스레 자유사상과 혁명에 집중하게 된다. 당연히 이로 인해 1862년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수용소에 투옥되고, 이 때 수용소에서 대표작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집필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1889년까지, 러시아가 얼마나 넓은지 감안하시기 바라는데, 전국의 수용소를 전전하며 무려 27년간 수용생활을 하다가 61세에 석방이 되고, 곧바로 죽는다. 수용소에서 무슨 병이 들었는지, 아니면 갑자기 환경이 바뀌면서 면역력이 약해져 급사를 했는지는 책 뒤에 쓰인 연보만 가지고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책의 내용은 당연히 19 세기 중반, 로마노프 왕조 치하에서 읽을 수 있는 최고의 의식화 교재다. 이거, 다른 사람들 눈에는 모르겠으나 내 의견으로는 소설이 아니다. 소설을 빙자해 독자로 하여금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꿈꾸게 만드는 전향 권유 책자다. 그래 이 책의 열혈 독자를 꼽아도 목록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프로 혁명꾼 플레하노프를 위시하여 레닌, 스탈린, 트로츠키, 미야코프스키 등등. 심지어 레닌은 책꽂이에 체르니셰프스키의 전집을 장만해놓았을 정도라니 소련에서는 아마 대를 이어 필독서 목록에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소설의 외양을 갖추기는 했지만, 소설로 읽어도 차라리 19세기 초반, 야박하게 얘기하자면 18세기 후반에나 어울릴 서사구조와, 등장인물의 정형화된 성격을 가졌다(라고 나는 읽었다).
  물론 스토리 자체는 재미있다. 역자가 번역을 하면서 스토리 라인의 시간적 공간을 헷갈렸는지, 원작 자체가 그런지 모르겠지만 날짜 자체가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앞에서 말 한 날짜와 장소가 뒤에서 다시 얘기하는 때와 곳이 다르기도 하고, 연도가 다르기도 한데, 이 정도는 봐주자. 작가가 다른 곳도 아니고 수용소에서 썼다니까 낮엔 노동하고 밤에 틈을 내서 끼적이는데 완벽한 퇴고는 불가능했을 수도 있으니.
  그럼 이야기의 시작 부분만 좀 들춰보자.
  프롤로그. 첫 문장부터 헷갈리기 시작한다.
  “1856년 7월 11일 아침 모스끄바 철도역 근처에 있는 뻬쩨르부르그에서 가장 큰 한 호텔의 종업원들이 약간 겁을 먹은 듯 부산을 떨고 있었다.”
  종업원들이 기겁을 한 날이 1856년 7월 11일 아침이 아니라 7월 21일 임은 421쪽 부근에 가면 알 수 있는데 말 그대로 프롤로그니까 아직 독자는 그런 건 눈치를 챌 방법이 없고, 다음 구절을 보면 ‘모스끄바 철도역 근처에 있는 뻬쩨르부르그에서 가장 큰 호텔’이라면 호텔이 있는 장소는 어디일까. 나는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큰 호텔 근처에 모스크바로 가는 열차를 위한 역이 있다, 따라서 호텔은 페테르부르크에 있다고 확정하고 읽기 시작했다. 이것 역시 저 뒤로 가면 모스크바 철도역 부근에 있는 모스크바에서 제일 큰 메트로폴 호텔(아는 게 그거밖에 없어서)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다음 문맥상 호텔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모스크바 행 역이 맞다. 왜냐하면 호텔에 숙박한 신사가 새벽 두시 반 경 (당시의)임시다리 리찌야나 교에서 권총으로 머리통을 쏜 뒤 (네베로 보이는) 강에 빠져 북해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하여간 한 젊은 신사가, 평소 안하던 짓인 최고급 호텔, 페테르부르크에서 제일 큰 호텔에 들어 룸서비스로 저녁을 거하게 차려 먹고, 물론 마지막 만찬이었겠지만, 새벽에 자신의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 넣은 채 네바 강에 빠져 죽은 건, 일단 ‘공식적으로’ 사실이다.
  다음날, 페테르부르크 상류층의 여름별장이 밀집해 있는 바실리예프스키 섬, 까멘노이 오스뜨로프에 있는 방 셋짜리 작은 별장. 어떤 분위기의 집인지 궁금하시면 도스토옙스키의 역작 <백치>를 읽어보시면 단박에 짐작을 하실 수 있을 터인데, 이 집에서 여자 주인공 베라 빠블로브나가 페테르부르크 우체국의 소인이 찍힌 편지를 받고 기겁을 한다. 죽은 남자에게서 온, 그러나 아직 그가 죽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받은 편지.
  “내가 당신 마음의 평안을 해쳤나 보오. 나는 이제 그만 무대에서 사라지려고 하오. 나의 결정에 만족해하고 있소. 당신들 둘을 변함없이 사랑하오. 안녕.”
  이 편지를 옆에 선 젊은 남자가 집어 든다. 그러니 프롤로그에서 딱 봐도 이건 두 남자와 한 여자 간의 삼각관계. 세상에서 제일 재미난 것 세 개만 고르라면, 불구경, 싸움구경, 그리고 삼각관계. 이 책은 다행스럽게도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주제 중의 하나에 관한 책이구나, 라고 김칫국물을 벌컥벌컥 들이켰겠습니까, 안 들이켰겠습니까? 일단 프롤로그만 읽은 상태라고 가정을 하면 말씀입니다.
  이어서 본문이 나온다. 첫 번째는 우리의 주인공 베라 빠블로브나. 어려서부터 독한 엄마의 치마 아래 겁나게 고생만 하다가, 엄마가 보기에 꾸미기만 괜찮게 꾸미면 그래도 비싼 값에 팔아먹을 수 있을 거 같아, 불어, 독일어 교습에다가 피아노 레슨에 괜찮은 성악적 재질까지 두루 갖추어 놓고, 점점 자라 열일곱 살 되매, 최고급은 아닐지언정 근사한 드레스에 비싸지 않은 보석으로 치장을 해놓고 보니, 아파트 관리인을 하면서 무급 공직자를 하던 아버지가 근무하는 부서의 늙은 장관이 침을 흘리며 껄떡대기 시작했고, 이어 옆 부서의 또 다른 늙은 장관까지 눈독을 들이는 걸로 봐서 잘 만 하면 한 식구 팔자 고치는 건 시간 문제였단다. 그리하여 가장 괜찮은 배필을 골랐고, 자기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돈 많은 소유주의 아들이자 (작가가 소설을 쓰고 있다고 주장하는 1860년 기준) 현재에는 장교로 복무하고 있는 미하일 이바노비치 스또레쉬니코프.
  그런데 소설을 쓰는 작가가 자유와 혁명에 관한 꿈을 꾸다가 수용소에 처박힌 유물론자인데 주인공을 이런 룸펜 부르주아한테 엣다, 여기 있다, 건네줄 수 있나, 어디. 그리하여 사달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이 아름다운 여인은 어디서 책 한 권 변변한 거 읽어본 적도 없고, 관련 수업 한 번 들어본 적도 없지만 구태의연한 여성차별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태생적으로 공동생산, 공동소비, 이익분배 같은 사회주의 사상을 갖고 있다. 신기한 뇌구조다. 게다가 베라 빠블로브나와 연결이 되는 인텔리겐치아들은 모두 선하고, 체력적으로 건강하고, 키가 크고, 완력이 대단하고, 빠짐없이 사회주의 혁명 사상에 푹 절어 있다. 베라에게 처음 접근하는 인물이 드미트리 세르게이치 로뿌호프. 이어서 역시 대단한 인내심과 천재적, 아니, 수재 이상의 능력을 지닌 의사 알렉산드르 마뜨베이치 끼르사노프. 단호한 성격과 대단한 결단력, 도라이 수준의 집행력을 지닌 엄격주의자 강철 사내 라흐메또프 등등.
  그.러.나. 내가 자주 주장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마르크스의 가장 큰 오류는 그가 인간을 과하게 선한 집단으로 전제한 것. 이 책의 작가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체르니셰프스키는 사회주의적 공동생산과 공동생활과 이익의 공동분배라는 과정이 극단적인 유토피아 적 결과물로 나타나리라고 상상했다. 1권 까지는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며 읽기에 재미가 작지 않았지만, 2권으로 들어가서는 베라 빠블로브나의 개꿈 이야기로 스토리의 정당성을 주장하려는 기색이 보여 언짢기 시작하다가, 심지어 소설의 형식을 깨고 의식화 자료에 준하는 공상적 설명문으로 채우려 한다. 독자는 벌써 21세기도 20년이 지나 까질 대로 까졌는데 말씀이다.
  하나 더. 이 책을 읽으라 하지 못하는 것 가운데 중요한 이유는, 교정, 교열. 이제 글자 좀 틀리고 맞춤법 어긋나고 그런 거 가지고 시비하지 않겠다. 문장이 개떡인 것이 자주 눈에 띈다는 거. 개떡이라는 게 어떤 개떡 수준이냐고? 여태 A는 a의 대문자다, 라고 주장하다가, 주장하고 있으면서 갑자기 다음 문장에 A는 b의 대문자다, 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불행하게 여기서 b가 a의 오식이어서 왜 갑자기 이런 문장이 나왔는지, 이게 무슨 특별한 뜻이 있어서 그렇게 쓴 건지 오리무중일 경우도 몇 번 생긴다. 간단히 얘기해서, 독후감을 읽는 당신은 이 책을 읽지 않아도 만수무강에 전혀 지장이 없으니 굳이 돈과 시간을 써서 이 위대한 사회주의자의 소설을 읽을 필요는 없으리라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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