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집 범우문고 16
김소월 지음 / 범우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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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소월 김정식(金廷湜). 1902년 9월(음력 8월)에 태어나 서른두 해를 살다 1934년 12월에 생을 접은 시인. 그의 죽음조차 뇌일혈로 인한 자연사인지, 독극물 자살인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유년시절 일본인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해 미쳐버린 아버지, 할아버지 슬하에서 한문교육, 이른 결혼, 오산학교에서 김억金億을 사사, 교장 조만식 흠모, 일본 도쿄상과대학 진학, 관동지진으로 귀국, 사업 실패, 가장으로서의 자괴감 같은 모든 바이오그래피도 김억이 자비출판해준 시집 《진달래꽃》 한 권으로 지워진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시인이 김소월일 것이다. 나도 물론이고. 그러나 교과서 말고 진짜 그의 시집을 읽어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너무나 많이, 너무도 자주 그의 이름과 시와, 시에 곡을 붙인 가곡과 가요 때문에 오히려 정작 이이의 시를 읽어볼 생각이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하리라.
  굳이 그의 대표작 <진달래꽃>,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를 인용하지 않아도 좋을 듯하다. 이 절묘한 은유의 벼랑 끝. 이런 게 진짜 시 아닌가 싶다. 말로는 죽어도 안 울겠다고 하는 동시에 가슴으로는 피눈물을 흘리는 역설. 하긴 소월이 누군가. 국문학 전공하는 사람들 가운데 시를 공부해 박사를 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연구주제로 삼은 이가 김소월이다. 소설? 이광수. 그러나 지금 시대에 소월처럼 시를 쓸 수도 없고, 쓸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앞으로도 몇 세기를 거쳐 애송될 것이다. 이게 바로 고전의 힘. <가는 길>이라는 시 한 번 읽어보자.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전문)



  시집을 읽지 않았더라면 이런 설렘과 안타까움과 외로움이 세상에 있는지도 몰랐을 거다. 아무리 유명한 시인이라도 숨겨진 작품은 언제나 있는 법. 이 시 하나를 찾아낸 것으로도 시집을 사 읽는 본전은 뽑았다. 강물은 서로 따라가고 흘러도 연이어 흐르는데 어찌 사람은 그리워도 그립다 말 못하고, 그냥 갈까 망설이면서도 뒤 돌아보고 싶은 마음 못 다스린 채 서산에 해가 질 때까지.
  소월, 하면 대개 여성성, 그리고 슬픔에서 비롯하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사실로도 그런 취향의 시들이 소월을 국민시인으로 만들었지만 <초혼>같은 외침의 시도 있기는 하다. 평안북도의 망해가는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나 마지막 남은 가산으로 일본 유학을 떠났지만 바로 그 해에 관동대지진이 발생해 숱한 조선인을 살해한 장면이 기억에 남았을 소월. 곧바로 귀국해 이미 사양길에 접어든 할아버지의 광산 사업을 말아먹고, 동아일보 지국장을 하다가 역시 깨끗하게 말아먹은 소월에게 어찌 동 시대를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없었으랴. 다만 조선인의 한과 설움에서 비롯하는 시들의 막강한 감동의 아우라에 빛을 잃었을 뿐이지. <마음의 눈물>이라는 시 일부.



  내 마음에서 눈물난다.
  뒷산에 푸르른 미류나무 잎들이 알지,
  내 마음에서, 마음에서 눈물나는 줄을,
  나 보고 싶은 사람, 나 한 번 보게 하여 주소,
  우리 작은놈 날 보고 싶어하지.


  건넛집 갓난이도 날 보고 싶을 테지,
  나도 보고 싶다, 너희들이 어떻게 자라는 것을.
  나 하고 싶은 노릇 나 하게 하여 주소.
  못 잊어 그리운 너의 품속이여!
  못 잊고, 못 잊어 그립길래 내가 괴로와하는 조선이여  (부분)


  솔직하게 얘기해서, 이 시가 비록 소월표 서정시가 가슴 속을 푹 질러주는 감동에는 미치지 못할지언정 작은 것들에서 시작하는 조선을 위한 영탄이 결코 가볍지 않다. 이것 역시 시집을 통해 얻은 수확임은 당연하다.
  그러나 소월 시의 본류는 슬픔의 아름다움. 예컨대 <접동새>의,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진구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중략)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읍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산 저산 옮아 가며 슬피 웁니다   (부분)



  같이 시인의 숙모 계희영으로부터 들은 우리의 옛 이야기 속 정서를 품고 있다거나, 제대로 대가리가 굵어지기 전인 중학생 때 썼지만 그리움에 관한 절절한 역설로 만든 절창 <먼 훗날> 같은 것이 더 좋다. 이 시 전문을 읽으면서 너무도 유명한 시인의 시들이라서 잘 써봐야 본전인 독후감을 마친다.



  먼 후일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후일 그때에 ‘잊었노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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