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 범우문고 282
한용운 지음 / 범우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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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 수 없어요>가 교과서에 실린 것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 때 달달 외우라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국어교사가 새된 목소리의 아주머니가 돼서 두드려 맞지는 않았는데, 시를 배우면서 공즉시색, 색즉시공 어쩌고저쩌고 했던 걸 아주 오랜 세월 잊고 지내다가, 요새 시인들이 쓰는 시의 개인적 절망의 암호화에 적응을 못하기도 했고, 이제는 우리의 고전이 된 예전 시들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기특한 자각도 들고 해서 본격적으로 우리 시를 읽어보기로 결정해 처음으로 고른 시집이 《님의 침묵》이다.
  만해의 시를 교과서에서 배울 때, 그이의 님은 잃어버린 나라일 수도 있고, 부처일 수도 있으며, 진짜로 시인의 애인일 수도 있다는 걸 얼마나 강조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진짜 시집 《님의 침묵》을 열어보니, 시인이 쓴 서문, 만해는 이걸 “군말”이라고 했는바, 엇다 모르겠다, 멋있고 짧은 글이니 그대로 옮겨보기로 하자.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衆生)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치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느니라.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의 알뜰한 구속(拘束)을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羊)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옛말이 정답다. ‘기루다’가 무슨 뜻일꼬? ‘그리워하다’의 고어다. ‘장미화’? 나이든 가수의 이름이 아니라 그냥 장미꽃. 하여튼, 국어 교사가 만해의 시를 연구해 학생들에게 그리 가르쳐준 것이 아니었다. 만해가 일찍이 시집을 펴내면서 자신의 ‘님’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해 놓은 걸 그냥 전달만 해준 거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놓고 뒷 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시 <님의 침묵>의 부분이다. 대가리 커지고 이 시를 떠올릴 때마다 제일 웃기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던 것이, 왜 첫 키스가 날카로울까, 였다. 도대체 첫 키스를 누구하고 한 거야? 뭐 다들 해보셨지? 순전히 내 경우만 고백하자면, 당시 서로가 그게 첫 키스였던지라 그걸 어떻게 하는지는 유전자적 지식으로 알긴 하지만 둘 다 너무 서툴러서 기억나는 거라고는, 하고보니, 주둥이 부근이 온통 침 범벅이 된 것 밖에 없어서, 아 참, 이런 걸 평생 하고 살아야 하는지 어린 마음에도 마땅하지 않았던 일이다. 그런 이유로 시인이 극강 프로페셔널하고 첫 키스를 한 것이 틀림없다, 아니면 시인과 상대방이 극도의 구강건조증 환자여서 입술과 입술이 맞붙을 때 불꽃이 번쩍, 했을 거라고 나는 선언한다.
  근데, 진짜로 시집 《님의 침묵》을 읽어보면 왜 보통의 우리가 만해 한용운, 하면 <님의 침묵>과 <알 수 없어요>만 알고 있는지 단박에 눈치 챌 수 있다. 시들의 거의 대부분이, 한 98퍼센트 정도가 ‘님’ 또는 ‘당신’에게 바치는 헌사이며, 시에 사용한 시어와 문장들도 비슷한 정조를 갖고 있어서 모두 88편의 시가 그게 그거인 것처럼 읽힌다. 아, 안다, 알아. 그동안 시대가 많이 바뀌어 독자가 발랑 까져서 만해의 구도와 독립을 향한 염원 같은 숭고한 헌사를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다는 건. 근데 읽는 인간이 그렇게 느끼면 그걸로 끝이지 뭐. 혹자는 <님의 침묵>이나 <알 수 없어요>보다 <복종>을 더 좋아한다는 사람도 만나볼 수 있기는 하다. 나는 그런 인간의 속뜻을, 자신은 만해의 다른 시도 알고 있다고 폼 잡는 거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시집을 읽으면서 누구나 다 알고 좋아하는 시 두 편 말고 하나를 더 건졌다. <두견새>라는 이름의 시인데, 두견이는 우리말로 접동새를 뜻하며 당시 유식하게 한문으로 하면 불여귀(不如歸)라 했다. 이름 좋다. 또 다른 말로 귀촉도(歸蜀道)라고도 한다. 혹시 항우에 밀려 잔도를 따라 촉나라로 들어가며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리라 한탄하던 유방 일당이 밤새 한 잔 술에 시름을 달랠 때 접동새 울음소리가 들려 이런 이름이 붙은 거 아닐지 몰라? 하여간 그런데, 예전에 자주 접대를 받던 비싼 술집 이름이 취불귀(醉不歸)였더랬다. 발음이 비슷해 자주 간 편인데 뜻도 멋있었다. 취해 돌아가지 못하리. 그렇게 비싼 술집은 내 돈 내고 간 적도 없지만, 남의 돈이라도 진짜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인종이라 좋은 기억은 아니다. 엇, 독후감 쓰다 보니 또 나하고 자매결연 맺은 도시 삼천포로 빠졌다. 어쨌든 마음에 든 시 <두견새>를 소개하며 독후감을 마감한다.



  두견새는 실컷 운다.
  울다가 못 다 울면
  피를 흘려 운다.


  이별한 한(恨)이야 너뿐이랴마는
  울려야 울지도 못하는 나는
  두견새 못 된 한을 또다시 어찌하리.


  야속한 두견새는
  돌아갈 곳도 없는 나를 보고도
  ‘불여귀 불여귀(不如歸不如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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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02-24 15: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님의 침묵> 소리내어 읽기를 쑥스러워했던 때가 있었네요 ^^
두견새라는 시를 오랜만에 여기서 다시 만나요. 누구에겐가 적어서 보여주고 싶은데 그 누구가 없어 안타까웠던 때가 있었고요.

Falstaff 2020-02-24 16:05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근데 교과서에선 <님의 침묵>을 소개만 했지 나오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워낙 오래 전이라 가물가물 합니다만.
<두견새>는 처음 읽어보는 건데요, 이거 필이 팍 꽂히더라고요. 문학소녀셨군요. 저도 요즘 시 읽다가 이런 시 읽으니 갑자기 눈 앞이 환~해지는 것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