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 민음사 모던 클래식 40
리브카 갈첸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원제목은 <Atmospheric Disturbances> 그냥 <대기 불안정>이다. 제목을 그대로 하면 책을 많이 팔 만한 호소력이 없으니 원제목에다가 굳이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을 붙였다. 말 그대로 사족.
  작가 리브카 갈첸으로 말할 거 같으면, 캐나다에서 출생해 유년시절에 미국으로 이민을 와 1981년 다섯 살 때부터 94년에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오클라호마의 노먼에서 살았단다. 아버지는 오클라호마 대학의 기상학과 교수, 엄마는 국립재해기상연구소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했으니 전형적인 이과 인텔리 집안의 따님이다. 이이의 재능은 오클라호마를 떠난 후에 빛을 발한다. 프린스턴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다가 2학년이 되자 때려치우고 원래는 미국 내 유대인의 치료를 위해 남북전쟁 전에 세운 의학교, 시나이 산 의과대학 (Mount Sinai School of Medicine)으로 전학해 2003년에 신경정신과 의학박사(사실은 박사급과 거의 동급이긴 하지만 박사는 아닌 MD) 학위를 받는다. 그럼 의사로 일을 하면 될 것을 아직도 학문에 미련이 남아 3년 후 컬럼비아 대학에서 예술학위(Master of Fine Arts)까지 얻었으니, 이이는 20대에 박사학위 두 개를, 그것도 이과-문과로 수집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른다. 여기다가 외모도 매력적으로 생겼다. 한 마디로 밥맛없다. 공부를 잘하면 좀 덜 생겨도 되잖아. 나 같이 못 생기고 공부 못하는 인종은 어떻게 살라고 말이야. 큼.
  리브라 갈첸은 아버지 츠비 갈첸을 존경했던 것 같다. <대기 불안정>은 이이가 쓴 첫 번째 소설인데, 작품 속에 이미 죽었다고 하는 츠비 갈첸의 애매모호한 모습이 그가 쓴 논문, 가족사진, 작가 리브라를 안고 찍은 사진이 직접 등장할뿐더러, 심지어 논문 속의 기상도와 논문의 내용까지 그대로 차용하고 있으며, 진짜 죽었는지 아니면 죽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영국의 왕립기상학회의 간부급 비밀요원으로 일하고 있는지,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가 츠비 갈첸의 이름을 빌어 기상의 무기화를 연구하고 있는지 많이 혼돈스럽게 만든다. 여기에 작가 리브라의 직업 가운데 하나인 신경정신과 의사로서 그의 전공과목인 분열증에 관한 소견과 물리학적 정의 같은 것이 마구 섞여 있어서, 이렇게 말하면 잘난 척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지만, 문과만 공부하신 분들은 아예 책을 읽지 않으시는 것이 만수무강에 좋을 듯하다.
  예를 들어 아주 중요한 문제 하나를 소개해보자. 50대에 접어든 신경정신과 의사 ‘나’ 레오 리벤슈타인이 어느 날 집에 있는데, 아내 레마와 똑같이 생긴 도플 갱어가 자신이 레마입네, 하고 다리가 긴 똥개 한 마리를 데리고 오는 거였다. 이 가짜 레마가 하는 행동, 하는 말이 자신의 아내와 상당히 비슷하지만 ‘나’는 단박에 가짜인 사실을 알아내고 즉시 사랑하는 진짜 아내를 찾을 결심을 하고 만다. 이것을 읽는 순간 독자는 신경정신과 전문의 ‘나’가 분열증에 걸린 것이 아닌가를 의심하게 되고, 이후 책을 다 읽을 때까지 그가 생각하는 온갖 잡다한 논리에 설득을 당해야 하는데 그 가운데 ‘도플러 효과’가 나온다. 도플러 효과는 파동에 관한 물리학적 현상으로 (1970년대의)고등학교 2~3학년 이과 물리 교과서에 소개가 됐던 것으로, 쉽게 얘기하면 앰뷸런스가 내가 탄 차로 다가올 때와 멀어질 때의 소리 크기가 다르게 느껴지는 현상을 말한다. 작가는 이 도플러 효과를 애정문제에도 적용시켜 특정한 사람이 내게 다가올 때의 애정의 크기와 멀어져갈 때의 크기가 사실은 똑같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입장에서는 다르게 느낀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후반에 가면 한술 더 떠서 ‘도플 갱어’를 넘어 ‘도플러 갱어’라는 걸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책의 내용은 레마의 고향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그녀를 찾아 간 ‘나’가 레마의 엄마 마그다를 만나고, 자신의 분열증 환자 하비가 자신이 속해 있다고 주장하는 영국의 왕립기상학회의 비밀조직원들과 연락이 닿아 그들의 지령을 수행하려 파타고니아 섬까지 가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다. 겉으로는 ‘나’ 레오 리벤슈타인 박사가 사랑하는 아내 레마가 혹시 전남편 또는 애인과 함께 사라져버리고 대신 ‘나’에게 가짜 레마를 보낸 것으로 짐작해 진짜 아내를 찾아가는 오디세이아지만 다 읽으면 작가가 죽은 아빠 츠비 갈첸 박사에게 보내는 경의라고 결론을 낼 수 있을 듯하다. 읽어보실 분은 읽어보시라. 다만 나는 경고했다. 물리학을 배우지 않은 문과 졸업생들은 자신의 만수무강을 위해 이 책을 멀리 하시는 것이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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