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도시 아가씨의 아주 우아한 시골 생활 민음사 모던 클래식 19
레이철 커스크 지음, 김소연 옮김 / 민음사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원래 제목은 <The Country Life>, 그냥 <시골 생활>이면 된다. 앞에서 ‘시골 생활’을 꾸며주는 ‘어느 도시 아가씨의 아주 우아한’이란 형용구는 말짱 필요 없다. 촌스러운 제목 <시골 생활>만 가지고도 1998년에 서머싯 몸 상을 받은 작품이다. 위키 백과를 읽어보면 이 책은 스텔라 기번스의 <춥지만 편안한 농장 Cold Comfort Farm>과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에 영향을 받아 쓴 작품이라고 한다. 책의 뒤표지에 보면 《뉴스데이》라는 매체가 “현대판 <제인 에어>. 더 이상 시골 생활은 우울하지 않다.”라고 평을 했다는데, 이 사람들 혹시 위키 백과 보고 쓴 거 아냐? 레이철 커스크가 이 책을 쓰고자 했을 때부터 코미디 작품을 염두에 두었음이 분명할 정도로 곳곳에 비록 폭소를 터뜨리게 하지는 않지만 재미있는 표현들을 묻어놓고 있다. 일인칭 관찰사 시점으로 주인공 ‘나’의 이름은 대담하게 자신이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20세기 소설가 스텔라 기번스를 그대로 가져다 써서 ‘스텔라 벤슨’으로 했다. 스물아홉 살의 똑똑하고 학위도 있고, 법무관이라는, 아니면 그와 유사한 직업과 직위에 재직하고 있었던 인물이다. 뛰어나게 빼어난 외모는 아니지만 어디 가서 빠진다는 소리 들어본 적 없는 외모를 가진 이이가 선택한 가장 불행한 행위는, 아마, 모르긴 몰라도 자신을 사랑하고 온순한 성격을 지녔으며 높은 공부도 한 에드워드와 결혼을 해버린 일인 거 같다. 잘 읽어보시라. 에드워드는 나를 사랑했지만, 내가 사랑했다는 얘기는 없다. 사랑한 것 같았다. 또는, 사랑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수준. 뭐 새삼스런 것은 아니다. 세상의 많은 부부가 둘 다 서로 미칠 듯 사랑해 결혼하는 건 아니니까. 그냥 나는 저이를 사랑하고 있다, 라고 스스로를 최면상태에 빠뜨리고, 몽롱하게 취해서 결혼을 해버리고, 살다가, 차도 사고, 애(들)도 낳고, 조금 더 큰 전셋집으로 옮기다가 드디어 양쪽 허리에 한 주먹씩의 비계가 생길 때쯤 내 집 장만도 하면서 그냥 그렇게 한 인생 사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게 꼭 나쁜 것도 아니고. 다만 그러기 위해선 부부가 동시에 소위 ‘무난한’ 성격이어야 하겠지만.
  이 책의 주인공 스텔라 벤슨이 시청 호적계에서 결혼을 하고, 로마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일은 벌어졌다. 테라스가 있는 고층 호텔. 스위트룸인지 아닌지는 책에 나와 있지 않지만 테라스가 있다면 숙박비가 가볍지는 않았을 듯. 양가 부모와 친구들 가운데 스텔라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는데, 신혼여행 도중에 스텔라가 테라스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으로만 전해졌다. 그럼에도 살아 있다고? 그렇다. 떨어지기는 했지만 아스팔트와 충돌한 건 아니고 쇠로 만든 테라스 기둥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구조되었다는 얘기. 역시 아무도 모르는 이유이며, 책을 끝까지 다 읽어도 독자마저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 길로 스텔라는 짐을 꾸려 에드워드 혼자 로마에 남겨둔 채 혼자 런던 행 비행기에 올랐으며, 스텔라 부모의 명의로 된 집에 도착해 다음과 같은 글을 쓴다.
  “파콰슨 씨에게. 지금 이 순간부터 퇴사함을 알려드리기 위해 이 편지를 씁니다. 이로 인해 불거질 모든 불편한 일들에 심심한 사과를 표합니다. 스텔라 벤슨 드림.”
  직장을 때려치운 거다. 이어서 부모에게도 한 장.
  “아버지, 어머니께. (중략) 오랫동안 불행했어요. (중략) 어머니 아버지 탓도 많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만나지 않는 편이 서로에게 공평할 것이라고, 아니 제게 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떠납니다. (후략)
  마지막으로 에드워드에게도 한 장.
  “휴가 잘 보냈나요? (중략)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랍니다. 스텔라가. 추신. 이 편지를 읽는 당신 얼굴이 눈에 선하군요.”
  그리하여 이 ‘어느 도시 아가씨’가 아니고 아직 이혼신고가 끝나지 않은 ‘어느 도시 유부녀’는 신문에 실린 짧은 광고 하나만 주머니에 넣고, 트렁크에 옷 몇 벌과 신발 두 켤레, 기타 자질구레한 것들만 챙겨 런던을 떠나 버클리 인근의 시골마을 힐탑으로 떠나면서 좌충우돌의 코미디를 시작한다. 이이의 새로운 직업은 매든 씨네 막내아들 마틴의 오-페어. 오-페어au pair는 원래대로 하면 외국가정에 입주하여 아이 돌보기 등과 집안 막일을 하면서 아주 약간의 보수를 받으며 언어를 배우는 (보통) 젊은 여자를 일컫는 말이다. 스텔라는 영국 여자니까 사실 오-페어라기보다 일종의 ‘보모’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그런데, 사실 이 내용은 모르고 읽어야 더 재미있지만, 스텔라가 하는 짓을 보면 뭔가 나사가 반쯤 풀려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면 대단히 충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든지. 저렇게 직장 상사, 부모, 남편에게 세상이 끝난 것처럼 이별 편지를 쓰고 이제 비록 산간벽지는 아닐지언정 시골 촌구석으로 세상의 눈을 피해 평생을 고독하게 살려 하는 사람이 오-페어를 원하는 고용인이 원하는 조건마저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말이지. 고용인은 처음부터, 오-페어는 양쪽 다리를 다 쓰지 못하는 장애인 막내아들의 생활을 도와주어야 하며, 일환으로 일주일에 두세 번 가야하는 장애인 센터에 데리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운전면허가 필수요건이었음에도 자신이 운전면허도 없고 자동차 운전을 해본 경험조차 없다는 걸 깜빡 잊어버린다. 물론 이것 때문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두 장chapter 생기기는 하지만 그리 개운하지는 않다. 게다가 런던을 출발하기 전에 시골로 거처를 옮기면 돈은 하나도 필요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 수표책을 그냥 두고 왔다는 것도 스물아홉, 우리나라 나이로 서른이나 먹은 사람이 할 짓이며, 그런 생각을 할 수준이냐고. 매든 저택에 머문 이후 며칠이 지나도 빨래를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아무 생각 없고, 연탄을 때지 않는 오랜 숙소에 사람의 피를 노리는 아주 작은 곤충들이 서식할 수 있다는 짐작도 못하며, 뜨거운 햇볕이 피부를 지글지글 구워버릴 때까지 뙤약볕 아래에서 낮잠을 잘 수 있겠어? 자, 여기에서 독자들은 양해를 하자. 이게 다 날 때부터 도시 사람으로 자란 주인공이 시골 또는 자연에 관해 완전히 무식했다고 여기도록 노력해야 하리라. 깨끗하게 내리 쬐는 태양 아래 한 쪽으로 걸어가다가 몸의 왼쪽만 2도 화상을 입어 분홍색으로 부풀어 오르게 된 런던 처자를 보고 그냥 웃어야 하지, 넌 그것도 몰랐냐고 타박을 하면 이 책을 읽는 재미는 반 아래로 떨어지고 마니까.
  시골 부르주아 집에 일종의 하인으로 취직한 도시 인텔리겐치아. 저택엔 완고해보이지만 순진한 구석도 있고 마음도 넉넉할 것 같기도 한 가장 매든 씨, 피어스. 매사 신경질적이고 깐깐하며 완고해 보이는 것은 물론 사사건건 은근히 ‘나’ 스텔라와 신경전을 벌이는 매든 부인, 파멜라. 이들의 두 자매와 두 형제.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가 삶의 매사를 도와주어야 하는, 약간 삐딱해 보이는 성격을 가진 마틴. 이들 시골 부자를 바라보는 동네사람들의 지극히 곱지 않은 눈길과 부자와 유력자 사이의 결코 끊이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비방, 이것들이 다 웃음의 한 소재로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처음에 말했듯이 포복절도나 박장대소하는 웃음이 아니라 유머 코드로 문득, 문득 드러나기 때문에 더욱 재미를 느낄 수 있으리. 물론 독자들의 필독서 까지는 멀고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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