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치는 소년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8
김종삼 지음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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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을 열고 첫 번째 나오는 시 <물통>을 읽는 순간, 아, 40년 만에 이 시집을 다시 읽어보는구나, 라고 영탄한다.



  희미한
  풍금 소리가
  툭 툭 끊어지고
  있었다

  그 동안 무엇을 하였느냐는 물음에 대해

  다름 아닌 인간을 찾아다니며 물 몇 통 길어다 준 일밖에 없다고

  머나먼 광야의 한복판 얕은
  하늘 밑으로
  영롱한 날빛으로
  하여금 따우에선   (전문)



  단박에 알아챘다. 제대로 된 문장은 처음 네 줄, “희미한 풍금소리가 툭 툭 끊어지고 있었다”뿐. 독자는 다음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가 난데없이 “얕은 하늘 밑으로 영롱한 날빛으로 하여금 땅 위에서”, 다음에 뭐가 어떻게 됐는지 오리무중 속으로 유영해 들어가게 만들어버린다. 이런 낯선 표현을 나는 김종삼을 통해 처음 읽어봤으며, 이제 그리고 40년이 흘러도 당시에 느꼈던 낯섦을 단박에 알아차리는 것이다. 다름 아닌, 별다를 것 없는 인간들을 찾아다니면서 기껏해야 물 몇 통을 길어다 준 일밖에 없는 물통을 노래하며 시인은 어떻게 그리고 왜 희미한 풍금소리가 툭툭 끊어지는 청각자극을 느낄 수 있었을까. 그것뿐인가. 평생, 어딘가에 부딪혀 깨져 쓰지 못하게 될 때까지 우물가에서 마당이나 부엌까지 왕복운동만 했을 물통의 어디에서, 어떤 모습에서 머나먼 광야의 한복판 얕은 하늘 밑에 영롱한 날빛까지 확장시켜 연상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그건데, 그래서 땅 위에서 어떻게 됐다고? 시를 이리 쪼개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냥 읽어가면서, 결국엔 한 문장이 완성되지 못하는 여운을 그대로 체감해보는 것도 아주 멋진 일이 된다는 것, 그게 스무 살 구상유취의 청년에게는 놀랄만한 일이었나 보다.
  민음사의 “오늘의 시인 총서” 시리즈가 출발할 당시의 나는 수많은 가난한 학생 중의 한 명이었고, 그리하여 시집 한 권을 사려면 먼저 도서관에서 시집을 읽어보고 꼭 사서 생각날 때마다 읽어볼 시집만 구입해야 했던 시절. 당시 그런 절차에 입각해 산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와 황동규의 <三南에 내리는 눈>, 정호승의 <서울의 예수>, 황지우의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가 지금도 책꽂이에 꽂혀있....는줄 알았는데, 김수영은 나중에 전집을 사면서 누구한테 준 모양이다. 하여튼 당시에 김종삼의 시집은 내게 구입 대상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건 혹시 유신과 한국적민주주의 아래에서 허덕이던 스무 살 청년의 시각에서 볼 때 쓸데없이 여기저기서 돋는 서양취향, 예컨대 표제시 <북 치는 소년>에 쓰인 것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 서양 나라에서 온 /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 같은 것 때문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당시의 젊은이들은 김종삼 같은 순수 서정시를 향해 또렷한 논리를 대며, 지금 한가하게 음풍농월이나 하고 있을 때인가, 이런 장르에 종사하는 시인, 작가들을 째려보았을, 용감하지만 야만의 시절이었다.
  세월은 겁난다. 이제 “좀 가노라니까 / 낭떠러지 쪽으로 / 큰 유리로 만든 자그만 스카이라운지가 비탈지었다. / 언어에 지장을 일으키는 / 난쟁이 화가 로트렉 씨가 / 화를 내고 있었다.”는 시 <샹뼁>의 제목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를 한 없이 궁리하다가 불어 '샹파뉴Champagne'를 일본 사람들이 “シャンペン”이라 쓰는데 우리말 음가가 바로 ‘샹뼁’인 걸 알고는 그저 한 번 씩 웃을 뿐이니. 그러나 아직도 시 안에 유럽의 유명한 음악가, 화가, 소설가, 시인들이 무작정 등장하는 걸 읽으며, 그래서 뭐 어쩌라고, 라고 반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유럽인이 등장해서가 아니라 시에 관해 조예가 없는 내가 읽기로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 그런 거다. 이이는 시인으로 출발 자체가 포스트 모던이었던 것 같다. 해설을 쓴 황동규는 처음 발표한 시를 <園丁1>이라 했는데 연보를 보면 나이 서른넷에 《현대예술》에 <돌각담2>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고 한다. 그래서 데뷔작인 <돌각담>을 읽어보자.


  광막한지대이다기울기
  시작했다잠시꺼밋했다
  십자형의칼이바로꽃혔
  다견고하고자그마했다
  흰옷포기가포겨놓였다
  돌담이무너졌다다시쌓
  았다쌓았다쌓았다돌각
  담이쌓이고바람이자고
  틈을타凍昏3이잦아들었
  다포겨놓이던세번째가
  비었다   (전문)


  문장과 문법과 구두점을 포기하고 한 줄에 열 개의 글자를 나열해 시를 썼다. 글자 하나하나가 다 돌담을 만든 돌로 기능하는 것 같은 시각 효과가 돋보인다. 아쉬운 건 마지막, 그러니까 제일 아래 돌이 겨우 세 개밖에 없어 전체적 균형이 잡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 차라리 처음 줄을 세 글자로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러나 김종삼의 초기 시들은 데뷔 시 <돌각담>과 달리 포스트모던 하고는 거리가 있다. 황동규가 해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린 시절의 기억 같은 것을 많이 썼다고 하는데 난 그게 더 좋다. 예를 들어 <묵화> 같은 노래.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전문)


  얼마나 좋은가. 짧기도 하고. 김종삼의 시는 대개 간략한 편이다. 시인 전봉래는 1957년에 김광림과 함께 3인 공동시집을 낸 전봉건의 친형으로 남은 시는 딱 한 편밖에 없는 기인인데, 김종삼과 같이 이북에서 월남을 해 한국전쟁이 한창인 1951년에 부산 피난지에서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찬란한 이 세기에 이 세상을 떠나고 싶지는 않았소. 그러나 다만 정확하고 청백하게 살기 위하여 미소로서 죽음을 맞으리다. 바흐의 음악이 흐르고 있소.”라는 멋부린 유서를 남긴다. 이이를 위하여 부제를 ‘全鳳來 형에게’ 로 단 짧은 시 <G 마이나>를 썼다. 왜 시가 ‘사단조’가 아니라 ‘G 마이나’인지는 굳이 따지지 말자. 바흐를 틀어놓고 죽은 시인.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바흐 가운데 사단조 음악은 사실 없지만.4



  물
  닿은 곳


  神恙5
  구름 밑


  그늘이 앉고


  묘연한
  옛
  G 마이나  (전문)



  나는 이 시가 시인의 초기 수줍고 순수한 시보다 더 좋지 않다. 폼이 좀 난다는 측면에선 모르겠지만 이 시를 제대로 감상하자면 여간해 알기 힘든 전봉래 시인을 검색해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확인한 다음에 읽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어림도 없지 않은가.
  여러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이 시집을 읽는 동안 나는 자잘한 재미를 숨길 수 없었다. 같은 시집을 40년 만에 읽는 일. 그것도 예전에 읽었는지 까마득하게 몰랐다가 시집을 열어 첫 번째로 나오는 시로 단박에 먼먼 기억을 소환하는 일이 어찌 재미있지 않을까. 확실하게 안 것은, 김종삼 시인과 화해하기 위해 몇 십 년 세월이 필요했다는 점. 참으로 세상은 오래 살고 봐야할 일이다.


 


 

  1. 정원사를 다른 말로 '원정'이라고 한답니다. 가축을 먹을 목적으로 도살하는 사람을 한때는 백정白丁이라 불렀듯이 뒤에 정丁자가 붙는 말은 해당 일을 하는 사람을 낮추어 부르는 것이라 더 이상은 쓰여지지 않을 단어 같습니다.
  2. ‘돌담’ 돌로 쌓은 담을 일컫는 이북 말입니다.
  3. 사전에 없는 말입니다. 시인이 만든 시어 같습니다. 얼 동, 저녁 혼. 한 겨울의 황혼무렵을 노래한 것 같습니다. 시어를 만드는데는 암만해도 표의문자인 한자가 표음문자인 우리말보다 훨씬 유리하지 않을까요?
  4. 역시 G-minor, 사단조 하면 바흐가 아니라 모차르트가 생각납니다. 교향곡 25번과 40번, 피아노 협주곡 20, 24번, 현악5중주 K.516 등등.
  5.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전에 없는 단어입니다. 신神은 귀신, 하느님을 뜻하고 양恙은 근심이나 병을 말하는데, 신의 근심인지, 아니면 다음 줄에 등장하는 구름을 신의 근심으로 비유한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만... 시인 전봉래의 죽음이 하늘의 근심이라는 뉘앙스의 시어는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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