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잠든 동안
커트 보니것 지음, 이원열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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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소설 16편이 든 소설집. <제5 도살장>, <고양이 요람>에 이어 세 번째 보니것으로 그의 단편집을 골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든 느낌은, 원서로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영어를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점. 진즉에 영어 공부 좀 더 하지, 라는 후회. 이런 비슷한 감정들. 아마 이해하실 수 있을 듯. 이번엔 번역서를 읽으면서도 재미나 유머를 감각하는 포인트를 제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 같았는데 사실 특히 서양 소설을 번역한 단편소설의 경우는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서울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록 밴드의 싱어송 라이터로 활약하기도 하는 역자가 읽기 좋은 한국어 문장으로 다듬어서 더욱 그렇게 느꼈겠지만. 어쨌거나 오랜만에 영미 단편소설을 마치 우리나라 작가가 쓴 것처럼 즐기는 데 별 부담 없이 읽었다.
 여태 기껏 두 권의 책만 읽었지만 커트 보니것의 작품 속에는 참으로 기발한 착상이 들어 있어서, 글쎄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작가의 착상을 독자가 쉽게 받아들이면 단박에 그의 팬이 되고, 작가와 코드가 맞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왜 보니것에 열광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행히 보니것의 아이디어가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와 앞서 두 권의 책을 무척 호감을 갖고, 간혹 경탄해가며 읽어 이번에도 그의 책을 선택했지만 누구나 다 나와 비슷할 수 없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엘베 강의 피렌체라 일컫는 드레스덴에 무차별 공습을 퍼붓던 때 피폭격의 중심지 드레스덴의 한 지하 피난처에서도 보니것은 트랄팔마도어 행성의 동물원에서 2년 동안 전시된 적이 있는 남자 배우를 캐스팅한 바 있고, 해병대 장군의 농담 비슷한 요구에 호기심이 동한 과학자의 어처구니없는 발명으로 인해 세상의 거의 모든 물체가 다 얼어버려 드디어 지구별의 멸망을 초래하는 디스토피아를 구현하기도 한다. 작가가 이런 아이디어를 채택에 글을 쓴 시절이 아마 1960년대까지일 걸? 물론 이전에도 이런 공상 과학적 소재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보니것은 여기에다 절묘한 유머 코드를 섞어 독특한 잡탕밥을 만들었다는 데 그만의 특징이 있지 않을까.
 첫 번째 실린 단편 <제니>의 타이틀 롤은 원격 조정하는 인공두뇌를 가졌으며 여성의 신체와 비슷한 모습을 한 냉장고 이름이다. 과학이나 산업기술 개발에 관해 가히 천재적 재능을 지닌 연구원이 엉뚱하게도 제니와 더불어 전 미국을 누비고 다니며 영업 또는 영업 촉진을 위한 쇼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가, 결혼 후 6개월 만에 이혼한 전처가 임종의 침상에서 그를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라도 봤으면 좋겠다는 소식을 전하는 이야기다. 60년대 초반에 비록 원격 조정이란 한계 안에 있지만 그래도 인공지능이란 개념을 사용해 완전한 사람과 완전한 기계가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들 사이의 삶의 가치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장면. 보니것 자신이 기계공학을 전공한 적이 있어서 이런 분야에 관심이 많기도 했겠으나 단편에서는 분량의 속박 때문에 그런지 ‘불완전한 사람들’이나 ‘사랑’ 같은 노골적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물론 ‘불완전한 사람들’ 사이의 ‘사랑’이 중의적 표현에 의해 더욱 강조되기도 하는 건 당연하겠다. 생명보험회사에서 보험금 지급에 관한 규칙을, 가입 2년 후부터는 자살에 대하여도 지급을 하겠다는 약관을 내걸자 미국 전역에서는 아내와 자식 둘 이상을 거느린 가장들이 마치 유행병처럼 스스로 죽음의 선택을 한다는 두 번째 단편 <유행병> 같은 것이 그렇다. 미혼 남자는 결코 죽지 않고, 자식이 없는 가장 역시 죽을 생각이 없으며, 아내와 한 명의 자식이 있는 경우엔 거의 죽지 않지만, 아내와 두 명 이상의 자식을 거느린 남자 가장(시대가 1960년대이니까)은 별로 생각할 여유도 없이 스스로 목숨을 거둠으로 해서 가정에 봉사해야 한다는 강박에 싸인 리얼한 블랙 유머를 터뜨리는데, 읽는 독자는 이걸 보며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정답은 쓰게 웃어야 할 것.
 이런 방식으로 열여섯 편의 단편소설이 든 책이다. 굳이 이이의 단편이 갖는 특징을 말해보라면, 마치 콩트를 읽는 것처럼 최후의 촌철살인을 도모하고 쓴 단편 같다는 것. 글쎄. 솔직한 생각은 단편에 꼭 마지막을 장식하는 안짱다리후리기 한판이 필요한 건 아닐 듯한데,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그건 독자의 선택이 아니라 작가가 결정해야 하는 일이라는 점.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내용을 노출하는 것보다 미련한 짓은 없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독후감을 여기서 끝내지 못한다면 더욱 미련한 짓일 것이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단편집을 읽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오가 구별될 수 있는 작가고 책이니 선택은 스스로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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