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잘못이다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27
알베르토 바스케스 피게로아 지음, 정구석 옮김 / 책세상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흥미진진한 추리극. 주인공 가에타노 데르데리안 기메라에스는 일찍이 체스에 탁월한 재질이 있어 체스 세계 챔피언에 도전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서 세상의 모든 체스 팬의 관심을 딱, 뒤로 한 채 사람과 사건을 분석, 해체해 다시 조립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변호사 겸 수사관으로 변신한 브라질 사람이다. 이이가 프랑스의 거대 다국적 기업 아쿠아리오-오리온 그룹의 총수 로멩 라크루아로부터 사건을 의뢰받는다. 부회장이자 요르단의 해수 담수화 사업을 지휘하고 있는 마티아스 바리에레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이어 회장의 목숨까지 협박하는 일을 해결해 줄 것과, 이 일과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철통보안이 이루어지고 있는 갑부 집안에 걸려 있던 고흐의 그림 한 점이 도난당하는 사건도 해결해주기를 요구하고 있다. 당연히 범상하지 않은 외모와 신묘한 능력을 가진 완벽한 두뇌의 소유자 가에타노 데르데리안이 두 가지 사건을 모두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
 여기에 제목을 ‘우리 모두의 잘못’으로 뽑은 건, 여기서 ‘우리’라고 함은 제3세계 국가를 제외하고 먹고 살만한 나라의 국민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소위 OECD 국가의 일원인 대한민국 국민도 포함이 될 터인데, 이들에게 넘쳐나는 재화가 결국 일부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민들의 수탈로 이루어졌으며, 부국들이 함부로 소비해버리는 물자로 얼마나 많은 ‘없는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지를 아쿠아리오-오리온, 약자로 A&O 그룹의 회장 사모님, 베네주엘라 빈민가 출신으로 열두 살에 알코올중독자 기자의 눈에 띄어 그때부터 잠깐, 잠깐 양도 가능한 정부情婦 생활을 하다가 미스 유니버스가 된 인물인, 서시, 양귀비, 왕소군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아름다운 나이마 폰세카의 입을 통해 자주 언급을 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지난 세기 끝 무렵부터 세계적 골칫거리로 등장한 국제적 테러 사건을 첨가해 추리 소설을 위한 완벽한 조합을 만들어 냈다. 다국적기업, 도둑, 암살자, 천부적 재능을 지닌 수사관, 미녀, 테러.
 추리소설에서 거의 모든 문제는 대개 부자의 악한 행위로부터 시작한다. 이 작품에서는 프랑스 국적의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 아쿠아리오-오리온 그룹이 등장한다. 이름부터 가히 엽기다. 약자로 하면 A&O, 무엇이 생각나시는가. 난 한 방에 이 그룹의 회장 로멩 라크루아 씨가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모든 것을 ‘소유’한 인물로 설정을 한 것으로 읽었다. 그러나 작가 피게로아는 그가 비록 거대기업을 만들기까지 선한 일만 하지는 않았어도 인간 자체가 그리 나쁜 사람도 아니고, 될 수 있는 한 적법하고 양심적인 경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했다. 대기업, 거대조직이라는 것은 세포망처럼 자꾸 자기 복제를 통해 꿈틀꿈틀 움직이는 생명체와 몹시 닮았다. A&O에서도 한 부서에는 선량한 과학자/기술자가 설계한 바닷물을 담수화 하는 장치와 아이디어를 도용해 그 기술로 요르단에서 거액을 투자한 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원천기술을 발명한 기술자는 바다 한 가운데에서 보트 폭발로 순식간에 행방불명 됐으며, 그의 동업자이자 매부인 빅토르 데르데리안은 차량 폭발로 한 팔과 다리 한 짝을 잃어버린 채 외딴 섬에 박혀 아들과 함께 살고 있으며, 아내는 이 사건으로 죽고 말았다. 이 기술 도용과 요르단에서의 사업을 진두지휘한 인물이 아무 이유도 없이 강에 빠져 죽어 자살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이 회장 자리에 오를 때까지는 절대 자살할 생각이 없었던 부회장 마티아스 바리에레. 이어 프로젝트를 이어받아 진행하던 클로드 타베르니에 마저 이유 없이 강에 빠져 비슷하게 죽어버리고, 요르단 현지에서 사업에 참여하던 압둘 샤미 역시 죽음을 맞았으니 이거야말로 연쇄살인 아닌가 말이지. 그러나 걱정 마시라. 상상초월의 추리력을 자랑하는 우리의 주인공 가에타노 데르데리안이 있는 한 세상엔 참평화가 있으리니.
 이렇게 흥미진진한 스토리이긴 한데, 그리 읽기가 쉽지 않을 걸? 왜 그러느냐고? 역자의 한국말 실력에 조금 회의가 든다. 추리 소설 읽는 것이, 내용이 아무리 복잡다단해도 추리소설인데 말씀이지, 논문 읽는 것보다 결코 쉽지 않게 씌어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나는 오늘도 역시 번역 자체가 잘했네, 오역이네를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니다. 난 서반아어를 하나도 모른다. 스페인어를 전공해서 마드리드에서 오래 공부를 했다면 정확한 번역이겠지 뭐. 근데 그렇다고 다는 아니다. 어찌 한국 사람이 우리말 읽고 이해하기가 이렇게 힘드냐고. 오죽했으면 내가 이 책을 통해 동감하며 한 방에 딱 알아들었던 내용은 아래 쓴 것이 유일했을까.


 “사랑은 사람의 가슴을 우아하게 스쳐 지나가지 않는다. 사랑은 사람의 가슴을 난폭한 망치질 한 번으로 산산조각내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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