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모아젤 보바리
레몽 장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1998년 5월
평점 :
품절


 

 

 작가 이름만 보고 선택한 책. 레몽 장. 내가 읽어본 장은, 글쎄 프랑스에도 장 씨가 있지 뭐야, <책 읽어주는 여자>와 <카페 여주인> 두 편. 둘 다 생각만큼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근데 왜 또 읽었느냐고? 레몽 장은 우리나라에도 두 번인가 온 적이 있고, 책 깨나 읽었다 하는 사람들한텐 입에 와서 착착 감기는 이름들, 김화영, ‘최윤’이라고 필명을 쓰는 최현무, 평론가 김치수, 이들의 지도교수가 장 씨였으며, 특별히 김화영이 <책 읽어주는 여자>의 ‘역자해설’에서 이이가 얼마나 특별한 작가이며 교사였는지를 입에 침이 마르게 ‘과찬過讚’ 즉 지나치게 칭찬하는 바람에 <책 읽어주는 여자>가 그리 감명 깊지도 않았음에 불구하고 한 권 더 고른 것이 <카페 여주인>이었으며, 그것 역시 별로여서, 이제 레몽 장의 마지막 작품으로, 이것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완전히 끝이다, 하는 마음으로, 구하기 쉽지 않은 책을 헌책방을 뒤져 사 읽은 내력이다.
 141쪽. 근데 본문이 29쪽에서 시작하며, 한 페이지에 달랑 열여섯 줄, 한 줄에 원고지로, 즉 띄어쓰기도 한 자로 봐서 모두 서른 자가 들어가는 현묘한 편집을 했다. 즉 한 페이지에 원고지 2.4매. 모두 113쪽 (초등 수학: 29~141쪽은 141-29+1 = 113)이니 원고지로 치면 271.2, 즉 272 장이면 단편 소설, 기껏해야 짧은 중편으로 봐야 하겠다. 이걸 도서출판 여백은 책 껍데기에 레몽 장, 점 찍고, 장편소설, 이라고 해놓았으니 출판사 이름 하나는 잘 지었다. 여백餘白. 지금은 절판.
 본문이 29쪽에서 시작하면 앞에는? 당연히 역자 서문. 책을 넘기면 “이 소설을 읽는 기쁨을 배가하기 위해서는 필히 옮긴이의 말을 읽기 바랍니다.”라고 첫 장에 써 놓았다. 책의 길이고 편집이고 간에 나는 옮긴이의 말을 건너뛰고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건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쓴 모든 작품을 읽은 상태였고, 심지어 플로베르 평전까지도 완독한 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플로베르 평전에 대한 독후감을 썼다가 완전 쪼다 된 바가 있었지만(그래 지금은 독후감도 흔적 없이 삭제해버렸고 비싸게 주고 산 책도 내다 버렸다. 그 후 다시는 특정 책 한 권을 읽기 위해 책 읽는 루틴을 어기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 평전 역시 플로베르의 작품을 섭렵하지 않은 독자가 읽기엔 재미없을 거 같다는 취지였는데, 이 책 <마드모아젤 보바리>를 재미나게 읽기 위해서도 반드시 먼저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의 선행독서가 있어야 한다, 라고 나는 단정한다. 그것 말고도 이왕이면 줄리언 반스가 쓴 <플로베르의 앵무새>도 미리 읽어두면 금상첨화이며, 더없이 좋으려면 플로베르의 <부바르와 페퀴셰>까지 미리 읽어두는 일.
 이 책에선 레몽 장의 아이디어가 재미있다. 본문 첫 페이지(그러니까 책의 29쪽)를 열면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마지막 장면이 그대로 씌어있다.
 “모든 것을 팔고 나자 12프랑 75쌍띰만이 남았다. 이것은 보바리 양을 할머니 집으로 보내는 여비로 쓰여졌다. 할머니는 그 해에 돌아가셨고, 루오 영감 또한 중풍에 걸려 한 분 남은 숙모가 그녀를 키웠다. 가난했던 숙모는 생계를 꾸리기 위해 그녀를 방직 공장에 보냈다.”
 즉 보바리 부인이 극약을 먹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고, 보바리 씨 역시 어린 베르뜨 하나를 남겨둔 채 피식, 고꾸라져 죽었으니 이제 세상에 남은 보바리는 오직 하나, 베르뜨. 아직 결혼하지 않았으니 이 고아 소녀 베르뜨가 ‘마드모아젤 보바리’가 된다. 즉 <마드모아젤 보바리>는 <보바리 부인>의 속편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건, <보바리 부인>에서 일종의 악당으로 등장해 결국 레지옹 도뇌르 훈장까지 가슴팍에 달고 마는 약사 ‘오메’를 기억하시나? 세월이 흘러 방직공장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베르뜨 앞에 역시 다 커서 이제 성인이 된 오메의 아들 나폴레옹이 나타나 낡은 책을 한 권 건네주니, 한때 금서禁書 판정을 받았던 <보바리 부인>. 베르뜨는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어렸던 시절의 소꿉동무 나폴레옹은 여전히 베르뜨를 사랑하고 있어 그녀를 수소문한 끝에 찾아온 것.
 그러니까 소설 속에서 <보바리 부인>의 내용은 전부 정말로 있었던 일이었고, 그걸 콧수염만 울창한 대머리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소설로 만들었다는 전제가 깔린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나는 저절로, 흔히들 그러하니까, 마드모아젤 보바리인 베르뜨가 앞으로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오메의 아들 나폴레옹과 연인 사이로 발전하려는가 보다, 하고 뻔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베르뜨는 마침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는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한테 연락도 없이 찾아가, 자신의 가정에서 벌어졌던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를 그렇게 까발릴 수 있느냐고 항의하기에 이르고 실제로, 조카 꺄롤린을 파산에서 면해주기 위해 거의 전 재산을 팔아 이제 거렁뱅이 비슷한 처지로 전락해 늙은 하녀 펠리시떼, 앵무새 루루와 함께 셋이서 살고 있던 플로베르 씨에게 일요일마다 찾아가 몇 번의 대화를 하는 가운데 쉰다섯 살의 노인과 스무 살 처녀 사이에 은근한 사랑의 군불이 지펴진다.
 자, 스토리는 여기까지. 그러니 나폴레옹과의 연애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어머니의 방종한 삶과 아버지의 찌질한 일생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여 사법 당국에 의해 외설 판정을 받은 책을 쓴 플로베르와의 연애 이야기라니 참 포인트 하나는 잘 짚었다. 아니 그런가.
 재미있다. 분량이 책 한 권으로 만들기엔 너무 짧긴 하지만 흥미로운 건 사실이다. 그리고 절판. 뭐라? 플로베르가 베르뜨하고 하냐고? 에라, 이……, 안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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