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시대의 연애 창비세계문학 64
왕샤오보 지음, 김순진 옮김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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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편 <황금시대>와 짧은 장편 <혁명시대의 연애>를 담은 책. 창비가 이런 면에서 마음에 든다. 다른 출판사 같았으면 마법의 편집술을 써서 각 편을 한 권씩 만들어 모두 두 권의 단행본을 내지 않았을까 싶은데, 쪽 당 스물다섯 줄을 배치하면서 굳이 웬만한 분량의 책을 만들어놓았다. 잘난 척할 때는 무지 밉다가 이럴 땐 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애증의 출판사가 바로 창비다.
 책의 앞날개에 나온 작가소개를 보면, 왕샤오보(王小波)의 생몰연대가 1952~97. 베이징에서 태어나 97년 45세 경에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등진 인물이다. 뭐 아까운 나이지만 마흔다섯에 죽는 일이 전혀 없는 건 아니라서 그럴 수 있다고는 쳐도, 1949년 중국혁명 후 하필이면 ‘인민의 적’으로 낙인찍힌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고, 중학교 일학년 때 문화혁명을 만나 한 번 더 조리돌림을 당하는 아버지를 바라보아야 하는 운명에다가 학교도 그만두어야 했으며 이 년 후엔 대륙의 남서쪽 끝, 일찍이 제갈량이 촉의 2대 황제 유선에게 출사표를 써 던지고 출정을 했던 윈난(雲南)지역의 생산건설병단 일원으로 일해야 했다. 참 힘든 시대를 살았던 이. 이때부터 우리 나이 스무 살이 될 때까지의 윈난에서의 경험은 나중에 중편소설 <황금시대>로 다시 탄생하게 된다. 이후 산둥성 소재 생산대를 거쳐 71년부터 약 5년간 몇몇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을 하고, 이 시절의 경험 역시 다른 작품의 소재가 되니 바로 <혁명시대의 연애>다. 어느 작가가 있어 자신이 겪었던 일들이 나중에 작품의 소재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만, 작은 물결(小波)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왕샤오보의 <황금시대>와 <혁명시대의 연애>의 주인공(들)이 행위하고 생각하고 경험한 모든 것들이 바로 작가의 그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이 들만큼 구체적이다. 역자 김순진은 해설에서 왕샤오보를 ‘중국의 제임스 조이스’니 ‘중국의 카프카’니 말도 안 되는 별명을 소개하기도 하지만, 두 작품의 주인공 왕얼(王二)이 “작가 자신의 그림자(페르소나)라고 말해”진다고 설득력 있는 평을 전하기도 했다.
 작가의 청소년 시절의 교육은 중학교 1학년이 끝이다. 그리고는 곧바로 문혁의 파도에 휩쓸려 윈난에서 3년, 산둥성과 베이징에서 7년 세월을 보낸 왕샤오보는 놀랍게도 학교를 그만 둔 12년째 되던 해에 중국인민대학에 합격을 하니 그의 나이 스물여섯. 결혼과 졸업 후 2년 간 교사 생활을 한 왕은 서른두 살 때 아내와 함께 피츠버그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년 만에 석사 학위를 받고 그 뒤 또 2년 동안 아메리카와 유럽 등지를 실컷 돌아다니다가 서른여섯 살 때 베이징으로 돌아와 베이징대학 사회학과 강사로 교단에 서면서 본격적인 자기 작품을 출간하기 시작한다. 그가 45년의 길지 않은 생을 산 것은 이렇게 파란만장한 인간사를 보내, 인간이 겪을 삶의 총량을 서둘러 끝마쳐서이었을까? 남다른 재주와 행동력과 용기가 있었던 사람으로 보여 그의 짧은 삶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여태까지 읽어온 중국 작가들의 문화혁명에 대한 시각과 조금 다르다는 점이었다. 그러다가 역자 해설을 통해 ‘조금 다름’이 무엇인지 한 번에 이해가 됐다.
 다이허우잉, 모엔, 위화, 옌롄커 등의 작품을 통해 본 문화혁명은, 주로 ‘선한 우리편’이 혁명의 주체였던 홍위병 등의 핍박을 간신히 버텨내든지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든지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왕샤오보는 자신의 가족이 ‘인민의 적’으로 분류되는 계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선한 우리편’도 아니고 홍위병을 비롯한 가해자들이 ‘나쁜 너네편’도 아닌 것으로 규정했다. 그저 혁명시대, 우연히 자신의 황금시대가 겹친 역사적 전환시절에는 누구나 복권에 당첨될 수 있을 뿐이라 이야기한다. 복권 당첨은 당첨인데 복권이 두 종류가 있어서 하나는 행복복권, 또 하나는 불행복권. 특히 혁명시대엔 불행복권에 당첨되면 특성상 당첨된 이들이 사라짐에 따라 시간이 갈수록 내가 당첨될 확률이 높아지는 반면, 행복복권에 당첨되는 확률은 점점 줄어드는 시기라고 시니컬하게 이야기한다. 이는 작가 스스로, 또는 두 작품의 주인공인 두 명의 왕얼이 혁명시기의 고난을 그리 큰 불평 없이 그냥 넘어온 것하고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왕샤오보는 소설 속에서 다량의 성적 묘사를 첨가했다. 심지어 <혁명시대의 연애>의 서序, 첫머리에 이렇게 써놓기도 했다.
 “이것은 섹스에 관한 책이다. 섹스는 본인의 힘을 추진력으로 하지만, 때로는 자발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이하 생략)
 오호, 그래? 이런 머리글을 읽고 어찌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언제나 그렇듯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지만. 이 책이 섹스에 관한 책이라면, 세상의 모든 것이 섹스다. 그렇다. 바흐를 들으면서 섹스를 느낀다는 노 시인의 말을 다시 따올 것도 없이 세상의 거의 모든 일은 섹스라고 은유하는 교감交感 또는 소통疏通의 진행과정이니까. 황금시대나 혁명시대에는 더 특별한 교감과 소통이 필요했으리라. 그런 의미라면, 이 책은 섹스에 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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