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다 이야기 을유세계문학전집 66
스노리 스툴루손 지음, 이민용 옮김 / 을유문화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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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0년대에 아이슬란드의 시인이 쓴 북유럽 신화. 13세기, 지금부터 무려 800백 년 전이면 벌써 209대 교황이 다스리던 유럽이라서 이 <에다 이야기>의 프롤로그엔 엉뚱하게도 기독교, 이슬람교를 비롯한 서아시아 종교의 원형이 먼저 등장한다. 즉 전지전능한 신이 있어서 하늘과 땅, 기타 등등을 ‘창조’했고 맨 나중에 두 인간, 아담과 이브를 만들어 후손들이 세상에 퍼졌다고 서두를 깔아둔다. 이어 대홍수, 주정뱅이 노아가 만든 방주 등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 왜냐하면, 교황이 두 눈 부릅뜨고 있는 환경에서 아무리 유럽의 변두리 아이슬란드라 하더라도 함부로 새로운 천지창조 이야기를 거론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성경에 나오는 것이 진리이지만, 북쪽 저 미개한 종족들이 사는 곳엔 한 시절에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라고 기름칠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봐야겠다.
 실제로 처음엔 ‘오딘’이란 인물을 트로이의 마지막 임금 프리아모스의 딸이 낳은 후손으로 트로이가 멸망한 다음에 세상 곳곳을 떠돌다가 저 세상의 끝, 지금의 스웨덴 지역에 터를 잡고 왕을 해먹은 작자이며, 심지어 ‘토르’의 후손으로 설정을 해놓았다. 이렇게 밑밥을 깔아놓은 다음에야 기독교 대륙 유럽에서 <에다 이야기>의 본문을 써내려갈 수 있었으니, 역시 인간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뭐라고? 그렇다. 이데올로기. 그중에서? 맞다. 종교 이데올로기. 수천만의 인간을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몰살할 수 있는 힘을 종교 이데올로기가 쥐고 있다. 기독교뿐만 아니다. 이슬람, 힌두, 불교(인도의 아소카 왕을 보시라), 수많은 사화士禍를 만들어낸 철학으로서의 유교까지 다 마찬가지다. 그러니 맞지? 종교는 명백하게 인류의 아편인 것이.
 본문은 스웨덴 지역을 다스리는 현명하고 마술에 능통한 귈피 왕이 ‘강글레리’라는 이름으로 여행을 다니다가 모종의 숙박지에서 지혜로운 세 명의 임금, 하르(높으신 분), 야픈하르(똑같이 높으신 분), 트리디(셋째 분)을 만나, 강글레리가 묻고, 세 명의 임금이 답을 하는 식으로 1부 “궐피의 홀림”을 구성했고, 2부는 궁정시인 또는 음유시인과 같은 말인 ‘스칼드’인, 역시 마법에 능통한 ‘에기르’가 여행을 떠나 ‘브라기’라는 남자를 만나 그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정리한 것으로 만들었다. 왜? 자기 이야기가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천지창조와 잡신들에 관한 전설임을 신정사회에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 내 생각. 천지창조 이야기는 세상 어디서나 비슷할 거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고, 공통점이 하나 있으니 허황하다는 거.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각각 맡은 일(선동자, 통치자, 많은 것을 아는 자, 색칠한 방패를 든 자, 상의 신 혹은 보호자, 날씨의 신, 거세한 말 등등)이 있었던 열두 신이 있었다고 한다. 세상이 본격적으로 생기기도 전에 니플헤임이란 도시가 생겼고 니플헤임, 이름이 ‘젖꼭지 도시’라서 그런지 도시의 가운데에 샘이 있어서 거기서 여러 강이 발원을 했다고 하는데 항상 불꽃이 너울거려 아무나 살 수 없었다고 하니 그냥 특별한 정령이 살고 있었다고 감안을 하자. 여기서 발원한 강에서 독을 품은 거품이 흐르고 불꽃 속에서 타르 찌꺼기 등이 엉겨 단단하게 굳었었는데, 날씨가 추운 북국이라 독성을 띤 이슬비가 내리더니 얼어 서리로 변해 세상을 하얗게 뒤덮어 버렸단다. 여기에 멀리서 불꽃과 불덩이가 날아왔다고 하니 화산폭발이라도 했는지 모르겠는데, 덕분에 뜨거운 바람이 불었고 서리가 이슬이 되고, 물방울이 되고, 물방울이 모인 거품 속에서 남자의 몸을 한 거대한 생명체가 하나 나와 거인의 이름을 ‘위미르’라고 했단다. 위미르의 왼쪽 팔에서 남녀가 하나씩 태어나고, 한쪽 발이 다른 쪽 발과 어울려 또 아들을 하나 낳았다는데, 발이 교차한 것으로 봐서 생식행위의 은유가 아닌가 싶다. 여기에 서리가 녹아 이슬이 되고 여기서 또 한 생명체가 탄생한 것이 태초의 암소 ‘아우둠라’이고, 아우둠라가 서리 낀 얼음덩어리를 핥아 먹고는 삼일 만에 ‘부리’라는 남자가 탄생해 ‘보르’라는 아들을 두었고, 보르는 거인족 베스틀라를 아내로 맞아 아들 셋을 낳아 첫째가 오딘, 둘째는 빌리, 셋째가 베였단다. 이렇게 신족은 거인족의 돌연변이로 태어난 것이란다. 저 위에 서두에서 말한 거하고 또 다르다. 이런 거 자꾸 따지면 신화는 못 읽는다. 그런가보다 하자.
 이 보르의 아들들이 최초의 거인 위미르를 죽였다. 세 아들들은 암소가 소금기 있는 얼음을 핥아 생긴 부리의 자손이니 자기의 직계 조상을 죽인 건 아니고, 하여튼 그렇게 됐는데, 이때 위미르가 흘린 피가 바다와 호수, 강이 됐고, 살은 대지, 뼈는 산맥을 만들었다. 이빨과 어금니 부서진 잡뼈들은 바위와 자갈로 되었다니 진짜 거인은 거인인가 보다. 볼테르가 쓴 <미크로메가스>에서 나오는 거인 아니었는지 몰라?
 이런 거 말고도 여러 전설, 신화, 주로 오딘(보탄)을 비롯한 신들, 착한 신뿐만 아니라 ‘로키’라는 이름의 중상모략, 음모, 모든 신과 인간의 치욕을 대표하는 신과 기어이 신들의 몰락을 가져오는 로키가 낳은 세 명의 괴물 이야기까지 재미있게 얘기하느라 고생은 하는데, 13세기 초, 지금부터 800년 전이면 넋을 잃고 읽었겠지만 세월이 흘러도 너무 흘러 흥미로웠다는 뻔한 거짓말은 도무지 하지 못하겠다. 

 다만 하나 관심을 끄는 것은, 십 수 년 전에 읽었던 <니벨룽겐의 노래>가 지극히 인간들 중심으로 되어 있어서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와 비슷하지만 연결고리가 약한 것이 의아했었는데, 이 책의 2부 뒤편에 나오는 ‘금gold - 수달의 배상금, 안드바리의 보물’부터 전개되는 이야기가 <니벨룽겐의 반지>와 거의 유사하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오딘, 로키, 회니르가 세상 탐방을 가 강가에 이르렀을 때 수달 한 마리가 연어를 잡아 막 먹으려고 하는 것을 로키가 돌을 던져 수달을 죽이고 연어까지 몽땅 차지했던 것. 그것들을 들고 한 농가에 들러 구워 먹으려 했더니, 흑마법에 능통한 집주인이 말하기를 수달이 자기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래 수달 가죽 속을 완전히 금으로 메우고 겉가죽도 보이지 않게 금으로 싸 돌려주면 죄를 용서해주겠다고 한다. 그래서 오딘은 물 속 바위틈에 살던 난쟁이에게 가 마지막 남은 조그만 금반지 하나까지 몽땅 내놓으라고 명령을 했고, 딱 하나 남은 반지까지 빼앗긴 난쟁이는 반지를 소유하는 이는 반드시 죽게 될 거라고 저주를 퍼붓는다. 이렇게 시작해 저 뒤에 브륀힐트와 그룬힐트의 알력, 벨제와 지그문트, 지그프리트까지 이름만 조금 다르고 이하 거의 내용이 같으니 어찌 흥미롭지 않겠는가 말이지. 그러나 이야기가 아주 요약되어 있어 아무리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를 좋아한다 해도 추천은 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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