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고달파 1
모옌 지음, 이욱연 옮김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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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 말리는 모옌 씨. 여전히 무대는 시골 벽지다. 청 말부터 중화민국 시절까지 지역에서 나름대로 선한 이름을 날렸던 대지주 서문뇨 씨가 주인공이다. 이름 이상하시지? 서문뇨. <수호지>의 호색한 서문경과 같이 성이 ‘서문西門’이요, 이름이 ‘료鬧’다. 그래서 ‘서문료’인데 자음접변 순행동화에 의거해 ‘서문뇨’라고 쓴다. 저 ‘료鬧’자가 시끄러울 료. 중화민국 시절까지 지주 신분을 유지했다하면, 아무리 ‘나름대로 선한’ 지주라도 중화인민공화국에 접어들어 어떻게 됐을까? 맞습니다. 사회분위기라는 것이 있어 많은 농민출신의 인민들이 그를 불쌍하게 여겼을지언정 당연히 악덕지주로 몰려 총살을 당하고 만다. 그것도 다행이다. 한 방에 갈 수 있으니. 이 서문뇨는 그것이 억울해서, 살아생전 자기 집을 둘러싼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생기지 않게 활수한 은혜를 베풀었건만 집안을 거덜내는 것도 모자라 바로 자신의 도움을 받았던 그 사람들에 의하여 총살형에 처해진 것이 너무 억울해, 이 양반이 염라대왕 전에 머리를 조아리기는커녕 난 죄 없다, 억울하다 바락바락 기어오르고 산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지옥의 고문까지 당하면서도 기어이 억울해, 억울해 악을 쓰는 바람에, 아 그 자식 되게 시끄럽네(鬧), 성가신 일을 참지 못한 염라대왕께서, 그래 너를 다시 세상에 보내줄게, 하고 콧바람을 한 번 휭 불어, 다시 세상에 태어나긴 했지만 정신차려보니 장대한 물건을 달고 수놈 나귀로 나왔다는 거 아닌가. 다시 윤회의 사슬을 타게 된 서문 선생은 레테의 강변에서 망각의 즙을 제조하고 있던 꼬부랑 할멈 몰래 망각의 묘약을 땅바닥에 슬쩍 흘려버려 전생의 기억을 모두 간직한 채 다시 자기가 죽었던 저택의 나귀로, 그것도 1950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지 일 년이 채 못 된 시절에 다시 태어났으니 어찌 좋은 팔자를 기대하리오.
 일찍이 서문뇨 선생에게 정실부인 백씨가 있었으나 슬하에 아이가 생기지 않아 백씨가 거의 강권을 해 자신이 친정에서 몸종으로 데리고 온 영춘을 침대에 밀어 넣어 두 번째 부인으로 삼아 딸 아들 쌍둥이를 낳으니 큰 아이가 아들로 이름이 금룡金龍이요, 두 번째가 딸이어서 보배로운 봉황 보봉寶鳳이니 더 이상 좋을 수 없었단다. 근데 선생이 젊은 영춘을 한 번 품었는데 다시 나이 든 백씨의 금침에 들겠는가. 거기까지면 그래도 좀 나은데, 젊은 살을 한 번 맛을 본 선생은 또다시 젊은 여인네 추향이를 첩으로 들인 바 있었다. 왜 이런 지난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일개 가축에 불과한 나귀로 태어났으니 나귀의 주인이 있을 거 아닌가. 바로 그 주인이 누군가 하면 한 겨울에 동네 사당에 갓난 아이 하나가 빽빽 울고 있는 걸 서문 선생이 안고 들어와 먹여주고 재워주고 나름대로 정성껏 키워 장성시킨 집안의 머슴 남검藍臉. 남藍은 쪽 빛깔 남자요, 검臉은 뺨 검자라, 푸른 뺨이란 이름으로 얼굴의 반 정도를 푸른 점이 덮고 있어서 이름을 그리 지은 것이다. 서문 선생이 동네 농민들한테 총 맞아 죽고 나귀가 되어 환생을 해보니, 이 남검이란 놈이 글쎄 자신의 어여쁜 둘째 마누라 영춘을 아내로 맞아 말 그대로 봄을 맞는(迎春) 중인 거였다. 아내와 쌍둥이 남매까지 남검이 거두어 자식 이름도 서문금룡, 서문보봉에서 남금룡, 남보봉으로 바꾸었으니 속이 편할 이치가 없다. 그래 나귀로 태어나 이제 ‘서문나귀’로 불리는 서문뇨 선생의 두 번째 생은 날 때부터 시끄럽기 이를 바가 없으니, 이 책을 읽는 행위가 바로 서문뇨 선생의 시끄럽기 짝이 없는 몇 번의 환생, 순서로 하면 나귀, 소, 돼지, 개, 원숭이라, 사람이었던 시절까지 합해 여섯 번의 윤회를 감상하는 일이 된다.
 세계적인 수다꾼인 모옌의 책 <인생은 고달파>가 재미없기도 쉽지 않은 이유는, 1950년이면 5년 전에 한반도의 북쪽에서 그랬듯이 차근차근 지주, 자본가들을 숙청하기 시작했을 때이고, 당연히 토지개혁을 단행해 지주를 제외하고 농사만 지으면 일인당 1무 6촌의 땅을 ‘잠깐’ 불하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집단 농장 형태로 전환하다가, 드디어 1966년을 맞아 문화혁명을 시작하면 앞으로 10년이 지나 마오 주석이 숟가락 놓을 때까지 홍위병이란 광풍이 한 바탕 휘몰아치고, 이어서 개방의 바람을 맞아 지난 시절에 딱 금 그어놓은 줄 알았던 자본주의가 다시 대륙을 점령해버리는 등 조금도 쉴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뭐 모옌의 다른 작품들도 중국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멀리는 일본군 침입 시절부터 시작해 현대 중국까지의 변화무쌍한 시절과 사람들의 변신을 그려온 바와 같이 이런 종류의 입담엔 도가 텄으나, 이 책에선 놀랍게도 모옌 선생이 직접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소년, 청년, 중년의 모습으로 직접 입을 털고 있기도 하다.
 이 책도? 그렇다. 이 책도 그가 쓴 다른 작품, 예컨대 <붉은 수수밭(혹은 ‘홍까오량 가족’)>, <개구리>, <풀 먹는 가족>처럼 시골 깡촌에서 벌어지는 엽기발랄한 인간들에 의한 난리법석을 그리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역시 다른 작품들처럼 모옌의 <인생은 고달파> 역시 기본적으로 사랑 이야기다. 사랑도 그냥 갑식이, 을숙이가 하는 사랑, 대충 사랑하다 우리 결혼이나 해버릴까, 해서 혼인을 하고, 같이 늙어가거나 한 판 코피 나는 부부싸움 끝에 이혼해버리는 사랑이 아니라, 질기고 드런 사랑, 애초에 팔자 또는 운명에 깊고 깊게 새겨진 빌어먹을 사랑의 이야기다. 내가 알기로, <열세 걸음>이던가 하여튼 모옌이 쓴 다른 작품의 해설에서 읽은 바, 모옌이 윌리엄 포크너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특별히 좋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작품이 <인생은 고달파>, 원래 제목 <생사피로生死疲勞>인 것 같다. 물론 내가 읽은 범위 안에서 말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포크너의 시골 엽기취향과 마르케스의 붐 문학적 요소. 이런 것들이 중국으로 넘어와 대륙의 황사와 태풍을 만나면 딱 이런 모습으로 변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작품. 궁금하시지? 읽어보시면 된다. 만사 시끄러울 료鬧자가 넘실거리는 흥미로운 소설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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