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
살만 루슈디 지음, 김선형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살만 루슈디가 쓴 일련의 작품 군을 읽고, 굳이 장르를 대보자면, 인디아 또는 파키스탄 식 붐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붐 문학’이라고 하면 저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 사이에 한때 유행했던 소위 마술적 리얼리즘을 일컫는데, 루슈디의 작품 속에선 라틴 아메리카의 마술은 마술도 아니다. 루슈디의 다른 작품들, 예컨대 호메이니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아 단번에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만든 <악마의 시>, 동화와 소설의 중간쯤에 위치한 <하룬과 이야기 바다>, 마술적 요소로 보면 조금 약한 <한밤의 아이들>까지 모두 이슬람 또는 인디아-파키스탄 사람이 아니라면 묘사할 수 없는 절묘, 기묘, 기상천외한 우화나 마술, 환상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글쎄, 내 경우엔 이 이슬람, 인도/파키스탄의 신비한 이야기들 가운데 많은 부분이 당최 이해하기 곤란한 지경에까지 이를 정도였던 것을 고백하고 시작하자.
 내가 생각하기에 살만 루슈디의 역작 <수치>의 가장 큰 수치는, 루슈디가 모국어가 아닌 오랜 세월 자기민족의 식민지배자였던 영국의 언어로 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이런 의견은 올해 들어 집중해 읽은 알제리 태생의 프랑스어 작가 아시아 제바르를 통해 공감하게 된 것이다. 식민지배자들의 언어로 하필이면 자기 민족의 “수치스러운 현대사”를 써야 했던 것이 두 번째고, 세 번째는 책의 주인공 오마르 하이얌 샤킬의 탄생과정, 그리고 나중에 샤킬의 아내가 될 수피아 지노비아 하이더의 지체장애가 마지막 수치이자 모든 수치의 청산이 되는 것으로 읽었다.
 작품의 무대는 14세기부터 15세기 까지 파키스탄의 현대사. 현대사인데 14, 15세기? 그렇다. 이슬람력歷으로 14세기는 622 + 1,300 = 1,922년부터 2,021년까지이고, 15세기는 그 후 100년 동안이란다. 모두 5부로 구성되어 있고, 4부의 제목이 “15세기에는”이니 작품의 초판이 나온 1983년을 기준으로 하면 소위 미래소설이기까지 하다. 작품을 쓰던 1980년대 초반은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파키스탄은 정치적으로 안정적이라 말하기 좀 그런 수준, 이슬람의 각 계파들 사이의 공격과 테러로 치안이 불안한 나라로 구분을 한다. 그래서 책에도 두 명의 국가 원수급 등장인물이 출연을 한다. 라자 하이더와 이스칸더 하라파. 둘은 사촌 동서지간으로 한 때 미모의 유부녀 핑키 아우랑제브를 두고 대립을 하기도 했으나 주인공 오마르 하이얌 샤킬과 방탕한 생활을 즐겼던 이스칸더 하라파가 핑키도 얻고, 나중에 정신을 차려 먼저 국가의 수반이 되어, 사촌동서 라자 하이더를 육군의 수장으로 임명한다. 뭐 결국엔 이 육군 수장이 지시해 죽은 채 목이 매달리는 교수형을 받게 되지만. 이 정도면 주가 되는 굵직한 내용은 다 끝난다. 육군 수장이 쿠데타 아니면 어떻게 국가수반을 목매달 수 있나. 그렇게 해서 차기 대통령이 되는 라자 하이더 역시 좋은 팔자로 생을 마감할 수 없을 테니 줄거리는 이미 다 밝힌 것이라는 뜻. 책에서도 처음, 아니면 적어도 상당히 앞부분에 정치투쟁의 결과를 밝혀놓고 진행을 하니 지금 내가 하는 행위는 스포일러 아니……지?
 명색이 장편소설인데 위에서 이야기한 정치투쟁 하나로 된 단일 구성일 수는 없는 것. 그럼 주인공 오마르 하이얌 샤킬에 대하여 좀 알아보자. 오마르 하이얌의 할아버지 올드 미스터 샤킬이 거대한 침대 위에서 마지막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지 못했을 때, 그에게는 무진장한 돈을 가지고 있다는 거짓말과 저택과 거대한 기름진 땅과 무지하게 쌓여있는 가재도구들과 세 명의 딸만 있었다. 하여간 이이가 죽자마자 차용증을 들고 들이닥친 채권자들에게 시세 이하로 평가된 부동산을 다 내주고 세 따님이 마지막으로 속세에서 벌인 일이 영국인들과 영국인들하고 친한 사람들에 국한해 초대한 초호화판 파티였다. 이날 밤, 세 따님 가운데 한 명이 임신을 하게 되고, 셋은 저택에다 무시무시한 엘리베이터를 장치한 후 집 안에 파묻혀 이후 65년 간 고요히 살게 된다. 그날부터 아홉 달 조금 넘게 지나 누구의 아이인지 밝히지 않고 태어난 인물이 바로 오마르 하이얌 샤킬. 이 아이는 한 방에 엄마 세 명을 갖게 되는 팔자를 타고 나, 애초부터 총명한 두뇌로 파키스탄 최고의 외과의사로 성장하지만, 엄마로부터 모든 행위에 대한 수치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키워진 매우 뚱뚱한 남자로 자란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대단히 건조하게 읽힌다. 루슈디가 쓴 <수치>를 읽어보면 이런 모든 장면에도 환상과 우화와 마술적 요소가 비프스테이크(거의 날고기) 위에 뿌린 소스처럼 듬뿍 배어 있어 도무지 지루할 틈이 없다는 건 지금도, 저 앞에서도, 그리고 뒤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오마르 하이얌은 정말로 특이한 캐릭터의 주인공이다. 이이는 절대로 이야기를 주체적으로 끌어가는 능동적 주인공이 아니다. 파키스탄의 권력과 소설책의 흐름은 위에서 말한 힘 센 작자 두 명이 죽을힘을 다 해 견인하면, 오마르 하이얌이 견인차 위에 턱,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그냥 묻어가는 구도다. 이스칸더 하라파가 유부녀 핑키 아우랑제브를 인터셉트 할 시절에는 그와 더불어 술과 여자를 비롯한 모든 환락을 같이 했고, 라자 하이더가 하리파 치하 육군총수로 힘을 기르기 시작할 무렵에는, 뇌열병(뇌염과 뇌막염으로 구분하지 못해 대강 이렇게 부르던 병)으로 정신지체가 된 라자 하이더의 큰딸 수피아 지노비아 하이더의 생명을 구해주고 그 아이가 크자 그만 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르고 만다.
 아, 정말 독후감 쓰기 힘들다. 써놓고 보면 재미난 텍스트를 읽고 어찌 이리 재미없게 독후감을 쓸 수 있을까 싶어 쪽팔리기 이를 데 없다. 루슈디는 책 속에서 스스로 이 <수치>는 기본적으로 사랑 이야기라고 한다. 사랑은 사랑인데 좀, 아니, 많이 살벌한 사랑 이야기. 삶의 사랑. 삶 속에서 여자와 남자의 사랑. 평생 마음속에 애정이나 증오나 권태나 진력이나 질투를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한 순간에 폭발하거나 표현하거나 실행해버리는 끔찍하기도 하고 겁나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고 현명하기도 한 사랑 이야기란다. 그건 책을 직접 쓴 루슈디의 의견이고, 독자인 나는 영국에서 영국의 언어로 쓴 자기 조국의 (쪽팔린)현대사를 위한 변명 같았다. 재미있다.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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