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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 아래서
존 골즈워디 지음 / 떡갈나무 / 1997년 5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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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에서 옥스퍼드의 데블런 교수는 영국 소설가 가운데 베스트 네 명이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헨리 제임스, 조지프 콘라드를 꼽은 반면, 워스트는 아니지만 반드시 평가절하 되어야 할 작가로 윌리엄 셰커리, 찰스 디킨스, 토마스 하디, 존 골즈워디를 선택했다. 다른 사람 작품은 다 읽어봐서 찬성 또는 반대할 수 있었지만 유독 한 명, 존 골즈워디의 소설을 한 편도 읽어보지 않아 뭐라고 찍소리 한 번 할 수 없었던 것이 이번에 <사과나무 아래서>를 읽은 사연이다. 우리나라에서 골즈워디의 번역서를 읽으려면 사실 <사과나무> 말고는 선택의 여지도 없는데, 정작 그의 대표작으로 꼽는 건 <재산가>와 <포사이트 가家 이야기>이며 이 중에서도 <재산가>로 1932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고 책 앞날개에 적혀있다. 그래 사실 이 <사과나무> 한 편으로 골즈워디를 판단하는 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란 건 확실한 듯.
이거 우리나라 70년대를 풍미하던 멜로 영화와 비슷하다. 요즘 열심히 읽고 있는 중국 남송시대 곤극, 천극, 월극과 내용이 같지는 않지만 유사하다. 남자 주인공은 사법시험을 눈앞에 둔 잘생긴 청년이나 과거를 보기 위해 수도 항저우를 떠나 이제 겨우 곡강曲江에 도착한 선비는 아니지만 막 대학을 졸업해 변호사 자격증을 딴 부르주아 청년. 여자 주인공은 룸살롱 35번 아가씨 미스 박도 아니고, 사당에 기거하는 가난한 아가씨도 아니고, 늙은 남편과 살던 과부도 아니라 시골 숲 속 농가의 과부 여주인의 조카로 거의 하녀 비슷한 신세의 처녀 아가씨다.
우리의 주인공 프랭크 어셔스트가 친구 하나와 함께 제발트처럼 웨일스 지방 일대를 도보여행 하고 있었는데, 대학시절 축구를 하다가 무릎을 다친 적이 있는 어셔스트의 무릎이 부어올라 숲 속에서 길을 잃고 있다가 근처 민가에 숙박을 하게 된다. 친구는 하루 만에 떠나가고 프랭크만 혼자 몇 주 동안 농가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떨어진다. 아이고 징그러워. 그럼 최소한 보름이 넘는 동안 이 부르주아 변호사 젊은이는 한 번도 팬티를 갈아입지 않았다는 말씀. 이런 남자의 눈길을 딱 한 번 받는 것으로 순진하고 순박하고 무구하고 마음 착한 메건 양은 그만 사랑에 빠져버리고 만다. 사랑은 두 손으로 치는 손뼉. 이에 어셔스트도 메건의 순결하고 선한 진면목을 발견하고는 손바닥도 마주치고, 입술도 마주치는 자연현상이 벌어지고 만다.
여기까지는 좋다.
어떠셔? 우리의 프랭크 어셔스트. 부르주아 인텔리겐챠, 런던 사교계에도 이름이 알려진 젊은이가 겨우 이름자나 쓸 줄 알 뿐 교양이라고는 쥐뿔도 없이 그저 착하기만 하고 때 묻지 않은 시골 아가씨와 맺어질 수 있을까? 아니, 맺어지는 게 바람직한가? 이 책을 번역한 소설가 홍성중은 “어서 메건에게 돌아가, 어셔스트!”하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었다는데, 참 나, 외칠 걸 외쳐야지, 좋아, 그럼 둘이 진짜로 교회에서 식 올리고, 시청 호적계에 가서 혼인신고 하면 행복해질 거 같아? 흠. 이 책이 초간본인데 1997년에 찍었다. 그럼 인간 행위와 사고를 탐색하는 소설가를 직업을 삼은 홍성중의 나이도 만 서른일곱. 세상을 알 만한 나인데 어찌 그런 걸 ‘외치고’ 있을 수 있었을까.
스토리는 여기까지만 써놓아도 뒤 이야기는 눈에 훤히 그려지시리라 믿는다. 그냥 전형적인 70년대에 대한민국에서 유행했던,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멜로물. 만일 그의 대표작인 <재산가>나 <포사이트 가의 이야기>도 이 수준이라면 미치너가 주장한대로 이이가 아무리 노벨 문학상을 받은 유명작가라 해도 평가절하가 당연하겠지만, 다시 말씀드리건데, 이 작품 하나로 골즈워디를 그리 폄훼할 수는 없겠다.
이 책, 지금 절판. 출판사도 망한 거 같다. 마지막으로 책을 낸 것이 18년 전이니. 구해 읽으려 애쓰실 필요는 없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