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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앙 ㅣ 연극과인간 중국현대희곡총서 10
야오위안 지음, 김우석 옮김 / 연극과인간 / 2019년 3월
평점 :
상앙. 사마천의 <사기열전> 8편인 상군열전에 의하면, “상군은 위나라 왕의 여러 첩이 낳은 공자로서 이름은 앙이고 성은 공손씨이며 그 조상은 성이 희姬였다.” (김원중 역, 민음사 <사기열전1> 207쪽. 2007) 라고 한다. 희씨 성은 주나라 왕가의 성姓이니 원시 봉건사회였던 주나라 초기에 왕족 하나가 주의 봉토를 받아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위衛’라 했던 모양이다. 아무리 서자라고 해도 왕자는 왕자였겠지만 야오위안은 책에서 상앙을 왕이 아니라 (왕의 아들인)공자가 천한 신분의 여인 ‘희랑’ 사이에 만든 사생아로 등장시킨다. 희랑은 나중에 자신의 손으로 눈을 파 맹인이 됐다가 노예 신분으로 떨어졌음에도 진나라 수도 함양에 도착해 기어이 아들 상앙을 만나는 것으로 각색했다.
나를 포함해서 상앙에 관해 사전지식이 좀 있는 독자라면 상앙이 변법, 즉 새로 바뀐 ‘상앙의 법’을 시행하기 전에 도성의 남문 앞에다 세 길의 장대를 세우고 이것을 북문으로 옮기면 금 50냥을 주겠다는 이야기가 반드시 나올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근데, 안 나온다. 대신 <사기열전>의 첫 장면, 자기 집안의 집사 수준인 중서자中庶子로 채용하고 있던 공숙좌가, 상앙이 현명한 줄 알고 있다가 위나라 왕에게 추천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임종의 침상에 드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주의할 건, 상앙은 위衛 왕실의 떨거지 사생아이고, 그를 거두어 자기 수하에 둔 이는 전국칠웅 가운데 하나인 위魏나라의 중신 공숙좌라는 거. 나라 이름이 우리말로 하면 비슷비슷해서 많이 헷갈린다. 위왕이 문병 차 중신 공숙좌의 집에 들렀을 때, 공숙좌가 말하기를 “제 중서자로 있는 공손앙은 나이는 비록 어리지만 재능이 빼어납니다. 원컨대 왕께서는 나랏일을 그에게 맡기고 다스리는 이치를 들으십시오.” 그러나 아무리 중신이라지만 일개 집사에 불과한 젊은이에게 어찌 나라 살림을 맡길 수 있으랴. 이를 눈치 챈 공숙좌는 주위 사람들을 물리고 다시 왕에게 말한다. “왕께서 공손앙을 등용하지 않으시려거든 반드시 그를 죽여 국경을 넘지 못하게 하십시오.”
때는 본격적인 전국시대. 천하의 영재가 있으면 영재를 채용하든지 죽여야 했다. 살려두면 다른 나라로 망명해 자신의 영재를 휘날려 창을 거꾸로 잡을 터이니 말이다. 죽어가는 공숙좌가 왕에게 그리 말을 했는데 그래도 좀 찜찜한 구석이 있어 상앙을 부르더니 그것도 훈수라고 한 마디 한다. “오늘 왕께서 재상이 될 만한 인물을 묻기에 나는 너를 추천했지만 받아들이지 않더라. 그래 만일 기용하지 않으시려면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고했다. 그러니 너는 이 길로 빨리 위나라를 떠라.” 이 말을 들은 상앙이 답하기를, “저 왕께서는 당신 말을 듣고도 저를 임용하지 않는데, 또 어찌 당신 말을 들어 저를 죽이겠나이까.” 하면서 공숙좌의 장사까지 다 지내고난 다음에 진나라로 가서 스물한 살의 젊은 군주 효공과 세 번에 걸친 면담을 통해 한 자리를 꿰어 찬다.
‘상앙의 법’이 무엇인가. 한 마디로 엄정한 신상필벌의 법칙이다. 잘 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반드시 벌을 주는 법. 이런 신법을 수립하기 위해 상앙은 당연히 무리하게 기득권 집단, 특히 왕족인 영嬴씨들과 다툼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고, 기존의 질서를 다 무시하고 신분, 토지, 사법, 과학, 심지어 계량형까지 통일시키는 등 놀라운 개혁을 일으켜 진나라를 천하무적의 강국으로 만든 반면, 개혁을 이루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문벌들과의 권력다툼 덕에 인간으로는 그리 큰 대접을 받지 못한다. 사마천도 “상군은 타고난 성품이 각박한 사람이다. 효공에게 벼슬을 얻고자 제왕의 도로 유세한 것을 보면 내용이 없고 화려한 말을 늘어놓은 것이지 마음속으로 하려던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군주의 총애를 받고 있던 신하를 이용하고, 자리에 오른 뒤에는 공자 건에게 형벌을 가하고, 위나라 장군 앙을 속이고, 조량의 충언을 따르지 않은 것도 상군이 은혜가 적은 것을 밝히기에 충분하다. 나는 일찍이 상군이 지은 책들을 읽었는데 책의 내용도 그가 행동한 궤적과 비슷하였다. 결국 상군이 진나라에서 좋지 않은 평판을 얻게 된 데는 까닭이 있었구나!” 라고 말한다. 사마천이 말한 상앙의 유세나, 공자 건에게 가한 형벌 등도 다 야오위안의 희곡에 조금 모습을 달리해 등장한다.
우리가 흔히 법가로 칭하는 이들, 상앙을 비롯해 오기, 한비자, 이사 등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같이 끔찍한 죽음을 맞는다는 것. 상앙은 자기가 모시던 효공의 아들 혜왕에 의해 거열형으로 몸통이 다섯 토막이 나서 죽고, 오기는 초나라 임금의 시신 위에 엎드려 왕족이 쏜 무수한 화살을 맞고 죽으며, 한비자는 그를 영입했지만 시기했던 이사의 모함으로 사약을 먹고 죽으며, 이사는 환관 조고의 모략에 의하여 허리가 잘리는 요참형을 당한다. 더불어 사마천을 비롯한 후대의 사가들에게 현대적 해석이 내리기 전까지는 좋은 평판을 듣지도 못하니 이들의 팔자가 그리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사상을 좇는 나라는 계속 발전을 하고, 그걸 거두는 나라는 종말을 향해 간다. 드라마 <상앙>에서도 결국 진나라 혜왕의 손에 거열형을 당해 죽음을 당하는 와중에도, 진나라의 대를 이은 신하 공손고와 <사기열전>에서는 코가 베어지는 반면 희곡 <상앙>에선 왼쪽 다리의 절단형을 당하는 공자 건은 한 목소리로 상앙의 법은 계속 실행하되 상앙이라는 자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상앙의 엄격한 법률체계를 이어간 진나라는 서기전 230년대에 법가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던 재상 이사와 더불어 한나라에서 영입한 한비자의 활약으로 전국을 통일하기에 이른다. 개인은 불행하고 그들의 생각을 실천한 나라는 융성했던 시대의 풍운아, 그를 돌아보기 좋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