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터브리지의 시장 대산세계문학총서 137
토머스 하디 지음, 이윤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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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잉글랜드의 풍속 하나를 소개한다. 토머스 하디 본인이 쓴 책의 서문에 나오는 첫 번째 각주를 그대로 옮기는 일이기도 하다.


 “잉글랜드에서는 부유층이 아니면 이혼이 불가능했던 17세기 말 이래 가난한 남편들이 아내를 팔아넘기는 관습이 생겨나 19세기 말까지 이어졌다.” (7쪽 각주)


 <캐스터브리지의 시장 The Mayor of Casterbridge>를 연재한 시기가 1886년. 그러니 이런 유쾌하지 못한 관습이 거의 끝나가는 말기라서, 잉글랜드 사람이라도 이제는 더 이상은 정말로 아내를 팔아버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기였을 것인데. 그런데 소설의 시간적 공간은 19세기가 아직 3분의 1도 채 지나지 않은 해의 늦은 여름부터 시작하니 대략 1830년대 초. 1886년의 영국 독자들은 책의 주인공이자 뜨내기 건초 묶기 일꾼인 마이클 헨처드가, 50년 전에, 근방에서 가장 큰 가축시장이 열리는 웨이든-프라이어즈에 도착해 술이 잔뜩 취해 자기 아내 수전과 딸 엘리자베스-제인을 5기니, 즉 5파운드 5실링에 팔아넘길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마이클 핸처드가 진심으로 아내와 딸을 팔아넘길 작정을 한 것이 아니라, 술김에 헛소리를 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난데없이 여태까지는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던 선원 한 명이 등장해 빳빳한 5파운드짜리 잉글랜드 은행권 한 장과 1실링짜리 동전 다섯 개를 식탁보 위에 올려놓는다. 모두가 식탁보 위에 놓인 돈을 바라봄으로써 상황이 완전히 무르익은 것을 알게 된, 전통적인 계약과 상인의 나라인 잉글랜드 국민인 수전 핸처드, 마이클의 아내가 남편에게 한 마디 하기를, “이제 다음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마이클,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어. 만일 당신이 그 돈에 손을 대면, 나와 아이는 저 남자와 함께 떠나. 명심해. 나는 농담하는 게 아냐.” 그러나 스물한 살의 젊은, 그리고 술에 취한 남편 마이클은 이것조차 아내가 감히 남편에게 훈계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불쾌해진 마음에 아내를 떠나보내고 만다.
 완전히 술에 취한 마이클은 천막을 치고 장사를 하는 밥집의 탁자에 고꾸라져 잠이 들어버린다. 이튿날 새벽에 홀로 잠에서 깬 마이클은 아직 아무도 집밖에 나오지 않을 시간에 남의 눈에 띄지 않게 교회로 들어가 지성소에까지 다가가 성경책 위에 고개를 숙이고는 큰 소리로 외친다.
 “저, 마이클 핸처드는, 9월 16일 아침, 이 신성한 장소에서 하느님 앞에 서약합니다. 저는 제가 이제껏 살아온 햇수만큼 그러니까 앞으로 21년 동안 어떠한 독한 술도 입에 대지 않겠습니다. 저는 이 결심을 제 앞의 이 성경책에 대고 서약합니다. 제가 이 서약을 어기면 귀가 멀고, 눈이 멀고, 몸을 움직이지 못해도 좋습니다.”
 성경책에 대고 맹세를 한 마이클은 뉴슨이란 이름의 선원이 준 5기니를 포함해 자신이 가진 모든 돈이 떨어질 때까지 몇 달을 아내와 딸을 찾아 헤매다 그들이 생각지도 못한 다른 곳으로 떠났다는 풍문을 듣고는 잉글랜드의 남서부에 위치한 웨섹스 지역의 자치도시 캐스터브리지로 발길을 돌린다.
 세월은 언제나처럼 말도 없이 18년을 흘려보낸다. 18년 전에 타당하지 못한 관습으로 뉴슨에게 팔린 아내 수전과 딸 엘리자베스-제인이 다시 자신이 팔린 웨이든-프라이어즈로 돌아온다. 천막을 치고 밥집을 하며 불법으로 럼주를 판매했던 노파가, 이제 쇠락한 가축시장보다 더 초라하고 더러운 좌판을 깔고 우유밀죽을 팔고 있었으며, 노파를 통해 남편이었던 마이클 핸처드가 캐스터브리지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모녀는 당연히 캐스터브리지로 향하게 되는데, 아 글쎄, 술꾼 마이클 핸처드가 아니고, 술을 딱 끊은 핸처드 씨가 자치도시 캐스터브리지의 홀아비 시장 겸 건초와 곡물 중개상인의 사장으로 부귀를 누리고 있는 거였다.
 그래서 헤어진 가족이 만나느냐고? 만난다. 그게 끝이냐고? 아니, 소설의 시작이다. 당연히 캐스터브리지 시장의 가족이 재결합은 하는지, 만일 한다면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 그 오랜 세월동안 건강한 육체의 소유자로 아직 마흔도 채 되지 않은 시장이 새벽마다 불끈 치솟는 정념을 굳건히 버틸 수 있었는지, 건초 묶는 일을 하던 잡부 출신이 홀로 건초, 곡물 중개상을 잘 해나갈 수 있는지, 오래 떨어져 살던 딸과 화목하게 될지, 기타 등등은 안 알려줌.
 작품이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것이라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거의 첫 장면부터 앞으로 어떤 배역을 하게 될지 눈에 보일 정도인데 거기다가 새롭게 줄거리를 함부로 이야기하는 짓은 하지 못하겠다. 빅토리아 시대의 작품이라고 해서 구식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동시에 고전이다. 아직도 제인 오스틴과 브론테 자매와 디킨스와 하디를 읽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 본성과 심리는 여전하기 때문이고, 이들의 작품이 기본적으로 심리소설이기 때문이다. 문학동네에서 낸 하디의 <더버빌가의 테스>에서 충청도 사투리가 만발하는 장면을 별로 어색함 없이 읽으신 분들은 <캐스터브리지의 시장>에서 캐스터브리지가 잉글랜드의 남서부 지역이라 그들의 사투리를 한반도의 남서부 지역인 전라도 사투리로 번역한 것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게 읽을 수 있을 듯하다. 원래부터 하디가 잉글랜드 판 지역주의 소설가로 그의 모든 작품에서 어마어마한 사투리가 등장한단다. (그래봐야 내가 읽은 하디는 <…… 테스>, <이름 없는 주드>, 그리고 <캐스터브리지의 시장>에 불과하지만) 이 책에서도 진짜 끝내주는 건 또 다른 주인공 혹은 주연급 조연으로 등장하는 똑똑한 도널드 파프레이의 스코틀랜드 사투리라는데, 파프레이의 대사는 표준말로 번역을 했다. 그것도 우리나라의 다른 사투리로 번역을 하다보니 맛이 나지 않아 할 수 없이 표준어로 만들었다는데, 번역본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이 정도는 이해를 해야 할 듯하다.
 <…… 테스>, <이름 없는 주드> 두 편으로 하디는 그만 읽으려 했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또 읽게 됐는데, 하디의 책이 재미는 있다. 근데 바로 이 ‘재미’라는 것이 소위 소설문학을 읽는데 최고의 즐거움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달리 말을 하지 못하겠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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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8-08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 요즘 이거 출퇴근길에 전자책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재밌어서 막 내릴 역에서 허둥지둥 내리고 그럽니다. 역시 이야기꾼 하디. 전 이제 그 아내 팔아버린 놈이 높은 자리에 떡하니 올라간 부분까지 읽었어요(폴스타프 님이 딱 포스팅에 언급한 부분까지. 근데 이건 정말 초반아닙니까! 그 뒤에 펼쳐질 내용은 과연 두둥~). 대체 무슨 수로 그렇게 올라갔을지 궁금.... ㅋㅋㅋㅋ

Falstaff 2019-08-08 09:53   좋아요 1 | URL
크... 그러시군요.
이제 진짜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하는데, 그걸 미리 알려드리면 정말 민폐 같아요. 하여튼 온갖 난장판이 벌어지기 시작할 겁니다. 오해와 갈등과 거짓과 흥망성쇠와 ㅎㅎㅎ 기타 등등.
재미있게 읽으셔요. 그저 재미가 장땡입니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