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센 말로센 1
다니엘 페나크 지음, 진인혜 옮김 / 책세상 / 1998년 5월
평점 :
절판


 

 허무맹랑한 잔혹극. 며칠 전, 나는 잔혹한 것이 싫다, 라고 선언한 바 있다. 단, 처음부터 허풍의 옷을 입힌다면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메튜 본이 연출한 영화 <킹스맨>에서 엘가의 위풍당당한 행진곡에 맞춰 사분의사박자로 머리통이 펑펑 터져 날아가는 거 같은 장면. 다니엘 페차크가 쓴 말로센 시리즈도 바로 이 단서조항의 전형이다. 한 번 그대로 옮겨볼까?
 “시트로앵 15의 열쇠구멍에 열쇠를 집어넣으려고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등졌을 때, 그는 차가운 칼날의 공격에 의해 척수가 바로 다섯 번째 경부추골 윗부분까지 절단되는 것을 느꼈다. 형사는 순식간에 팔과 다리를 사용할 수 없었고,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뒤이어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전혀 의식이 없었다. 그는 최후의 일격을 당하고 자기 자동차위 트렁크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 자동차를, 그가 결코 빌려주겠다고 동의하지 않았을 낯선 사람이 다소 난폭하게 운전하고 있었다.” (623쪽)
 위 인용만 읽어보면 왜 이게 허풍의 옷을 입혔다는 것인지 짐작하지 못할 수 있다. 그게 말로센 시리즈의 매력이다.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충만한 농담으로 꽉 차 있어서, 저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더 독한 장면을 묘사를 해 독자로 하여금 잠깐 눈살을 찌푸리게는 하지만, 곧 다시 새로운 농담과 허풍과 어이없음과, 심지어 허탈할 정도의 눈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까지 아무런 스스럼없이 해대는 바람에 저까짓 잔혹 따위가 어찌 심각하리오, 라고 그저 한 번 픽, 웃을 수 있다. 이런 시리즈는 순서에 크게 상관없이 읽어도 괜찮다. 어차피 킬링타임 용으로 읽히는 걸 막을 수 없으니까. 페나크가 <몸의 일기> 같은 의미 있는 작품을 썼다고 해서 코믹 잔혹극을 쓰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 작가는 무죄다. 이 <말로센 말로센>이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그러면 내가 읽은 순서는 2-1-4가 되고, 마지막이자 다섯 번째 <정열의 열매들>을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에 읽을 것 같으니 세 번째 <기병총 요정들>만 남겨놓았다. 물론 안 읽어도 상관이 없다. 순서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어디서고 읽기를 끝내도 괜찮다는 말과 같다는 말. 근데 <정열의 열매들>은 몇 번 얘기한 적 있던 작가 김운비가 번역을 해서 고르지 않기가 쉽지 않았다. 그것뿐이다. 세 번째 <기병총 요정들>을 읽을까, 말까 지금 궁리중인데, 시리즈에서 딱 하나 남은 거, 올해 안에 읽을 거 같긴 하다. 그러니 이 독후감을 읽으시는 분들께선, 부담 갖지 말고 한 권 정도 시간 죽일 용도로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하다. 세상이 언제나 진지하고 근엄한 건 아니니까.
 언제나 사랑이 넘치는 엄마의 무릎 아래엔, 장남이자 시리즈의 주인공인 뱅자맹 말로센을 비롯해 모두 일곱 명의 형제, 자매가 산다. 사랑이 넘치는 엄마. 넘치고 넘쳐 넘실넘실 흘러 넘어 일곱 명의 형제자매들이 전부 다른 아빠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뱅자맹은 대가족의 장남으로 기꺼이 여섯 동생들을 먹여 살리고, 교육까지 시키며, 시집보내고(비록 곧바로 과부가 되긴 하지만), 심지어 자라서 과부가 될 동생 클라라가 태어날 때는 자기 손으로 받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고금동서를 통틀어 이리 어진 장남을 찾는 것이 어찌 가당키나 할 손가. 여기까지도 아니고 간질 증세가 활발하게 나타나는 대형견 쥘리우스와 클라라의 아들 세퇴낭주에다 자기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여주인공 쥘리까지 모두 함께 산다. 이 구성원들은 시리즈가 진행하며 보태지기도 하고 죽어서 빠져나가기도 한다. 물론 일곱 형제자매와 쥘리우스는 변하지 않지만.
 엣다 모르겠다. 직구.
 이번에 읽은 <말로센 말로센>은 원래 작가가 의도한 시리즈 네 편 가운데 마지막 작품이었으며, 종결부분을 보면 충분히 그럴 자격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으로 시리즈가 마쳤으면 더 좋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인종이다. 왜냐하면, 페낙 같은 유명 작가가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 힘이 떨어지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이번 책의 특히 앞부분은 시리즈의 다른 책과 비교해 ‘재미없었다’가 아니라 ‘덜 재미있었다’. 본문만 737쪽에 이르는 장편소설을, 비전문가인 내가 이렇게 얘기할 자격도 없고 주제 넘는 꼴이지만, 500쪽 안쪽으로 줄여놓았으면 더 긴박하고 재미있는 책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2권으로 넘어가 1권하고 비교할 수 없는 속도감으로 휙휙 넘쳐나는 노골적인 거짓말과 과장과 허풍과 장난기가 등장해야 비로소 이제야 말로센을 읽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이런 장난과 허풍을 삭제하고 책을 읽으면 이게 무슨 소설이며 산문인가, 비난할 수밖에 없다. 페낙은 소설가이면서도 소설보다 아동문학 작품이 훨씬 많은 작가다. 그래서 나는 이 시리즈를 페낙(혹은 페나크)이 어른들을 위해 철없는 이야기를 만들기로 작정을 한 결과물이라고 단정한다. 혹시 진짜 이 시리즈를 읽어보실 분을 위하여 말씀드리오니, 문학적 엄숙주의는 잠시 뒷간에 눠버리고 오심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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