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라이터
리처드 포드 지음, 박영원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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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쓴 <독립기념일>을 재미있게 읽고 당장 검색해 찾아 읽은 작품. 만일 <독립기념일>을 읽지 않은 상태였다면 이 책에 깊이 빠질 수 있었을 것이지만, <독립기념일>의 여운이 아직도 잔뜩 남아있는 나는 아쉽게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제 다음 주에 서른아홉 살이 되는 ‘나’ 프랭크. 결혼해서 삼남매를 키우다가 첫째 랠프를 잃는 불행을 당한다. 프랭크는 랠프가 결국 숨을 거두자 그길로 할리데이비슨을 사서 무작정 서쪽으로 달리다가 대륙의 중간에도 못 간 상태에서 내가 지금 무슨 지랄인가 싶어 횡단을 포기하고 돌아온 적이 있는 그냥 평범한 중산층 남자. 미시간 대학을 졸업하고 소설을 써 약간의 인기를 누리기도 했지만 이제 더 이상은 소설을 쓰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스포츠 잡지사의 기자로 직업을 바꾸었다. 랠프가 죽고, 모터사이클을 타고 방랑을 할 뻔하다가 말고, 스포츠 기자가 되고, 잠깐 휴직을 한 상태에서 한 학기 동안 이웃도시에 가 대학 강사로 있으며 몇 번의 연애사건을 겪고, 그러다가 우연히 자기와 아무 연애 사실이 없는 여자의 두툼한 편지를, 암만해도 자신의 여성편력을 눈치 채고 있던 것 같은 아내가 발견하게 되면서 이혼을 당해, 아들 폴, 딸 클래리사의 양육권도 아내 앤에게 빼앗겼지만, 아직도 아내, 아니지, 이젠 ‘전처’라고 해야 하지, 전처와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 사실 부부가 결혼하기보다 더 힘든 게 이혼하는 거고, 이혼보다 더 힘든 게 이혼한 다음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거라고 들었다. 다행스럽게 난 이혼의 경험이 없어 그냥 그런가보다 하지만, 주위에 이혼한 친구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래봤자 딱 한 명이다. 내 주위엔 이상할 정도로 이혼한 커플이 없다.) 사실인 모양이다. ‘나’ 프랭크 베스컴은 그 어렵다고 하는 걸 해내고 있다. 뭐라? 그게 자랑이라고? 하긴, 그리 말하신다면 할 말 없긴 하다.
 근데, 이혼한 다음이라도 전처 또는 전남편이 재혼하는 꼴을 눈 뜨고 못 보는 모양이다. 이혼에 관한 한 복잡하고 오랜 전통을 가진 미국사람들도. 우리나라 사람은 확실하게 그렇단다. 소설 속에서도 ‘나’와 전처가 가장 궁금해 하는 건, 상대가 혹시 재혼하려하지 않을까, 하는 것. ‘나’가 지금 비록 어여쁘고 몸매 좋은 젊은 이혼녀 비키와 결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면서도 비키가 요구만 한다면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결혼할 용의가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돈 많은 내과의사가 내 ‘전처’와 아이들을 부양하며 데리고 사는 꼴은 생각하기도 싫다. 특히 남성들의 경우가 더 심한 모양인데, 비슷한 이유 때문에, 또는 그렇기 때문에 이혼 후유증을 여성보다 훨씬 심하게 앓는 것 같다. 작품 속에도 프랭크 베스컴 역시, 겉으로 보기엔 그래도 혼자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이혼 후의 고독과 상실감을 견디기 위해 다섯 명의 이혼남들로 구성된 모임에 참가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 프랭크 베스컴의 인간관계는, 전처와 아이들, 애인 비키와 비키의 가족, 스포츠 잡지사와 직원과 인터뷰이들, 이혼남성 모임 회원들, 뉴저지 조용한 마을로 몇 년 후 <독립기념일>에서 부동산 중개인으로 변신한 프랭크가 눈부시게 활약할 중산층 도시 ‘하담’ 마을의 이웃 정도다. 책은 ‘나’가 위에 열거한 사람들과 목요일부터 부활절인 일요일까지 나흘간 벌어지는 일을 순차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물론 순차적이라 해도 특정 사건, 행위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리고 당연하게 현재의 인물이 있기 위해 과거사가 존재할 터이라 몇 명 되지 않는 등장인물, 얼마 되지 않는 시간적 무대라 해도 너끈하게 500쪽을 넘기는 분량이 만들어진다. 이런 경우 독자는 흔히 작가를 향해, 거 참 말 많다, 라고 하곤 하는데, 나도 이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거 참 말 많다, 하면서 투덜거렸다. 왜냐하면 이 책의 후속편이라고도 할 수 있을 <독립기념일>을 읽고 불과 넉 달 반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넉 달 전엔 4XL 사이즈의 콘돔을 훔치다가 발각이 나 베트남 출신 여성 경비원과 몸싸움을 벌이다 경비원의 얼굴을 걷어차는 바람에 가볍지 않은 죄로 법정에 출두할 예정이었던 폴이 이 책에선 먼저 죽어버린 형 랠프의 영혼에게 안부를 물어달라고 비둘기를 날려 보내는 열 살도 되지 않은 꼬맹이로 등장하니, 같은 역자가 번역해 비슷한 한국어 문장을 읽으며 솔직히 뭐 새로운 것이 있었겠어? 이미 결론을 다 알고 있는 터에 말이지. 그래서, 리처드 포드의 경우에 국한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이런 연작 비슷한 순문학 작품은 시간적 순서대로 읽어야 더 좋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책마다 새로운 사건이 펑펑 터지는 추리소설이라면 전적으로 스토리 위주로 읽어야 하니 순서에 의미를 둘 필요가 없지만(요새 맛들인 다니엘 페나크의 말로센 시리즈나, 전에 읽었던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세 연작 같은 것들),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철저하게 심리소설인 <스포츠 라이터>의 경우는 거꾸로 읽을 경우, 아니, 역순으로 읽었기 때문에 재미가 반감된 거 아닌가 싶다. 나는 이미 주인공 프랭크 베스컴이 어떤 심리를 가지고 사는 인간인줄 알며 아직까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새로운 능력,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부동산을 구입하게 만드는 화술을 갖고 있다는 것도 알고, ‘전처’라고만 나오는 여자의 이름이 ‘앤’이란 것도, 결코 키만 큰 유부남 내과의사와 결혼하지도 않을 거란 것도 아는데, 뭐가 더 궁금한 게 있었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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