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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의 밤 ㅣ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45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홍경호 엮음 / 범우사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서부전선 이상 없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 <개선문>. 이렇게 세 작품이면 레마르크는 졸업했다고 생각했다. 그리 틀린 발언은 아니지만, <리스본의 밤>을 레마르크 목록에 추가한 것 역시 참 잘한 선택이었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와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전쟁/전장을 무대로 한 반전소설이고, <개선문>에선 전쟁의 장면이 나오지는 않지만 나치 독일 치하에서 서방으로 탈출한 인물을 그리고 있다 해서 ‘망명문학’이라 한다는데 <개선문>에서 안나 제거스의 <통과비자>에 등장하는 (거의 대다수의)일반 망명객의 절망적인 기다림 같은 것은 발견하기 쉽지 않다. <리스본의 밤>은 첫 장면부터 바로 이 일반 망명객을 등장시켜 1942년의 리스본 타조 항에서 저 멀리 정박해 있는 미국행 여객선을 바라만 보고 있는 독일을 탈출한 ‘나’의 무력한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다. 포르투갈 정부로부터 얻은 체재기간도 며칠 남지 않았고, 아직 미국 영사관으로부터 비자를 얻을 수 있다는 어떤 귀띔도 받지 못했으며, 비자를 받았다 하더라도 뱃삯이 300달러나 부족한 상태.
(리스본에 도착한 망명객, 정확하게 말해서 망명 희망자들은 남프랑스 마르세유 항에서 스페인 비자, 포르투갈 비자, 프랑스 체재기간 만료 사이에서 극도로 절망적인 경험을 이미 한 번 이상 겪은 이들이기도 하다. 마르세유에서의 혼돈상황은 앞 문단에서 얘기한 안나 제거스의 <통과비자>에서 세밀하게 묘사를 하고 있다. 다만 <통과비자>를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그것에 앞서 이 <리스본의 밤>을 먼저 읽어 당시의 망명객들의 마르세유에서의 갈급을 이해하는 순서로 독서계획을 잡는 편이 좋을 듯하다.)
‘나’는 미국행 비자는 다음으로 하고 일단 모자라는 300달러를 마련하기 위해 바보같이 카지노에 간다. 그래 자신의 전 재산 62달러 가운데 56달러를 잃고 만다. 숙소에는 아내가 기다리고 있으니 ‘나’의 발걸음이 가벼울 수는 없었을 것. 늦은 밤에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누군가가 ‘나’의 뒤를 밟는다. 망명객이 다른 어떤 종족보다 뛰어난 직감 하나를 가지고 있다. 바로 쫓는 자를 발견하는 능력. 물론 오랜 시간 증명서 없이, 또는 가짜 증명서를 가지고 살며 해당 정부의 세관원, 경찰, 군인 등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발달시킨 여섯 번째 감각일 것이다. 누굴까. 경찰? ‘나’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더 천천히 발길을 옮긴다. 드디어 ‘나’를 따라잡은 정체모를 인물이 묻는다.
“독일 사람입니까?” “뉴욕으로 가고 싶습니까?”
그러면서 품 안에서 뉴욕 행 배표. 바로 저 앞 바다에 떠 있는 여객선의 승선표 두 장을 꺼내 갖고 싶으면 가지라고 말한다. “난 이제 필요 없으니까.”
대신 오늘 밤 자신이 가슴에 담고 있는 말을 들어달라고 한다. 여기쯤에서 직접 증명서 없는 방랑 망명객 생활을 경험한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는 말한다.
“우리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가끔 미치는 것을 나는 많이 보아왔다. 그리고 그들이 혼자 있기 싫어한다는 것, 어디에고 소속될 곳이 없는 자들의 공포로 괴로워한다는 것, 그리고 비록 낯선 사이라도 하룻밤의 동지가 됨으로 해서 그를 자살로부터 구해 낼 수가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16쪽)
‘슈바르츠’라는 가명으로 살고 있는 이 정체모를 사람은 심지어 미국 비자 스탬프가 찍혀 있는 남녀 두 장의 여권도 배표와 함께 전해줄 용의가 있다. ‘나’에게 생각하지도 못한 은총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격이다. 기록자 ‘나’는 리스본에서의 마지막 밤을 완전하게 슈바르츠가 하는 말을 들어주는 일로 채우게 된다.
기본적으로 사랑 이야기. 레마르크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사랑,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다. 사랑이 시대의 격랑에 휩쓸려 온갖 역경을 거치게 될 뿐. 어떤 신난과 고난이 와도 사랑은 사랑이다. 끝내 유대인인지, 독일인이기는 하나 나치에 반대하는 민주주의자 또는 공산주의자인지 밝히지 않지만 슈바르츠는 게슈타포 처남에 의해 체포당해 수용소에서 고문을 비롯한 온갖 고통을 겪고 풀려나 5년 전에 프랑스로 망명한 인물. 4년 결혼생활과 5년의 망명 세월 동안 아내 안나를 향한 그리움은 비탈에서 굴린 눈덩이처럼 커져 기어이 다시 독일로 잠입해 아내의 모습이나마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에 굴복하고 만다. 5년의 세월 동안 아내는 새로 결혼을 하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궁금하지 않다. 중요한 건 다른 남자의 품에 있건 아니건 간에 자신이 아직도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이고, 동시에 아내가 살아있다는 걸 확인하는 일로도 충분하니까. 그래 슈바르츠는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스위스에서 오스트리아로, 다시 독일까지 거꾸로 잠입해 아내 안나를 만나는데 성공한다.
왜 슈바르츠로 하여금 다시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독일로 가게 만들었을까. 그는 말한다. “나를 돌아오게 만든 것은 어쩌면 명명백백한 절망감”이었다고.
“나의 여력 전부가 탈진해 버렸고 살아남겠다는 그 원초적인 의지는 고독이 주는 냉기를 더 이상 견뎌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다시 세워나갈 힘이 다한 것이지요. 나는 옛 생활을 버릴 수도, 극복할 수도 없었으며 거기서 붕괴가 시작되어 썩어가는 악취 속에서 완전히 썩어버리거나 뒤로 물러서거나 그걸 치료하거나 해야 할 선택의 갈림길에 섰던 것입니다.” (88쪽)
그러나 아내를 만난 일은 슈바르츠의 긴 여정이 이제 새로이 시작했다는 걸 알리는 일일 뿐이다. 다시 그들에게 펼쳐지는 불안과 공포와 외로움과 가난과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가 펼쳐지니, 어떤 내용인지는 직접 읽어 확인하시라.
레마르크의 다른 작품, <서부전선 이상 없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 <개선문>과 비교해서 이 책 <리스본의 밤>이 더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결코. 그러나 그렇다고 범작 수준도 아니다. 역시 레마르크다. 불안과 고독 속에서 20세기 중반의 한 시절을 고통스럽게 흘려보낸 수많은 영혼들의 흔적을 매력있게 그려내고 있다. 다만 슈바르츠 한 사람의 이야기라 예시한 작품들보다 규모가 작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