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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사나이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47
그레이엄 그린 지음, 안흥규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주 오래 전, KBS 명화극장을 통해 본 흑백영화 <제3의 사나이>. 캐롤 리드 감독이 만든 불멸의 엔딩 씬. 이것이 기억나서 내가 아직도 밥 먹고 사는 회사의 사보에 지난 세기인지 이번 세기 초인지에 기고를 했던 적이 있다. 이제 독후감을 쓰려다 이 생각이 나서 파일을 뒤져보니 아쉽게도 보관하고 있지 않다. 흔히 허니문 카로 불리는 대관람차를 타고 꼭대기에 올라 주인공 롤로 마틴스(영화에선 Holly Martins)와 자그마치 오손 웰스에게 배역을 맡긴 해리 라임Harry Lime의 대화가 인상 깊었었다. 저 높은 곳까지 올라간 관람차 안에서 악당 해리가 밑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검은 파리 떼처럼 오밀조밀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보게 하고 죽마고우 롤로에게 말한다.

“자네는 저 점들 중 어느 하나가 동작을 멈춘다면, 영원히 멈춘다면 진정으로 동정심을 느낄 셈인가? 동작을 멈추는 점 한 개당 2만 파운드씩을 벌 수 있다고 해도 자네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돈을 갖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얼마나 많은 점들을 보유할 수 있을까 하고 계산해보겠는가? 소득세도 없는 돈일세, 이 친구야. 소득세도 없는 돈이라구.”
이건 책 속에 쓰인 것을 옮긴 것이고 내가 기억하는 건, “저 많은 점 가운데 하나가 없어진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나?” 이 정도였다. 해리라고 하는 악당은 그토록 많은 점들 가운데 몇 백만의 점을 소멸시킨 나치에 승전을 거둔 영국인이다. 그가 다시, 이번에는 자본주의, 즉 돈을 위해 수많은 점들 가운데 불행하게 선택된 몇 개의 점을 삭제하는 대신 점 하나에 2만 파운드의 세금 안 내는 돈을 벌려고 한다. 젊은 시절, 이 영화가 그레이엄 그린의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 건지 모른 채 그저 이 대사와 엔딩 씬에 매료되어버렸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몇 장 안 되는 영화 DVD 목록에 <제3의 사나이>가 들어있음은 물론이다.
책을 다 읽고 확 깨는 건, 엔딩이 소설의 결말과 다르다는 것. 어떻게 다른지는 당연히 가르쳐드리지 않겠다.
고전 스릴러로 일독할 만하다. 근데 솔직히 말하자면, 난 영화를 더 재미있게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