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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평점 :
소세키. 이 사람이 무려 에도 시대에 태어난 인물이다. 1867년생. 조선은 소세키가 태어나서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1876년에야 일본에 의해 개항을 하고 마흔세 살 되던 해에 식민지로 떨어지니 얼마나 오래된 인물인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리 오래 묵은 작품 같지가 않아서이다. 물론 요새 사람은 아니지만 이미 죽고 103년이 흘렀다는 게 영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과거의 인물로 인식하게 된다. 서른세 살 되던 1900년에 국비 유학생으로 영국에서 유학했다고 하는데, 당시만 해도 변방이었던 일본의 젊은이가 태양이지지 않던 나라에서 그리 풍족하지는 않았겠지만, 거의 모든 문화의 최신 경향 속에서 지낸 것이 (당대 일본의 작가들을 포함해) 다른 아시아 작가들에 비해 매우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했을 것이다. 내가 뭐 제대로 알고 하는 이야기겠는가. 그냥 작가 소개를 읽고 때려 짚으면 그렇다는 말이지.
<도련님>을 출간한 때가 1906년. 1894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를 밟아버린데 이어 1905년 러일전쟁에서 아직 시퍼런 왕권을 쥐고 있던 로마노프 집안을 가볍게 물리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콧대를 세우던 시절이다.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러시아까지 쫓아냈으니 숟가락만 들면 조선반도는 저절로 밥상 위에 올라올 예정이니 정권이나 국민들 모두 제국주의적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 그러나 소세키는, 적어도 내가 읽은 그의 작품 속에서 이런 정치적, 사회적 움직임에 관해서는 입을 열지 않는다. 순문학적이고 다분히 사소설로 구분할 작품을 약 십 년가량 만들어낸 후 49세를 일기로 눈을 감는다.
<도련님> 역시 마찬가지. 1인칭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는 성격이 급하고 뭐든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다혈질 소년으로 태어나 성격을 바꾸지 못한 채 물리학교를 졸업하고 저 시코쿠 근방 바닷가 온천을 낀 작은 촌마을의 중학교 수학교사로 임용된다. 거기서 1년을 채우지 못한 채 다시 도쿄로 오기까지 만나서 부대끼는, 사람 사는 얘기를 적어놓은 것. 그렇다. 그게 다다. 이렇게 얘기하는 건, 그곳에서 ‘나’가 만난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사람이 살아가며 만나서 관계를 맺는 다양한 인간들이 하나도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집단Gesellschaft에서도 별의 별 인간종이 다 있는 법이다. 그걸 <도련님>의 주인공 ‘나’는 이제 갓 스무 살이 되어 한 시골마을에서 처음 발견한 것일 뿐. 아무리 읽어봐도 나는 소세키하고 별로 친하지 못하다. 이젠 정말 그만 읽어야겠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우미인초>, <그 후>, <행인>, <산시로>에 이어 <도련님>까지 여섯 권 읽었으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