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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아버지 ㅣ 펭귄클래식 114
도널드 바셀미 지음, 김선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책이 나온 것이 1975년. 바셀미는 벌써 누천년 이어오는 오이디푸스 적 친부살해의 신화를 부여잡고 이를 포스트모더니즘에 입각해 소설을 썼으니 바로 <죽은 아버지>. 우리나라에서도 작가 한승원이 살부계에 관한 작품 <아버지와 아들>을 쓴 적 있으나 바셀미처럼 순수하게 친부살해의 모티브를 주제로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두 작품에서 친부살해는 과거와의 단절, 그리하여 진정한 새 시대를 여는 장치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쓰는 건 사실 뻔한 이야기를 하면서 잘난 척도 하는 거뿐이다. 내가 주장하는 바는, 아들은(시대가 바뀌어 딸도 마찬가지로, 그래서 자식들은) 아버지를(역시 시대가 바뀌어 어머니를 포함한 부모를) 타도하고 진정한 자아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나는 아들만 둘 키웠다. 아이들이 머리통이 굵어져 이제 말을 알아들을 즈음해서 이렇게 얘기했다.
“내가 제일 듣기 싫은 말은, 너희들이 나를 존경한다는 거다. 세상에서 가장 찌질한 아이들이나 부모를 존경한다. 아버지는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 혹은 타도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내 아이들은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지나가는 말로도 하지 않는다. 생각해보시라. 우리나라에서도 존경할만한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 난 신채호 선생을 존경한다. 정치가 가운데는 전봉준. 작가 중에선 황순원. 군인은 안중근. 등등. 이런 이들을 놔두고 예를 들어 학교 교사가 아이에게 ‘너는 누구를 제일 존경하니?’라고 물을 때, 우리 주위에서 자주 보듯 ‘아버지요’, ‘어머니요’ 이러고 있는 꼴을 나는 도무지 못 봐 주겠더라는 말씀. 근데 아이들이 정작 누구를 존경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혹시 존경할만한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 아냐?
<죽은 아버지>를 열면 처음 세 페이지에 걸쳐 이미 죽어 누워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한글 고딕체로 적어놓았다. 아버지는 키가 3,200 큐빗. 1큐빗이 45.72cm이니까, 미터법에 의하면 죽은 아버지의 키가 무려 1,463 미터에 이른다. 놀랍지? 대단히 크다. 이런 거인인줄 모르고 첫 페이지에 나오는 문장 “곱게 빚어진 섬세한 콧구멍이 달린 코끝에서 땅까지, 5미터 반이, 삼각측량법으로 얻은 숫자”라는 걸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니 바셀미가 이야기하고 있는 아버지, 그 중에서도 ‘죽은 아버지’가 무엇을 대신하는지 짐작이 가실 터. 더구나 이미 죽었지만 자신이 죽었음을 거부하고 시시때때로 벌떡 일어나 허리춤에 찬 긴 칼을 번쩍 빼들고 무수한 생명들을 도륙하는 걸 취미로 삼으니, 더더욱 이 ‘죽은 아버지’의 의미를 눈치 채실 수 있을 터. 의미가 상실된 옛 규범일 수도 있고, 종교이기도 하고, 용도 폐기되었지만 권력층의 골방에서 아주 가끔 전가의 보도로 광휘를 휘날렸던 “전통”이란 이름의 똥 덩어리일 수도 있다.
책은 몇 명의 남녀가 수많은 인원으로 편성된 연대를 이끌고 죽은 아버지를 땅에 묻기 위해 행진하는 장면으로 만들어졌다. 유일한 구성이 죽은 아버지를 무덤까지 끌고 가서 가는 도중에 몇 명을 만나고, 통행을 거부당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모종의 난관을 거쳐 기어이 땅을 파고, 그 속에 죽은 아버지, 그러나 자신이 죽었음을 거부한 채 여전히 날뛰고 싶어 하는 아버지를 뉘인 다음, 그 위에 흙을 덮기 위해 불도저가 죽은 아버지의 눈에 보이는 것뿐이다. 이런 단순 구성과, 포스트모던 특유의 앞뒤를 종잡을 수 없는 문장들로 이루어진 대화나 묘사 등으로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독자는 독자의 권한으로, 작가가 의도적으로 해독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위에서 내가 적어놓은 것들이라고 한정해서 읽는다면 결코 오리무중의 혼란은 벌어지지 않을 듯싶다.
이런 단순구성 속에 바셀미는 절묘하게 한 편의 에세이를 삽입했다. <아들들을 위한 사용 설명서>. 이게 무엇인가 하면, 아직 죽지 않은 아버지, 옛 권위, 타도해버려야 할 대상을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지를 설명해놓은, 지극히 이해하기 쉬운 일상의 (재미있는)발견이다.
아버지는 죽여야 한다. 다만 직접 죽이지는 말라. 조금 기다리면 세월이 저절로 죽여줄 테니까. 그러고 나면 다음은 당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