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0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0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일 년 반쯤 됐나. 그때까지 나는 한국 페미니즘에 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당시 김연의 소설 <그 여름날의 치자와 오디>를 읽으면서 책 안에 등장하는 남자들이 하나같이 개새끼들인 것이 마땅하지 못해 “여자와 남자, 좀 서로 좋아하며 살자.”라고 독후감을 끝맺었다가, 아직 정신 못 차린 ‘개저씨’가 돼버린 일화가 있다. 그때 생각이 나서 해당 포스트를 다시 읽어보니, 지극히 국한된, 어쩌면 고립된 사회생활을 했던/하는 나는 여성계 일부에서 벌이고 있던 우리나라의 페미니즘에 완전 무식했으며, 당연히 여성주의자들이 남자란 포유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관해서도 무지해 그런 독후감이 나왔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 오해하지 마시라. 그냥 그런 경험이 있다, 하는 수준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니.
 그리하여 같은 이유로 버지니아 울프가 90년 전에 행했던 강연을 기초로 쓴 에세이 <자기만의 방>에 관해서, 비겁하고 소심한 나는 독후감 쓰기를 주저한다. 울프는 에세이에서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를 ① 여성은 어떤 존재인가, ② 여성이 쓴 픽션, ③ 여성에 관해 쓴 픽션으로 구분해서 고민을 하며, 여성이 픽션을 제대로 쓸 수 있기 위해서는 연 500 파운드(지금 가치로 한 5천만원 가량?) 정도의 고정된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개진하고 있다. 그러면서 셰익스피어 시절부터 여성이 ‘픽션의 생산’으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현상을 소개하며 자연스럽게 궁극적으로 성 해방까지 차분하게 논조를 끌어가고 있다.
 그게 90년 전이다. 아무리 자질이 있어서, 예를 들자면, 셰익스피어의 자질을 능가하는 여동생이 매리(이런 이름이라고 가정하자)가 있었더라도 결코 희곡을 쓰는데 필요한 기초교육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며, 집에서 야반도주해 런던의 극장과 접촉했더라도 치욕적인 대우만 받았을 것이며, 결과, 한 편의 작품도 쓰지 못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여성으로서 신세까지 망쳤을 것이라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해도, 울프의 정당한 가정법이다. 여성에게 돈과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백번 옳았다.
 그러나 지금은? 적어도 픽션을 생산하는 일 또는 직업에서는 완전히 역전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세계적으로 봐도 다양한 종류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문학상’들의 수상자 면면을 보면 여자가 남자보다 월등하게 많다. 문학상 수상작 말고 아깝게 떨어진 후보작 작가들까지 포함하면 여성작가가 남성작가의 두 배 이상 안 될까? 여성에게 돈과 공간이 주어지자 당장 이런 일이 생겼으니 울프의 선견이 정당했다는 걸 우리나라에서보다 어떻게 더 잘 보여줄 수 있는가 말이지.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건, 내겐 마치 역사책을 읽는 것과 비슷했다. 과거엔 이런 주장까지 할 정도로 어쩌고저쩌고.
 우리나라 문학판에서의 과도한 여초현상에 관해 뭐 할 말이 없지 않지만 이 정도에서 마무리를 하자.
 나의 치명적인 약점은 토론을 지나치게 싫어한다는 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