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박공의 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2
너대니얼 호손 지음, 정소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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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읽은 호손의 장편소설. <주홍 글자>와 <블라이드데일 로맨스> 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다. 완전히 내 입장에서 발언하는 건데, 더 재미있게 읽은 건 비교한 두 작품보다 훨씬 ‘덜’ 종교적이라는 의미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일찌감치 미국으로 건너와 뉴잉글랜드 지역의 광활한 밀림지역을 차지한 핀천 가문. 이들 가운데 야심과 욕심이 넘치고, 활달하며 매사 (지나치게) 적극적이고 그래서 공격적인 핀천 대령이 있었다. 대강 17세기 중엽 아닐까 싶고, 프랑스 군과의 전투에 참전해서 대령 계급장을 달았단다. 당시는 유럽에서도 마녀사냥이 가장 유행하는 스포츠였으며, 이런 유행은 신대륙에서 청교도적 맹신으로 한층 심화 발전시켜 마녀, 마법사 비슷하기만 하면 바로 인간사냥을 벌였던 모양이다. 이런 과도한 청교도적 분위기는 <주홍 글자>에서도 본 바 있으니 그런가보다 하면 된다. 하여간 그런 시절에 핀천 대령의 거대한 땅 노란 자위 부위엔 맑은 물이 퐁퐁 솟아나는 샘이 있었는데, 샘을 둘러싼 농토 몇 마지기를 직접 개간해 살고 있는 농부이자 목수인 매슈 몰이 또한 있었다. 원래 가진 자의 욕심이란 건 끝이 없어서 어떻게 하면 몰 가족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다 저택을 지어 자손만대 잘 먹고 잘 살게 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핀천 대령은 자신의 재산권을 당연하게도 양보하려 하지 않는 매슈를 어떻게 처리할까 몇날 며칠을 끙끙 앓더니 에라 모르겠다, 마법사로 몰아 목을 매달아버린다. 마법사 소유의 땅은 당연히 치안판사를 겸했던 핀천 대령이 꿀꺽 해 잡수시고. 그리하여 드디어 샘가 옆 비옥한 검은 땅 위에다 집을 짓는데, 당시만 해도 지역의 랜드 마크가 될 정도로 큰 저택으로 박공이 무려 일곱 개에 달하는 뻑적지근한 저택이었다. 핀천 대령이 얄궂은 것이 하필이면 집을 짓는 목수로, 자기 손으로 목매단 매슈 몰 씨의 아들 토마스 몰을 대목장 비슷하게 임명했다는 거. 매슈 몰의 목에 밧줄이 감길 때, 마지막 유언으로 그는 손가락으로 핀천 대령을 지목하면서 큰 소리로 “신이 저자에게 피를 마시게 할 것이다.”라고 저주까지 했는데 말씀이야. 그래서 그랬나, 맑은 물이 퐁퐁 샘솟던 샘은 일곱 박공의 집이 들어서자마자 검은 색으로 바뀌었으며, 동물이 이 물을 마시면 꼭 탈이 나기 시작했으니, 미국 판 <마농의 샘>? 하여간 매슈 씨의 아들 토마스는 오직 직업과 일과 보수만 여기고 어차피 지난 과거를 굳이 들출 필요는 없다는 생각으로 아주 탄탄하게 주문대로, 자손만대 잘 살 수 있는 집을 지어주었다. 당연하지, 돈을 받았으니까. 근데 오직 그것만?
 그리하여 이른바 오픈 하우스. 테이프 커팅을 하는 날, 대령의 집엔 통구이한 암소 두 마리와 돼지 여섯 마리, 삶은 개 열 마리를 준비해 부지사를 비롯한 상류계급을 물론이고 동네 천것들 까지 모두 불러 성대하게 잔치를 벌였는데, 내가 벌써, 여러 번 얘기한 바와 같이, 문학작품에서 불길한 예언은 언제나 들어맞는다는 소설작법 제 2강 15조에 의거하여, 이 좋은 날 테이프 커팅 시간이 되도 대령은 등장하지 않는 거다. 열 받은 부지사. 그깟 대령이 계급이라고 이게 날 초대해놓고 코빼기도 안 보여, 무슨 일이 있어도 열지 말라는 제2 응접실의 문을 벌컥 여니, 대령은 안락의자에 앉아 커다란 흰 넥타이를 피로 물들이며 죽어 있는 거였다. 오픈 하우스가 파투난 건 당연하고, 아마 뇌졸중 가운데 한 현상 같은데, 이런 병증으로 대령의 자손 가운데 바로 이 장소에서 적어도 두 명은 더 죽어나가게 된다. 물론 책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죽음만 두 명이고 나머지 그냥 흐지부지 넘어간 죽음은 더 될지 호손은 밝히지 않았다.
 그로부터 약 2세기가 지난 19세기 초중반이 작품의 시간적 공간이다. 그럼 여태까지는? 들어가는 내용이다.
 일곱 박공의 집은 이제 세월의 때가 잔뜩 묻어 비가 새고 정원엔 잡초가 무성해 겉으로 봐도 퇴락할 대로 퇴락한 상대다. 집엔 근시가 심해 항상 얼굴을 찡그려야 해서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누가 보면 언제나 화가 잔뜩 난 것처럼 보이는 늙은 헵지바 핀천이 고독하고 가난하게 살고 있다. 30년 전에 삼촌이 죽으면서 모든 재산을 헵지바의 사촌 오빠 재프리 핀천에게 유증하면서 시집도 못 간 헵지바가 불쌍하니 그녀가 죽을 때까지 일곱 박공의 집에서 살게 하라고 해 이날까지 묵고 있지만, 사촌 오라비이자 지역 판사이며 유력한 차기 도지사 후보인 핀천 판사께서 먹고 사는 일에 별로 도움을 주지 않아(도와주긴 했다. 충분하지 않아서 그렇지), 일곱 박공 가운데 하나를 홀그레이브란 이름의 은판 사진사에게 사글세로 내주었고, 그것도 모자라 귀족 신분으로서는 매우 굴욕적으로 일곱 박공의 집 한쪽에 상점을 내 영업을 하기로 결정한다. 가게를 여는 날이 장편소설 <일곱 박공의 집>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날. 늙기는 했지만 귀족 처녀가 평민들한테 물건을 판다? 되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서 헵지바는 굴욕적이고 비사회적이고 적응불가능 상태에 빠져 허둥대다가 시간이 되자마자 문을 닫아버린다. 대강 그림이 그려지실 것. 그런데 난데없이 집 앞에 포장마차가 서더니 밀짚모자가 먼저 보이고 깡총, 소녀 하나가 마차에서 내려서 헵지바 앞에 등장하는 것. 친척 조카 피비. 아빠가 죽고, 이제 엄마가 다른 남자한테 시집을 가기 때문에 자기를 돌봐줄 가장 가까운 친척을 찾아온 것. 여기서 눈치 빠른 독자들은 탁, 알아채실 것. 그렇다, 이 어린, 아니, ‘어린’ 까지는 아니고 젊은 처녀가 쇠락할 대로 쇠락한 일곱 박공의 집에 활력을 주기 시작한다.
 아쉽지만 내용은 여기까지. 이제 본격적인 사건이 벌어지니 그 앞에서 멈춰야지 그렇지 않으면 스포일러가 되기 십상이리라.
 재미있다. 이 책이 나온 것이 1851년.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당신의 눈높이를 19세기 중반으로 낮추어야 함은 물론이다. 눈 빠른 독자들은 중간 정도 읽으면 사건이 어떤 결말로 끝날지 훤히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장황한 서술에 책을 덮을까 말까 고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초간 바로 전 해에 생을 마감한 오노레 발자크의 “인생극” 편편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다. 내 읽기에 역자 정소영이 대단한 공력을 기울여 번역 작업을 한 것처럼 긴 문장을 잘 읽히게 우리말로 만들었으며 교정 수준도 보통 이상이다. 여기다가 제일 앞에서 얘기했듯, 호손의 다른 작품과 비교하면 훨씬 덜 종교적이라 나처럼 지옥의 유황불을 예약한 인간들도 별로 캥기지 않고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원래 읽지 않으려 했던 작품이었으나, 에잇, 마지막 호손으로 한 권만 더 읽어보자, 했다가, 나로 하여금 앞으로도 호손은 계속 읽기로 작정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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