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아의 고백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9
알프레드 드 뮈세 지음, 김미성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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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프레드 드 뮈세가 프랑스 시인이란다. 번역시에 관심이 없는 내가 그의 이름을 알 턱이 있겠나. 그것도 19세기 전반기에 대표작을 쓴 시인이라니. 그가 유일하게 남긴 완성품 장편소설이 바로 <세기아의 고백>. 1836년 2월. 뮈세의 나이 25년 3개월 때 일이었다.

 도대체 세기아가 뭘까. 물론 사람 이름이겠지. 이렇게 생각했다. Sègiat 정도? 그래 혹시 비슷한 말이 있나 네이버 사전 검색해보니 seguia, ‘북아프리카의 관개용수로’를 일컫는 말이란다. 거참. 일단 책을 넘겨보자. 책을 쓴 시기가 1835년 쯤 됐을 터. 서론 부분에 당시 시각으로 프랑스 현대사, 1793년 루이 16세의 처형부터 프랑스 혁명이 사실상 종결되는 1814년 보나파르트가 엘바 섬으로 추방당할 때까지, 사학자의 시선이 아니라 다분히 시인의 눈길로 고찰을 하고, 이후에 진정한 새로운 세기, 즉 19세기가 개막한다고 주장한다. 새롭게 펼쳐지는 19세기 초반. 프랑스 젊은이들을 거의 깡그리 몰살시켰던 나폴레옹 시대 이후에 새롭게 대두된 시대. 비록 왕정복고와, 21세기까지 프랑스 시민들의 유구한 전통이 될 바리케이드를 동반한 폭동이 일어났지만 대체적으로 평화적이고 비종교적인 자유사상이 젊은이들에게 유입되기 시작한 새로운 세기, 그 19세기의 아이, 총아를 ‘세기아世紀兒’라고 칭했던 거였다. 작가 알프레드 드 뮈세가 1810년 12월 출생. 본인 자신이 세기아임은 당연하다. 세기아, 유럽 말이 아니라 역자가 한자를 이용해 만든 단어. 좀 웃겼다.


 다시 한 번 강조. 뮈세가 최고의 전성기를 이룬 시기가 20대 초반. 이 정점에 <세기아의 고백>을 썼다. 뮈세 자신이 펄떡펄떡 뛰는 청년이었다. 뭐 아무 때나 펄떡펄떡 뛴다는 말이 아니라, 시야에 외모가 괜찮은 여자, 기혼 미혼, 과부, 이혼녀 등을 망라하고 하여간 여자만 앞에 있으면 그런 상태가 되는 시기였다는 뜻. 청년 시대에 전성기를 마감한 ‘19세기’ 작가의 가장 큰 주제는 역시 사랑과 질투, 복수, 결투가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터이다. 거기다가 젊은 뮈세에겐 특이한 전력이 있었는데 책을 쓰기 한 삼 년쯤 전에 애 둘 달린 이혼녀 조르주 상드와 불꽃 튀는 연애를 하다가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는데, 어딘가에서 병이 들어 그들을 진료하던 의사에게 상드를 빼앗겼다나 어쨌다나. 난 남의 상열지사에 관해 별로 관심이 없어서 (진짜?) 잘 모르겠지만 사내가 그때 일을 잊지 못하고 쪼잔하게 장편소설을 써서 만천하게 드러낸 작품이 바로 이 <세기아의 고백>이다.
 모두 5부로 되어 있는 작품. 1부는 맛보기. 전형적인 룸펜 부르주아 약골 주인공, 도(C)에서 시(B)까지의 음역을 일컫는 이름을 가진 옥타브가 애인과 함께 가면무도회를 즐기고 만찬 자리에 참석을 했는데 밥을 잘 먹다가 그만 젓가락 한 짝을 떨어뜨리고 만다. 아무 것도 아닌 일 같지? 천만의 말씀. 젓가락을 주우려 고개를 숙이니까 식탁 커버 아래, 바로 눈앞에 보이는 애인의 다리가, 근엄한 척하며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를 올려다보는 남자의 다리와 서로 엉겨 있는 거 아닌가 말이다. 화들짝 놀라기는 했지만 만인이 좌정한 앞에서 열을 낼 수는 없고, 그냥 덤덤하게 만찬을 끝낸 다음 집에 돌아오며 생각해보니 이거 질투가 나서 살 수가 없는 거다. 그래 친구를 대동하고 다음날 새벽에 신사도 규칙에 맞는 결투를 하다가 오른 팔에 총알 하나를 기념으로 박아두게 된다. 그러고 나서도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하는 우리의 옥타브. 결국 결투에 이은 자신의 부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되는 애인의 더블데이트를 알고 2부에선 친애하는 동네 형이자 자유주의자이며 사회주의자인 데주네의 인도와 지도편달 아래 본격적으로 도박과 매춘 등 환락에 빠져들게 된다. 외아들 하나 남은 것이 이렇게 논다니로 놀아나니 아빠 마음이 편하겠나. 그것이 병이 되어 고향의 아버지가 어느 날 뇌출혈이 발병해 파리에서의 엽색행각이 마감하는 것으로 2부까지 끝.
 고향에 돌아온 3부에서 드디어 유사 조르주 상드로 분장한 여주인공 브리지트를 만나게 되는데, 여기부터는 내가 더 말 못하지. 직접 사서 읽어보시라는 뜻에서.
 내용은 뻔하다. 위에서 얘기한대로 스물넷 먹은(출간이 스물다섯 해 두 달이니까) 작가가 제일 자신 있게 쓸 수 있는 분야는 바로 연애와 배신과 질투와 실연 기타 등등이란 건 앞에서 이미 말했다. 거기다 조르주 상드에게 실연당한 전력이 있었으니 얼마나 재미있게 쓸 수 있었겠는가 말이지. 하나 더 보태자면 뮈세 자신이 소설가이기 이전에 뛰어난 시인이었다는 걸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솔직히 말해서, 책의 내용은 20대 시절에 사랑과 실연과 질투를 겪어본 (같은 남자) 입장에서 하나도 새롭거나 호기심을 동하거나 특이한 건 거의 찾아볼 수 없었지만, 나는 이 책의 일독을 당신에게 권하니, 그건 문장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비틀어 말하면 구태의연하고 장식적이며 상투적인 문장의 만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더 뒤틀어 아예 뒤집어 말씀드리옵자면, 이젠 영원히 볼 수 없고 쓸 수도 없는 예스럽고 화려하고 유려하며 고색창연한 아라베스크를 보는 듯한 문장들에 눈이 부실 터이다. 만날 이런 문장을 읽으라면 정말 고역이겠으나 길고 긴 독서생활 가운데 어쩌다 한 번 이런 글을 읽으니 오히려 색다른 맛을 느낄 기회가 되더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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