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을 베다
모옌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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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근사하다. 달빛을 벤다. 여기서 ‘베다’할 때 쓰는 한자가 참斬이다. ‘폭포를 베다’, 하는 느낌과 상당히 유사하다. 중원에 어느 고수가 있어 만월 쏟아지는 밤에 온 몸의 기를 모아 번쩍, 한 번 천하신검을 휘둘러 달빛을 벨 수 있을까. 어려서 본 무협만화에 폭포를 베는 장면이 있었다. 만화니까 가능한 표현, 진짜 폭포가 잠깐 베어지는 그림이 이 단편집을 보면서 떠올랐다. 달빛이나 폭포를 벨 수 있는 중원의 고수가 천하신검으로 인간의 목을 벤다면 어떻게 될까. 모옌의 단편소설 열두 편을 실은 소설선 『달빛을 베다』의 첫 번째 작품 <달빛을 베다>에 나온다. 천하신검을 만드는 대장장이 아버지와 아들 셋도, 베어진 사람의 머리도.
 모옌, 그가 쓴 거의 모든 책에서 작가가 윌리엄 포크너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작가 스스로가 말하기도 하고, 역자 해설에서 역자가 굳이 포크너와 연결시키려고도 한다. 포크너의 작품이 주로 미시시피 주, 요크나파토파 부근 제퍼슨 시라는 미국 남부의 특정 가상지역을 주요 무대로 한 것과, 모옌이 산둥성 가오미현 둥베이향이란 지역에 집중하여 작품을 쓰는 것부터 비슷하기는 하다. 포크너에겐 흑백 갈등과 혼혈의 문제가 있었고, 모옌에겐 해방과 문화혁명의 혼란기가 있었으며, 두 사람 공통적으로는 전해오는 (신화, 전설 같은 거창한 것들 말고) 지역적인 전승 이야기가 있었다. 모옌에겐 포크너 말고도 다른 작가들의 무수한 작품들을 읽어볼 기회가 있었을 것이며, 이 가운데 당연히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도 포함되니 라틴 아메리카의 환상문학적 요소 역시 중국에서 모옌을 통해 꽃을 피우게 된다. 그리하여 가끔 지독히 우화적인 소설이 되는 경향도 발견할 수 있을 것.
 이 단편집의 머리말에서 모옌은 자신이 어려서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 동네 어른들로부터 들은 엽기, 괴기스러운 이야기들이 자신을 작가로 만들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다. 이런 코멘트가 지극하게 타당할 정도로 책에서는 20세기 초중반과 현대의 중국에서 벌어진 일들이 엽기, 괴기가 인간이나 동물, 날씨 등의 외연을 쓰고 나타난다. 전래 이야기라는 건, 어른들이 어린 아이들에게 해주는 것이 보통이다. 어른들끼리 전래 이야기를 하는 경우란, 서로 해당하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전제로 일상적 대화나 농담, 약간의 다툼이 벌어질 때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강조하기 위한 기재 이상으로 쓰이지 않는다. 모옌 역시 1980년대까지 전기불이 들어오지 않았던 둥베이향에서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글을 쓰는 시각의 일부가 어린이의 눈으로 향해 있게 되지는 않았을까. 이제 생각해보니, 외갓집에서 유년 시대를 보냈던 나도 어려서 외할머니로부터 유령이나 도깨비, 망태 할아버지 등에 관한 소름 돋는 이야기 깨나 듣고 자랐다. 어둠이 깔린 골목길을 걸을 때마다 목 뒤와 등허리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야 했던 이유는 저 먼 기억 속, 유년시절의 한 장면이 오롯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내가 듣고 기억했던 옛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주지는 못했다. 걷기 시작하자마자 비디오테이프에서 쏟아지는 디즈니 만화영화를 보면서 유년을 시작하고 끝마치더니, 컴퓨터 게임과 함께 소년, 청소년, 심지어 청춘시절까지 통과해버렸다. 땅따먹기나 전투 시뮬레이션에 관심이 덜한 여자 아이들이 남자 아이들보다 어린 시절에 더욱 많은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21세기에 접어들어 문학, 그 가운데 창작이란 장르에서 여성 작가가 압도적으로 남성 작가를 능가하는 현상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솔직한 내 생각이다. 물론 문학만이 그럴까. 남성임을 증명하는 두 가지, 영역확장과 전투에 관한 본능을 컴퓨터 게임이 능률적이고 경제적이며 무엇보다 효과적으로 충족시키는 한, 앞으로도 남성은 완력을 행사하는 일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여성보다 열위에 처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나는 예언한다. 상상력의 빈곤이란 애초에 열위inferiority를 담보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옌이 스스로 고백하는 것과 같이 궁벽한 농촌지역에서 들은 귀신, 요괴, 도깨비 이야기가 이 소설집의 원천. 그리하여 비록 무대가 21세기 현대 중국의 대도시일지라도 곳곳에 마르케스 취향의 환상요소를 발견할 수 있으며, 해방전쟁의 와중에서는 물론 혁명과 반동의 시대에서도 포크너 비슷한(<압살롬, 압살롬>, <8월의 빛> 참조) 괴기스러움도 보인다. 그러나 책의 뒷부분에 이르러서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그렇다는 것인데, 거창한 인물들인 포크너나 마르케스 보다는 안데르센이나 그림, 특히 그림 형제들의 우화가 더 확 다가오더라는 거. 약간 과장하면, 모옌의 우화집이라고 책의 성격을 확정지어도 그리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모옌도 일찍이 <풀 먹는 가족들>이란 장편소설을 통해 역시 둥베이 현에서 살던 한 가족들의 엽기발랄한 우화를 만든 적이 있는 바에야 작가가 가진 몇 가지 경향 가운데 하나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근데, 단편소설의 나라에 사는 독자 입장에선 기대에 충족하는 외국 단편 작품을 읽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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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3-04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옌의 이런 책이 다 있었네요.

<개구리>부터 읽어야 하는데...

Falstaff 2019-03-04 20:18   좋아요 0 | URL
<개구리>하고는 같은 동네 이야기지만 많이 다른 분위기입니다.
<개구리>에서 올챙이 죽이는 것에 국가적 사명을 어깨에 걺어진 고모와 조금 다릅니다. ㅋㅋㅋ 더 알려드리면 재미 없을 거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