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0
임레 케르테스 지음, 한경민 옮김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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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케르테스 임레(헝가리는 우리나라처럼 성이 앞에, 이름이 뒤에 온다. 케르테스가 성이고 임레가 이름이다.)는 한 시절 자신의 삶 자체가 극적이었다. 전작 <운명>의 주인공 케비슈톄르 죄르지라는 소년과 마찬가지로, 아직 만 십오 세가 되지 않은 소년시절에 공장으로 출근하던 중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헝가리 헌병들의 불심검문에 걸려 아우슈비츠, 부헨발트, 차이츠를 거치고 다시 부헨발트에서 해방을 맞아 헝가리로 귀환한 경험이 있다. 죄르지는 아우슈비츠에서 두 살이 더 많은 열여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해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나이로 인정받아 부헨발트로 보내졌음에도 가스실 행을 피할 수 있었다. 비록 10개월가량 수용소에 있었지만 열네 살의 소년이 1944년에 부헨발트에서 살아남았다는 것만 가지고도 기적이라 할 만하다. 당시 수용소장 카를 오터 코흐 치하에 있던 부헨발트에는 “부헨발트의 악녀”, “부헨발트의 암캐”라고 불리던 카를의 아내 일제 코흐라는 엽기 충만한 여자가 살았다. 이 여자가 얼마나 잔인했었는지, 사람의 가죽을 무두질해서 스탠드 커버, 책의 장정, 장갑 등으로 만들기도 하고, 사람의 뼈를 조각해 문진(文鎭)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문진의 모양이 정말 엽기다. 얼마나 잔인한지 (이런 거 좋아하는 내가 '사진 첨부'를 고려하지 않을 정도다.) 궁금하신 분은 ‘Ilse Koch’라는 이름으로 구글 검색해 이미지 페이지를 보시면 안다.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독일에선 ‘아돌프’와, ‘일제’라는 이름이 사라졌단다. ‘비정상회담’이란 프로그램에서 독일 대표로 나와 다방면에 지적인 대화를 펼친 다니엘 린데만이란 반半 유대인 청년한테 비슷한 얘기도 들었다. 나도 이 책을 읽기 전에 이 악마 같은 여자를 알지 못했던 바,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멘델스존 스페셜리스트 피아니스트 일제 폰 알펜하임(Ilse von Alpenheim) 이후 같은 이름의 독일 여성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지옥에서 살아남았으니 굉장한 행운이기도 하고, 소년기에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지옥을 경험했으며, 그때의 기억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더없는 불행이기도 했을 것이다. 인생의 고비마다 불현듯이 뇌리에 떠오르는 죽음과 광란의 아수라장. 마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돌을 굴려야 하는 시시프스와 비슷했다고, 이 책의 결론 부분에 나온다.
 케르테스 임레가 수용된 것이 열네 살부터 열다섯 살까지. 그때의 기억을 기록해 출판한 시기가 1975년이다. 그의 나이 46세, 수용소에서 해방된 다음 30년이 지나버렸다. 그동안 케르테스는 일간신문사의 편집인으로 2년 여 일하고, 해고를 당하고, 제철회사의 금속 기계공으로 노동자 생활도 하다가 다시 기자 일을 하면서 쉬지 않고, 수용소에서의 경험에 관한 소설 ‘한 편’을 쓰는 것에 집중을 한다. 1970년대의 40대 중반이면 ‘중년’이라고 불리웠던 시기. 거기다가 일찌감치 소년기에 생의 에너지의 많은 부분을 소모해, 스스로 ‘노인’이라 칭하는 이가 드디어 소설 한 편을 완성하여(이 작품을 <운명>이라고 특정하지는 않는다.) 출판사에 보냈는데, 얼마 후 편집자의 편지가 첨부된 원고가 반송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자신의 경험을 소재로 했으나 그것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주제도 끔찍하고 충격적입니다....무미건조한 문장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소설의 주인공은 계속해서 수수방관하는 태도로....도덕적 평가를 내릴 수 없습니다.” (50~51쪽)


 작품 속 노인(으로 칭하는 케르테스 임레)은 아홉 평짜리 아파트에서 위층에 사는 짐승같이 매너 없는 이웃의 소음 때문에 귀마개를 한 상태에서 글만 쓰는 실업자이고, 생활고를 위해 아내는 공산당 치하의 부다페스트에서 식당 일을 해 먹고 산다. 이이가 가끔 먼지 앉은 선반에서 꺼내 보는 상자 하나가 있는데 거기엔 ‘아이디어, 원고 초안, 미완성 원고’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 정확하게는 말하지 않지만 여기서 말하는 ‘미완성 원고’가 바로 케르테츠 임레의 첫 번째 소설 <운명>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운명>을 쓰기는 했으나 출판사로부터 거절을 당하고 우울한 시절을 보내는 장면이 소설 <좌절>의 앞부분. 그때부터 1988년 헝가리가 사실상 붕괴되어 국경에 군인들이 사라질 때까지를 주인공 ‘쾨베시’라는 이름으로 좌충우돌하는 게 157쪽에 달해서야 비로소 나오는 1부부터 9부까지가 뒷부분이다.
 <운명>에 비해 상당히 버벅거리면서 읽었다. 이게 책의 내용이 전작에 비해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특별하게 각인시키는 장면이 (별로)나오지 않아서 그런지, 하필이면 정말로 내 눈이 (특히 뒷부분 읽을 때부터) 뻑뻑한 게 영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다면, 글쎄 내 경우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그렇다는 말씀인데, 권하지 않겠다. 이건 케르테스 임레에 대한 기대가 원래 컸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역자가 작품해설에서 말했듯이 “이 작품은 여러 가지 면에서 독자에게 쉽게 읽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다시 말해 여러 가지 교묘한 장치를 사용하여 독자에게 생각할 것을, 곰곰이 숙고해줄 것을 요구”하기 때문인지도. 하여간 이 책에 관심 있는 독자 제위는 역자의 이런 의견도 감안하시라. 그냥 쉽고 재미있는 책이리라는 건 애초에 기대하지 말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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