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4
카밀로 호세 셀라 지음, 정동섭 옮김 / 민음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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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는 소설의 초장에 등장해, 자신이 한 일이라고는 스페인의 바다호스 지방, 그 중에서도 아주 촌구석인 알멘드렐라호에서 약 삼십 리 떨어진 벽촌에서 진짜로 태어나 성인이 되고, 사고를 치고, 죽어간 파스쿠알 두아르테의 육필 수기 또는 회고록을, 그저 오탈자의 교정 정도를 보는 수준으로 옮겨 적은 일 말고는 없다고 능청을 떤다. 설마 이런 장치를 진짜인줄 아는 독자는 없겠지. 그리하여 일종의 피카레스크 소설이 쓰여 지는데,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피카레스크 양식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폭력적인 아버지와 매몰찬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파스쿠알이 성인이 되어 흉악범죄라고 분류되는 살인을 두 번 저질러 사형에 처해지는 여정을 담았다. 사실 어떤 인간이라도 자신이 살아온 바를 순서대로 기술한다면 피카레스크의 범주에 들지 않기도 쉽지 않을 터이긴 하지만.
 역자 해설에서 정동섭은 스페인·중남미어 문학과 교수답게 스페인의 현대문학 일반을 소개하면서 이 작품을 1940년대 스페인에서 등장해 살아남은 “전율주의”의 대표 작품이라 말하고 있다. 1940년대라면 프랑코 반란군에 의하여 저질러진 내전이 반란군의 승리로 끝나고, 이 와중에 스페인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인재들이 나라 밖으로 몸을 피해 이른바 빈 동굴 현상, 즉 동공현상이 벌어졌던 시기. 그래도 스페인에 남아 있던 작가들은 프랑코의 적대적인 문학검열을 피해야 했을 텐데, 검열에 관한 한 국제적 명성을 떨친 바 있는 우리나라 작가들도 예외가 아니었듯, 시인 소설가 극작가들이 스스로 먼저 자체 검열의 함정에 빠져버리고는 했나보다. 말이 멋있어 전율주의지, 그거 사실 별거 없다. 1970년대 대한민국 소설 판에서 유부남과 여대생의 불륜 얘기, 밤에 호스티스로 일하며 동생이나 애인 뒷바라지 하는 이야기가 창궐했던 것과 비슷할 수도 있다는 말씀. 로베르토 볼라뇨는 <야만스런 탐정들>에서 독재 치하에서 전위문학을 주창하는 ‘내장주의’라는 문학 장르를 소개하는데, 스페인의 전율주의와 (작품 속)칠레의 내장주의가 표현방법 외의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후장주의’와는 확실히 다르기는 하지만. 즉 정치나 사회적인 문제에서 좀 떨어진 것을 쓰면 검열을 피할 텐데, 이 책처럼 무지렁이들의 범죄 이야기 같은 걸 쓰면 어떨까, 해서 생긴 ‘주의’ 가운데 하나가 전율주의 아니겠는가 하는 의견. 세상의 모든 사조는 당시 환경에 적응해 발전시키기 위해 자연스럽게, 다분히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뭐 아니면 말고.)
 나는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단, 재미있게만 읽었다. 동의하지도 않고, 동감하지도 않고, 바람직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재미있게 읽었다. 내가 대한성서공회가 공동번역한 <성서> 독후감에 써먹은 바 있는 국회의원이자 양아치 출신의 절름발이 목사 이동철이 쓴, 그러나 황석영의 이름으로 간행했던 <어둠의 자식들>을 읽어보면,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와 친숙한 1960년대와 70년대의 뒷골목 범죄자들의 이야기라서 더욱 ‘친밀하게’ 느껴질 텐데, 그것이 만일 스페인에서 쓰였다는 가정 아래, 모르긴 몰라도 최고의 ‘전율주의’ 문학이라 각광을 받았을 수 있었을 거다. 그러니 내가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을 읽으면서 무슨 특별한 감동이나 동감을 느낄 리가 있었겠느냐는 것이지. 이 책이 스페인 문학사에 어떤 위치를 누리고 있는 지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건 스페인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나 중요한 암기 사항이다. 작년 말에 이이가 쓴 <벌집>을 읽었다. 두 권이면 됐다. 호세 셀라는 더 볼 일이 없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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