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해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0
쥘리앵 그린 지음, 김종우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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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센 강
 서울시 성북구에도 센 강이 흘렀다. 북악산에서 발원한 냇물이 모여 정릉천을 이루었고, 더 큰 지류인 중랑천에 합류하기 위해 왼편으로 그 유명한 미아리 텍사스를 에둘기 바로 직전, 한 시절엔 대한민국의 문학청년들의 집합소였던 서라벌 예술대학이 북쪽 하늘을 바라보고 서 있었으며, 예대가 중앙대 예술대학으로 흡수된 이후 단과대학의 캠퍼스를 중·고등학교가 나누어 썼으니 중등학교로는 규모가 컸던 셈이다. 1970년대 초중반, 모교 서라벌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학생들은 텍사스 뒷골목으로 걸어서 통학을 하며 바람직한 산교육을 받던지, 길음시장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센 강을 건너는 가장 가까운 골목을 통과해 구멍이 뻥뻥 뚫린 공사장 철판을 잇대 만든 임시 다리를 건너야 했다. 정릉천 주변에 밀집했던 염색공장에서는 흐르는 물을 매일 총천연색으로 물들였으며, 재수 없이 발목 하나라도 물에 담갔다 하면 너무 아름다워 차라리 발목을 잘라버리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만드는 냄새를 하루 종일 간직할 수밖에 없었다. 장마가 지면 철판으로 만든 임시 다리가 떠내려가고, 학교에서는 가마니에 모래를 채워 징검다리처럼 폴짝 폴짝 뛰어다니게 장치를 해두었는데, 이게 문제여서, 학생들 등굣길에 동네 꼬맹이들이 아침부터 이리저리 뛰놀고는 했다. 등굣길 학생들은 아침엔 학교 쪽으로, 저녁엔 길음시장 쪽으로 일방통행이었으나, 꼬맹이들이야 어딜 그럴 수 있나. 간혹 동네 꼬마들은 반대편에서 펄쩍 날아오는 큰 덩치의 형들과 공중에서 정면충돌하여 빨갛거나 노랗거나 새파란 정릉천 물속으로 머리카락 끝까지 풍덩 빠지곤 했다. 그 꼬맹이들 아직 잘 살고 있는지 몰라.


 2. 센 강
 늙수그레한 남녀가 서로 다투고 있다. 둘 다 초라한 입성에 남자는 술에 취해 있고, 여자는 제르베즈 여사만큼 다리를 전다. 남자는 무어라 고함을 치기도 하지만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아듣지는 못한다. 여자는 남자의 주먹과 발길질의 사정권 밖에 있으려 무척 조심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둘은 센 강의 선착장 쪽으로 향한다. 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필리프. 곧 무슨 험한 사고가 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둘 사이에 개입해 남자를 제압하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근처에 경찰이라도 있다면 부탁하고 싶다. 하필이면 밤이 깊어 아무도 없다. 그들의 뒤를 밟는 필리프. 석탄회사 이사로 부르주아 계급의 신체 건강하고 키 크고 건장한 체격의 보유자. 그러나 외양과 달리 키 작고 술 취한 중늙은이 앞에 다가가 어쩌면 당장이라도 벌어질 수 있는 폭력, 예를 들어 다리를 저는 여인을 산 채로 센 강에 던져버린다든지, 교살을 한 다음에 시체를 강에 유기한다든지, 하는 가능성을 완력으로 제압하기엔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들의 뒤를 밟다가 결국은 놓쳐버리고, 대신 모자를 깊숙이 쓴 각진 얼굴의 키 작은 사내가 등장해 약간의 현금을 요구하자 대항할 생각 없이 속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사내의 머리 위로 높이 던져, 잠깐의 시간을 벌어 죽자 사자 달아나는 인물. 그에게도 센 강은 일 년여에 걸쳐 초라한 입성의 중늙은이 남녀, 특히 다리를 저는 여인의 죽음과, 하마터면 실제로 일어났을지도 모를 자신의 죽음으로의 강이 된다.

 

 3. 센 강
 필리프의 두 여인. 아내 앙리에트와 처형 엘리안. 예쁘기만 하지 알고 보면 그리 비싸지 않았던 가난한 여인 앙리에트와 한 침상에 들기 위해 유약한 필리프가 제시한 조건은 결혼. 결혼 첫날 밤, 드디어 작업에 들어가려는 순간 앙리에트는 높은 소리로 한없는 웃음의 폭포를 쏟아내고, 딸꾹질까지 겸해 점점 더 참을 수 없는 홍소를 퍼붓는 것에 질려버린다. 결혼과 동시에 앙리에트를 향한 사랑은 종말을 고하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들 로베르가 태어난 다음부터 둘은 절대로 한 침대에 오르지 않는 단계로 고착된다. 더구나 부모 둘 다 서로가 사랑하지 않음을 확신하기 때문에 오직 육체의 결합이 만들어놓은 아들 로베르를 향한 애정도 없어 파리 외곽지역의 기숙학교에 처넣어버린 상태. 앙리에트가 고집을 부려 처형 엘리안을 같은 집으로 데려와 집사 비슷한 위치로 만들어놓고, 그녀는 아침 먹을 때 외에는 얼굴 한 번 맞대지 않는 무관심과 비겁함과 매사 주관이 없는 남편이 알거나 모르거나 가난하고, 키 작고, 별로 잘 생기지도 않은 애인을 만들어 주 2회 밀회를 즐기고 있다. 심지어 애인이 요구하는 칠천 프랑을 남편에게 뜯어내기 위해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언니에게 부탁해 기어이 애인이 원하는 바를 들어준다. 언니 엘리안의 평생소원은 동생 앙리에트가 죽거나 이혼을 당해 필리프가 홀아비 혹은 이혼남이 되면 자신이 차지하는 가망 없이 가책만 되는 일. 필리프보다 겨우 한 살 많은 처녀의 몸으로 동생의 남편을 사랑하는 불행한 여인은 동생이 남편에게 전혀 애정이 없고, 애인만을 사랑한다는 것을 은근하게 알려줘도, 매사에 맺고 끊는 것이 없는 필리프는 사설탐정을 고용해 아내의 정부를 확인했으면서도, 어영부영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대신 아들 로베르와의 사이는 돈독해지고. 어느 안개 낀 9월 30일 아침. 필리프는 로베르의 손을 잡고 센 강으로 산책을 가, 로베르를 다리 위에서 기다리게 해놓고 강변으로 내려가 장갑을 벗은 다음 손목을 흐르는 센 강의 물속으로 넣는다. 이어 팔꿈치까지. 또 어깨까지. 이제 발뒤꿈치에 약간의 힘만 주어 근육을 튕기기만 하면 약 이삼 분 질식의 시간이 준비가 되어 있고, 그 단계만 지나면 그토록 기다리던 ‘아무 의미도 없는 삶’을 끝낼 수 있을 텐데.

 

 4. 나는 이런 작품을 좋아한다. 그러나 섣불리 다른 분께 권하지 못하겠다. 분명히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독자들도 있으리라. 인간의 형질 속에 있는 본성의 미묘함을 세밀하게 잡아채는 작품. 1890년 생으로 1932년에 이런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것에 놀랐다. 전적으로 아마추어 독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프루스트와 누보 로망, 딱 그 사이에 걸쳐 있는 소설을 읽은 느낌. 물론 문장은 프루스트와는 달리 간결하다. 적어도 간결한 편이다. 해설을 읽어보면 사르트르의 <구토>나 까뮈의 <이방인>과 유사한 실존 소설이라는 설명도 있다. 수긍이 가기는 하지만 세밀한 감정의 묘사는 나로 하여금 누보 로망 쪽으로 더 기울어지게 만든다. 역자 김종우의 우리말 문장도 좋다. 독자 평에는 번역이 좋지 않다는 의견도 있으나, 내가 읽기로는 원작 자체가 쉽게 읽히는 작품이 아닌 거 같다. 읽기를 끝내자마자 쥘리앵 그린, 이이의 다른 작품을 검색해보았으나, 번역한 작품은 이거 말고 하나도 없다. 이름을 기억해놔야 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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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19-01-28 0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넘 아름다운 리뷰에요~ 저도 지루함을 잘 느끼는 독자지만, Falstaff님의 리뷰를 읽으니 읽어보고 싶은 맘이 샘솟네요~~

Falstaff 2019-01-28 09:48   좋아요 1 | URL
이런 과찬을 하시다니. 고맙습니다.
선택의 결과는 ㅎㅎㅎ 책임지지 않겠습니다.

bgkim 2019-04-02 16: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린의 다른 번역본이 두권 있습니다.80년대 초에 간행되엏네요.<레비아탕>과<모이라>가 학원

bgkim 2019-04-02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에서 <미친사랑의 노래(아드리엔 므쥐라)>가 중앙일보사에서 세계문학전집으로 나왔어요.헌책으로 간혹 눈에 띄니 꼭 구입해 읽어보시면 후회하지 않으실 거에요.

Falstaff 2019-04-02 20:53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예, 기회가 닿으면 꼭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