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도시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8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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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로 칼비노. 가장 먼저 읽은 이이의 책은 <나무 위의 남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107번째 작품이었다. 쥐의 간 요리를 좋아하는 누나가 만들어준 달팽이를 먹지 않겠다고 나무에 올라간 남작이 평생 나무 위에서 사는 동화 같기도 하고 우화 같기도 한 엽기 발랄한 작품이어서 호기심이 돋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당장 <우주만화>를 골랐다가, 아이고, 지금 생각해봐도 얼마나 황당했는지. 제목에 ‘만화’가 들어가서 가벼운 읽을거리로 생각한 것이 잘못. 지금 기억나는 건 하여간 <우주만화>를 끝까지 다 읽긴 했다는 거 하나. 저 먼 기억의 음각화로만, 내용은 전혀 아니고 등장인물들에 대한 이미지만 지금 가지고 있을 뿐이다. 하여간 그때 얼마나 칼비노한테 데었는지 한 동안 그이의 작품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가, <존재하지 않는 기사>, <반 쪼가리 자작>, <힘겨운 사랑>을 차례로 읽기에 이른다. 이 정도면 됐다 싶어 거기서 말았다. 근데 작년에 김희선이 쓴 <무한의 책>에 책의 상당부분이 미국의 ‘트루데’라는 가상의 도시를 무대로 한다. 책의 후기에서 도시 이름 ‘트루데’는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따왔으며, ‘초원을 유목민처럼 유동하며 세상은 끝도 없는 트루데란 보이지 않는 도시로 이루어져 있다는 의미로’ 차용했다고 밝혔다. 그때부터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 다음에 읽을, 그리고 칼비노가 쓴 작품 가운데 마지막으로 읽을 책으로 선택했고, 이제 읽었다. 그 도시가 8부, 네 번째로 소개된다.
 내게 누군가 보이지 않는 도시의 이름을 하나만 대보라고 하면, Invisible City of Kitezh,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작곡한 <보이지 않는 도시 키테쯔>를 떠올리면서 대번에 “키테쯔”를 꼽았을 것이다. 그런데 또 나더러 그럼 키테쯔란 도시를 칼비노가 책에 쓴 55개의 도시처럼 키테쯔의 특징을 강조하여 묘사해보라, 라고 했다면, 차라리 똥을 싸고 말겠다고 답했을 거 같다. 음악 하나 듣고 특징을 강조해서 A4 용지 한 장 분량으로 서술을 한다니 그게 말이나 돼? 된다. 적어도 칼비노한테는.
 책은 13세기 중엽, 젊은 베네치아의 상인 마르코 폴로가 한汗Khan의 제국 일부이자, 몽고인이 지배하는 지금의 중국 땅을 방문해 쿠빌라이 칸을 만나 자기가 구경한 세상의 쉰다섯 도시에 대해 이야기한다. 쿠빌라이 칸은 칭기즈 칸의 손자로 원元나라의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이 작자 치하에서 몽고의 고려 식민지개척을 완성했다는 건 그냥 참고. 몽고 제국의 최고 전성기를 만든 황제 앞에서 젊은 이탈리아 장사꾼은 자신이 정말 머물렀던 경험이 아니라, 자기 뇌 활동의 결과에다가 고향 베네치아의 곳곳의 흔적을 묻혀 (쉽게 읽기는 힘들지만) 아름다운 도시의 광경을 묘사해놓았다. 내가 읽은 칼비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책. 물론 역자 이현경의 빼어난 한국어 실력이 뒷받침했겠지만 서정적이고, 사색적이고, 다양하게 상징적인 매력적인 한국말 책으로 만들었다. 총 9부. 1부와 9부는 열 개의 도시, 나머지는 각 다섯 개의 도시, 합해서 쉰다섯 개의 도시에 관한 짧고 아름다운 설명이며, 각 부는 앞뒤에 쿠빌라이와 폴로의 대담으로 구성한다. 칼비노가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고 해도 맞고, 그런 따위는 없다고 본다고 주장해도 맞다. 그냥 독자가 읽으면서 생각하는 게 정답인 소설.
 어떤 작품인지 도시 ‘디오미라’를 설명하는 1부의 첫 도시를 통째로 가져오는 것으로, 책의 맛을 보여드림과 동시에 독후감을 끝낸다.





도시와 기억 1



 그곳에서 출발해 사흘 동안 동쪽으로 간 여행자는 육십 개의 은빛 돔과 온갖 청동 신상들, 주석으로 포장한 거리, 수정의 극장이 있고, 황금 닭이 매일 아침 탑 위에서 노래하는 도시 디오미라에 도착합니다. 여행자는 다른 도시에서도 이 아름다운 것들을 모두 보았기 때문에 이미 이들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도시의 특징은, 해가 점점 짧아지고 음식점 문 위에 달린 색색깔의 등들이 동시에 켜지고 테라스에서 어느 여인이 “오!”하고 탄식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9월의 어느 날 저녁 이곳에 도착한 사람이, 이미 이와 똑같은 저녁을 경험했고 이제는 그때가 행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질투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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