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평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4
후안 룰포 지음, 정창 옮김 / 민음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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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여 전에 룰포의 다른 책 <페드로 파라모>, 아니 <뻬드로 빠라모>를 읽고 “상쾌하고 뒤통수 때리는 작품”이라고 간략한 느낌을 끼적였다. 그래 여태까지 룰포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가 쓴 다른 책 <불타는 평원>을 읽어보자고 차일피일 했다가 이제야 읽었다. 다른 거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룰포가 쓴 또 한 권의 책이란 것 때문에 골랐다. 룰포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보다 10년을 앞서 태어났는데 그의 <뻬드로 빠라모>가 <백년의 고독>에 중요한 모티브가 됐다고 한다. 무슨 얘기냐 하면, <뻬드로....> 독후감에서 슬쩍 비치기만 했던 라틴 아메리카의 환상문학이 여기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도 있다는 뜻.
 <불타는 평원>에선 이런 환상문학 적인 요소는 거의 없다. 물론 세밀하게 읽는다면 환상문학이 등장하기 바로 앞선 전조현상 정도는 발견할 수 있겠지만. 룰포는 전 생애를 걸쳐서 <뻬드로 빠라모>와 열일곱 편의 단편을 모은 <불타는 평원>, 이렇게 딱 두 권만 출간했다고 한다. 룰포가 쓴 두 권의 책의 공통점은 멕시코의 황야지대, 산악지역 등을 무대로 한다는 것.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10년대와 20년대의 멕시코 혁명에 관해 선행학습을 좀 하는 편이 좋다는 것. 그러나 나처럼 게으른 인종이 소설 한 권을 읽자고 남의 나라의 역사를 뒤져볼 턱이 없다는 것. 그리하여 정부군이 우리 편인지, 반란군 또는 농민군이 우리 편인지 도통 알 도리가 없다는 것. 이런 것들이 애로사항이다.
 하긴 뭐 혁명도 어차피 사람 사는 일 아닌가. 우리 편인지 너네 편인지 굳이 알지 못해도 충분히 재미있다. 작중 등장인물은 언제나 정부군에 쫓기는 농민군 또는 반란군이며, 전쟁/전투 중에 새우등 터지는 멕시코 시골 촌사람들이며, 그중에서도 배운 거 없고 가진 거 없는 무지렁이들이기 때문에. 이게 말이 쉬운 것이지 사실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내무부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작가가 혁명의 황폐화와 황무지에서의 삶, 그리하여 보다 본능에 가까운 생존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장을 그린 것은 특별한 일이기도 하다. 물론 자기 어린 시절의 기억이 밑바탕이 되었다고 책의 앞날개에 쓰여 있기는 하지만도.
 열일곱 편의 단편 소설의 내용을 다 소개할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본문만 191쪽이니까 한 편당 평균 11쪽에 불과한 손바닥 소설, 장편掌篇 모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표제작인 <불타는 평원>과 마지막 작품 <아나끌레또 모로레스>를 제외하면 작품의 평균 길이가 훨씬 줄어들기도 하고. 20세기 초반, 멕시코 고원의 황무지 지역에서 벌어지는 혁명전쟁, 말이 혁명전쟁이지 사실상 정부군에 의한 소탕작전과 피해자들, 와중에 거친 삶을 살아내느라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데 모든 힘을 쏟는 군상들에 관한 객관적인 묘사, 그리고 이 세 유형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자연스럽게 흘러나가는 의식의 흐름 같은 것들을 감상할 수 있다.
 어차피 라틴 아메리카의 환상소설, 또는 아몰랑주의 소설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후안 룰포를 경험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거 같은데, 아직 룰포를 읽어보시지 않았다면 <뻬드로 빠라모>를 먼저 읽어보심이 어떨까 싶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93번으로 이 책보다 먼저 번역해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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