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2
카밀로 호세 셀라 지음, 남진희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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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4년 12월의 스페인 마드리드. 세계적으로 극심한 물자부족을 겪게 만들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전쟁이다. 때는 바야흐로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접어들어 아메리카를 제외한 전 유럽의 산업은 완전히 거덜이 난 상태였다. 이때 참전하지 않고 그냥 마음속으로 같은 파시즘의 나라 독일이 승전하기를 은근히 기원하던 스페인은 전시 특수를 즐길 황금 찬스였으나, 아뿔싸, 스페인은 스페인 나름대로 프랑코 개자식에 의해 벌써 내전이 발생, 일찌감치 나라를 말아먹은 상태라 전시 특수를 향유할 산업기반이 없었던 거였다. 프랑코 시대에, 나중에 노벨문학상을 받을 젊은 작가 지망생이 하나 있어, 나도 처음 들은 바, 공화진영이 아니라 반란군인 프랑코 파시즘 진영에 자진 입대해서 용감하게 싸우다 부상까지 당한 이가 있었으니 이 인간이 바로 카밀로 호세 셀라. 프랑코 진영에 가담했을 때 나이가 스무 살. 스무 살이라면 성년이기는 하지만 평생을 책임질 뚜렷한 확신을 갖기엔 조금 미숙한 상태. 하여간 이런 이력은 내전 후 자신의 소설작업을 다른 작가들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파시즘, 또는 전체주의 또는 이런 비슷한 것들을 다 모아, 독재정권은 스페인이나 독일이나 일본이나 한국이나 다 똑같아서 한때 파시즘에 동조했다고 해 작품의 주제나 표현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래 셀라가 쓴 리얼리즘 작품 <파스쿠알 두아트레 가족>은 금서로 찍히고, 지금 독후감을 쓰고 있는 <벌집>은 끝내 출판 허가가 나지 않아 몇 년 후 아르헨티나에서 출간하기에 이른다고 작품 해설에 나온다. <파스쿠알 두아트레 가족>도 읽어보려고 서점 보관함에 들어 있는데 엉뚱하게도 더 나중에 출간한 <벌집>을 먼저 읽게 됐다.
 지금 같으면 이런 소설의 출판금지 결정을 어처구니없어 하거나 비웃을 수 있겠지만 1948년 인생의 절정기를 맞아 온몸으로 신경질을 뻗어냈을 프랑코를 감안한다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나름대로 매력적인 작품이지만 쉽게 다른 분께 일독을 권하기는 좀 난감한 소설이다. 첫 장면이 끊임없이 “젠장”, “정말 짜증나네!” 같은 험한 단어를 쏟아내며, 마드리드 시내 한 카페의 사장 도냐 로사가 끔찍하게 큰 엉덩이로 손님들을 툭툭 건들면서 탁자 사이를 오가는 장면이 등장한다. 근데 소설의 첫 문장은, 따옴표 안에 묶인 걸로 봐서 누군가의 대사가 확실하다.


 “미래에 대한 전망은 절대 잊어선 안 됩니다. 이제 이런 말을 하는 데 진력이 나긴 했지만,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니 어쩌겠소.”


 그러나 도대체 누가 이 대사의 주인공인지 밝히지 않는다. 누굴까. 내전 이후, 세계대전 말기의 극심한 경기침체기를 맞아 그래도 현상을 유지하게 위해 누군가 먹물 든 이들이 오늘만 참자, 내일이 되도 또, 오늘만 참자, 결코 전망 또는 희망을 잃지 말자고, 소위 희망고문을 하고 있는 것. 대한민국의 2010년대 말에 그대로 차용해도 어색하지 않을 경구다.
 그리하여 소설 <벌집>은 (내가 1944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이라고 생각하는 세계대전 말기의) 마드리드에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 시민들, 현재로서는 전혀 전망을 가지고 있지 못한 남녀 시민들을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당시 마드리드 시민들도 참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불행했다는 걸 알 수 있고, 2010년대 후반의 대한민국 국민들도 정말 제각각으로 불행하게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만일 위에 인용한 것이 여전히 효용이 있다면 말이다.
 등장인물들은 지극히 가난한 다수와 작은 성공을 대단한 성공인 것처럼 오해하는 적은 숫자의 중소 상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굳이 주인공을 한 명 고르자면 대학을 졸업하고 한 때는 시를 썼지만 끔찍하게 큰 엉덩이를 가지고 있는 도냐 로자의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시켜먹고 돈이 없어 하마터면 허벅지를 걷어차일 뻔한, 그러나 이미 모욕은 모욕대로 겪은 ‘마르틴’이란 실업자라고 볼 수 있겠지만, 진짜 주인공들은 동시대를 살면서 함께 셀라가 자기 소설에 등장시킨 모든 가난하고, 배고프고, 병들고, 병든 애인의 약값을 위해 몸을 팔정도로 아둔하고(남자가 나중에 어떻게 변할 줄 알아!), 1 페세타어치 군밤으로 한 끼니를 때웠으면서도 건강을 위해 저녁 식사는 가볍게 한다고 둘러대야 하는 시민들과, 한 푼의 적선을 위해 하루 열 시간이 넘게 플라멩코 춤을 추며 노래해야 하는 집시 꼬맹이이기도 하고, 전 재산을 겉모습이 번드르르한 사기꾼한테 투자했으면서도 그 사기꾼을 향해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그마한 인쇄소나, 빵집이나, 카페 하나를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보다 가난한 자들에게 가끔은 혹독하고 가끔은 관대하기도 한 모든 군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즉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이다.
 즉 셀라는 큰 화면에 같은 시대의 마드리드를 사는 중류, 중류 이하 계급의 인간 모습을 판화 찍듯 꾹꾹 눌러 그대로 묘사하기만 한다. 이런 작품에서 소설의 맛을 착 감기게 만드는 역할은, 일종의 악역들의 행위, 바로 조금 부자들. 저녁 식사 때마다 과식을 해 밤새 뱃속이 더부룩하고 가끔은 요동을 치게 만들 수 있는 사람들, 가난뱅이 앞에서 비싼 시거를 태우며 유쾌하게 어때 자네도 한 대 피워볼래? 번히 권유에 응하지 못할 걸 알면서도 호기를 부릴 수 있는 작은 인쇄소 사장, 이런 인물들이다. 내전과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계대전으로 인해 절대 궁핍에 시달리는 대다수 시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 할 수 있는 희망고문자들. 아무리 프랑코가 무식한 깡패 개자식이라고 해도 이 작품 속에 든 시대의 절망에 관해 눈치를 채지 못했을 턱이 없다. 그러니 같은 언어를 쓰지만 수 천 킬로미터 떨어진 아르헨티나에서 초판을 찍을 수밖에 없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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