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대표희곡 선집 2
한국극예술학회 엮음 / 월인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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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친 열 편의 대표 희곡을 담고 있다. 작가로는 임희재, 차범석, 이용한, 유치진, 이근삼, 천승세, 오영진, 오태석. 이 중에 차범석과 이근삼은 두 편의 작품을 ‘대표희곡선집’에 포함시키는 기염을 토한다. 또 유치진은 1931년에 쓴 <토막>이 선집 1편에, 이어 57년 작품 <산불>을 2편에 올림으로 해서 노익장을 과시하고, 오영진도 1편에 1949년 작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2편에도 67년작 <해녀(海女) 뭍에 오르다>를 실었다. 좋게 이야기하면 차범석, 오영진 양 씨의 필력이 워낙 출중해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고, 약간 비틀어 생각하면 그만큼 우리나라에 극작가 풀이 일천해서 풍성하지 못한 작품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여길 수 있겠다. 한국극예술학회에서 편 <한국현대대표희곡선집>은 이렇게 단 두 권으로 끝난다. 20세기 말에 나온 시리즈의 원래 취지는 1990년대까지의 대표 희곡을 다 선정하는 것이었지만 이후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의 대표작품은 출판사 월인(月印)과 같은 회사인 “연극과인간”에서 김성희 선생이 선정한 열 편의 작품으로 대신하는 듯하다. 김성희 선생의 책에서도 다시 이근삼과 오태석의 작품을 하나씩 소개하는 바, 이근삼은 우리나라 대표 희곡 서른네 편 가운데 무려 세 편이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이 책을 1편과 비교하면, 당연히 그동안 시대가 발전하고 외국문물도 보다 활발하게 유입된 것과 함께 해서, 본격적인 현대성을 획득하고 있다. 1950년부터 3년간 이어진 한국전쟁으로 인해 자연스레 실존주의과 리얼리즘이 가장 활발하게 활약한 시기였으며 이런 경향은 희곡(또는 연극)에서도 두드러져 보인다. 물론 1930년대에도 백철이 슈프레히코어 같은 양식의 작품 <수도를 걷는 무리>를 선보이기도 했으나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실존주의적, 사실주의적 표현 속에서도 실험적 시도를 서슴지 않고 포함시키는 단계까지 이르게 된다. 거기에 이근삼을 비롯한 유학파를 기수로 보다 다양한 실험을 적용시키기도 한다, 한 무대를 쪼개 조명의 F.I와 F.O, 암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막을 대신하고 다양한 심리적, 환경적 표현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게 되기도 하는데, 해설에 의하면 영화의 기법을 차용한 결과란다.
 그러나 1960년대 까지, 물론 10여 년 전에 한국전쟁이란 거대한 사건의 영향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소재 역시 한국전쟁의 끄트머리의 불안정한 사회, 전쟁 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사는 인간상, 제대군인들의 상실감 등이 중요한 소재로 대두되고, 한편으로는 복구시기 사회의 부조리, 부정부패, 물질만능 같은 걸 그리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천승세는 섬에 사는 가난한 어부의 비참한 삶을 리얼하게 보여주며, 오영진 역시 제주도의 가난한 황산포구에서 물질을 하며 아들 하나를 키우고 사는 해녀가 비정한 서울의 부르주아 사이에서 어떻게 희생되는지를 그려낸다.
 열 편의 희곡이며 565쪽에 달한다. 보통 희곡집이라면 대사 위주라 속도가 잘 나가지만, 이 책은 빽빽하게 장편 희곡을 담고 있어서, 요즘 시중의 희곡집으로는 대강 일고여덟 권의 분량에 해당한다. 정가가 11,000원. 10% 할인하면 만 원 내도 거스름돈 받는다. 소위 말하면 가격대비 가성비는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극작가 면면을 보면 제일 먼저 등장하는 이가 임희재. 누군지 아시려나? 1969년부터 70년까지 동양방송(TBC)에서 시청률 90% 이상을 자랑하던 드라마 <아씨>의 작가다. 임희재를 비롯해 당시 극작가들은 (연극을 하면 극작가가 됐든 배우가 됐든 배를 곯을 수밖에 없어) 유명세를 타게 되면 TV 드라마 제작에 더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이 말고도 이용찬 역시 극작가라기보다 라디오 연속극 작가, TV 드라마 작가로 대중에게 알려져 있다.
 천승세의 <만선>은 20대 중반에 읽어보고 이제 재독한 것. 천승세는 일반인 또는 국문학이나 문예창작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겐 <황구의 비명: 黃狗의 悲鳴>으로 유명하지만 1970년대에 장편소설 <낙과를 줍는 기린>이나 <사계의 후조: 四季의 候鳥>에서 엽기발랄하고 재기 넘치고, 화려무비한 대사를 무차별로 쏟아낸 전력이 있다. 물론 이 두 장편이 그의 초기 또는 전성기 시절의 리얼리즘하고 차이가 있어 널리 읽히지 않았는지 모르기는 하나 하여간 입심 하나는 죽여줬다. <만선>을 다시 읽으며 떠오른 생각은 애초 이이가 극작가로 등단을 해서 소설 속에서 특별히 독특한 대사를 만들어내는데 다른 작가들보다 월등히 유리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1980년대 중순에 강서구 신정동의 붐비는 시내버스에서 이 양반을 우연히 만나 천선생 아니시냐고, 이리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를 차렸더니 나더러 묻더라. 누구냐고. 그래 팬이라 했더니 멋진 콧수염을 기른 키 크고 잘 생긴 중년이 눈이 둥그래지며 알아봐서 고맙다고, 한 번 더 만나면 소주 한 잔 하자고, 자기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했지만 다시 만나는 우연은 생기지 않았다. 이 양반 어머니가 1940년 들어 일본어로 글을 쓰느니 팍 붓을 꺾어버린 소설가 박화성 선생이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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