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새니얼 호손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
나사니엘 호손 지음, 천승걸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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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 그렇군. 이제야 알겠어. <주홍글씨>를 읽으면서 내내 불편했던 이유를.
 열두 편의 단편소설을 담은 선집.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불안, 우울, 절망, 청교도 적 엄숙주의와 악마, 이런 거다. 당시 미국의 빽빽한 삼림. 도처에 원주민이 목숨을 위협하고, 하늘을 덮어 대낮에도 컴컴한 우울한 밀림 속의 분위기. <주홍글씨>에서도 봤지? 대낮에 산보하기도 겁나는 지역. 시도 때도 없이 엘크와 요정과 목신이 언제 덮칠지 모르는 곳. 습기와 이끼와 썩은 낙엽이 깔려있는 숲 속의 한 그루터기에 마주보고 앉은 헤스터와 아서 딤스데일. 원죄와 원시, 배신과 야만 그리고 청교도의 잡탕밥.
 이 단편선에서도 참 골고루 나온다. 후원자 삼촌을 찾아 길을 나섰으나 삼촌 이름을 꺼내자마자 폭소를 터뜨리기만 하는 동네 사람들(나의 친척. 몰리네 소령), 원주민과의 전투, 가망 없는 밀림과 생사의 기로, 구조는 됐지만 죄의식에 싸여 평생 음울한 인간으로 살아가고(로저 맬빈의 매장), 악마를 추종하는 회합에 참여하며 야생 샐러리 즙과 양지꽃에 늑대의 독즙에다가 고운 밀가루와 갓난아이의 비계를 섞어 묘약을 만드는 이야기(젊은 굿맨 브라운), 언제 사태가 날지 모르는 가파른 언덕 아래 집을 짓고 사는 가족과 손님(야망이 큰 손님) 등등 참 어둡다.
 이렇게 쓴다고 호손의 단편들이 격이 떨어진다거나 재미없다거나 하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우화적인 소재를 끌어들여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다만 ① 지독히 우울하고 음산할뿐더러 농담이나 유머 있는 장면이 한 컷도 나오지 않고, ② 18세기 이야기를 쓴 19세기 작품이라 지금 시각으로는 별로 효용이 없는 내용일 거 같으며, ③ 기독교와 이단 혹은 악마주의는 끔찍하게 싫어하는 분야라서, 소설 공부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물론 전적으로 내 생각이지만, 현대인이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렇다. 우화집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각각이 독특하게 엽기적이다. 그럼 “성인용 호손 우화”라고 해도 되리라. 혹시 호손의 우화적 단편소설들에게 “유통기간 만료” 딱지를 붙이면 야만스런 일일까?
 나 같으면 <주홍글씨>말고 호손을 한 권 더 읽으려면 <블라이드데일 로맨스>를 읽겠다. <일곱 박공의 집>은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뭐라 하지 못하겠고.


 다시 강조. 전적으로 내 의견이다. 내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시는 분들에게 드릴 말씀 있다.
 “당신의 생각이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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