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퐁스 을유세계문학전집 9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정예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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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노레 드 발자크. 이 사람의 소설을 읽으면 가끔 확 질려버린다. 퐁스 선생의 외모를 묘사하는데 무려 여덟 쪽의 지면을 할애하고, 파리의 한 (구역區域도 아니고) 동네를 설명하게 위해 또 열 쪽의 종이를 소비하는 세밀한 묘사. 여기서 끝? 천만의 말씀. 인물의 외모에 대하여 그리 많은 말을 했음에도 다시 직업과 지나간 세월을 설명하기 위해 그것보다 더 많은 공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고도 이젠 특정 건물과 건물 속의 호실號室의 전경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또 많은 페이지를 할당한다. 이거 읽는데도 이리 장황하니 쓴 사람은 얼마나 지긋지긋했을까.
 그럼 질리는 책을 왜 읽느냐고? 그야 재미있으니까 읽는다. 말을 그냥 “질리다”라고 표현해서 그렇지, 사실은 발자크 표 청산유수의 말솜씨로 사물을 포장하는 그이의 솜씨가 기막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주인공 퐁스 선생이 19세기 초에 거의 날마다 부르주아들에게 저녁식사를 대접받았다고 한다. 당연히 고급 음식만 먹었을 것. 이걸 작가는 이렇게 묘사한다.


 “이렇게 교육받은 위장은 미식의 지혜를 얻었으므로 반드시 정신에 영향을 미쳐서 그것을 타락시킨다. 마음의 모든 주름마다 웅크려 있는 쾌락은 여왕이 되어 명령하고, 의지와 체면을 맹렬히 밀어 내어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충족되고자 한다. 여태껏 주둥이 폐하의 욕구는 제대로 묘사된 적이 없다. 먹고사는 문제에 가려져서 문학적인 비판을 면했다. 하지만 밥상으로 파산한 이들의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렇게 봤을 때, 밥상은 파리에서 매춘부의 경쟁자인데, 달리 말해 전자가 수입이라면 후자는 그것의 지출이다.”


 이게 극히 일부만 발췌한 것이다. 불쌍한 건 2번이 프랑스 문자로 발자크를 읽지 못하는 한국 독자이며, 3번이 발자크를 한국말로 번역해야 하는 역자이고, 제일 불쌍한 1번이 발자크를 읽지 않고 세상을 하직하는 세상의 숱한 인간들이다.
 퐁스 선생의 직업은 작곡가이자 극장 지휘자. 작곡가로 제법 잘 나가다가 혜성처럼 등장한 게으름뱅이 천재 조아키노 로시니 때문에 명함 한 장 내밀지 못하는 변두리 작곡가 신세로 떨어졌다. 그래도 부모가 돈 좀 있어서 식도락을 겸해 이탈리아를 주로 여행했는데, 부모가 물려준 돈의 거의 모두를 선생 특유의 심미안이 뒷받침해 고른 명품 이탈리아 문화재를 구입하고, 파리로 운송하는데 소비했다. 당시엔 운송료가 무척 비쌌던 모양이다. 이해는 간다. 사고가 많았을 테니 그만큼 적하보험료도 대단했겠지.
 퐁스 선생은 작가가 묘사하기를, “자연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인물이라 했다. “중국 사람만이 낼 줄 아는 도자기 인형처럼 생기 없고 우스운 얼굴이 늘어져 있”고, “거품을 떠내는 국자처럼 송송 뚫린 구멍이 만들어 내는 그늘로 얼굴지고, 로마 시대의 가면처럼 돋을새김이 있는 그 넓적한 얼굴은 해부학의 모든 규칙을 부정”했으며, “정상적인 윤곽이라면 뼈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젤라틴질의 평면이 있었고, 파였어야 하는 곳에는 짓무른 혹이 솟아 있었다.” 또 “눈썹을 대신한 두 개의 붉은 줄 아래 회색빛 눈 때문에 슬퍼 보이는 이 얼굴은, 큰 호박 모양으로 눌려 있었고, 돈키호테풍의 코가 들판 위에 표석(漂石: 잘못 쓴 한자 같음. ‘標石’이 맞을 듯)처럼 두드러졌다.” 선생도 자신이 자연에게 버림받은 외모를 가지고 있는 줄 잘 알았기 때문에 여태 결혼 한 번 못하고, 결혼은커녕 연애도 한 번 못하고, 있는 돈이란 돈은 모두 예술품 수집에 쏟아 넣어 손엔 현금이라고는 구경도 할 수 없었다. 물론 부르주아 수준에 그렇다는 말씀. 원래 있던 집안 출신이라는 걸 감안하면 그렇다는 거.
 그런데 이 영감님이 도무지 포기하지 못해 하는 것이 바로 미식에 대한 욕망. 억지로 가져다 붙인 족보에 의하면 현직 법원장하고 사촌이라는데, 이 끗발로 여기저기, 이집 저집의 만찬에 초대받아 밥을 얻어먹고 있었나보다. 돈이 없어 얻어먹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하숙집에서 밥을 먹는 것으로는 도무지 미식 취미에 맞출 도리가 없어 맛난 음식을 먹기 위해 온갖 동네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첫 장면이 스펜서재킷을 입은 촌스런 외모인데 그것도 오래 입어 꼬질꼬질하고 낡은데다가 크기만 하고 오히려 짐스러운 귓불이 깃에 닿아 헤진 모습이 꼭 문둥병 환자 같았다고 써놓았다. 그러니 법원장 집에서 좋아하나. 그래 날마다 만찬을 얻어 자시는 게 조금 보대꼈는지 한 날을 잡아 18세기 초엽의 프랑스 화가 장 앙투안 바토가 앞 뒤 양면을 그린, 일찍이 루이 15세의 애첩 퐁파두르 부인이 사용하던 부채를 법원장 부인에게 선물하지만, 도대체 예술품과 감식안에 전혀 무지한 부인과 딸은 그것이 얼마나 귀중한 보물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날마다 염치없이 자기 집에 와서 밥만 얻어먹는 퐁스 선생이 얄미운 것만 알고.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핑계를 대서 쫓아내버린다. 귀한, 그러나 낡은 부채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면서.
 아, 맛난 음식이여. 나는 퐁스 선생의 고충을 완벽하게 이해한다. 차라리 좋은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행복할까. 독자는 부채 사건으로 선생과 법원장 댁 사람들과 사이가 이미 틀어져버렸음을 눈치 챌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사촌 집에서 쫓겨난 후 한 두어 주 절친한 친구이자 동거인이며 자신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독일인 슈뮈크와 함께 하숙집에서 제공하는 수수한 밥상만 받으며 우울증을 키워 간다. 그러다 퐁스 선생을 다시 초대한 사촌. 얼른 가보니 사촌의 딸이 부유한 남자에게 청혼을 받는 날이었던 것. 하지만 청혼은 조카가 외동딸이란 사소한 이유 때문에 딱지를 맞고, 한쪽에서만 열라 기대했던 혼사가 이루어지지 않자 법원장 부인과 딸은 그걸 몽땅 퐁스 선생의 파렴치한 잘못으로 뒤집어씌운다.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파리의 부르주아 계층한테 사발통문을 보내 앞으로 퐁스 하고는 상종하지 말 것을 종용해 이에 타격을 받은 선생은 곧바로 자리에 누워 진짜로 골로 갈 때까지 침대만 지키고 있게 된다. 원래 작곡가이며 예술품 수집가에다가 애초부터 자연이 버린 외모 때문에 인간의 사랑을 포기하고 살았던 퐁스. 그렇기에 집단 따돌림은 큰 바위가 되어 퐁스를 압사시켜버리게 되는 것.
 근데 이리 집단으로 따돌림을 시킬 때까지 퐁스의 경쟁자인 유대인 예술품 수집가 한 명을 빼고는 선생이 여태 모은 예술품이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는 진짜 예술품인줄 아무도 몰랐던 거였다. 그러나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나. 한 명, 한 명 그리고 또 한 명이, 나중에 거의 모든 사람이 알게 되자, 친한 친구만 빼고는 어떻게 죽어가는 선생의 뒤통수를 한 방 호되게 쳐 국물이나 좀 떠먹을까 껄떡대기 시작한다. 그렇다. 퐁스 선생이 죽음의 침상 밑에 거액을 깔고 누우면서부터 인간들의 적나라한 본성이 드러나면서 이제 다음 편이 없는 발자크의 삶의 목표, “인간극”은 대단원을 찍는다.
 발자크의 경우엔 이렇게 작품 내용을 다 말해줘도 전혀 께름칙하지 않다. 19세기에 쓴 작품이지만 외모와 심리를 묘사하는데 진짜 기막힌 솜씨를 보여주고, 무엇보다 여태까지 위에 쓴 스토리를 풀어가는 입심이 차라리 경이적이기 때문이다. <사촌 퐁스>. 처음엔 작가 특유의 입심에 시간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다가, 죽음의 침상에서 선생이 이웃들로부터 얻어터지는 걸 보며 함께 절망하다가, 결국엔 “인간극La Commedie humaine”의 의미를 깨닫는 의미심장한 코미디.
 작가 본인이 상류계급에 어울리게 차려입고, 먹고 마시느라 진 빚을 갚느라고 꼬박꼬박 하루 열네 시간씩 소설쓰기에 매달렸다는데 어떻게 작품마다 다 재미가 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연표를 보니 만 51세에 세상을 떴다. 한 20년 더 살았으면 어땠을까. 인류의 즐거움이 더 늘었을까, 아니면 일찍 세상 마감하기 잘 했을까. 하여간, 뭐 잘난 것이 있기에 발자크보다 더 길게 살고 있는지, 그게 부끄러운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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