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제목을 “칠드런 액트”라고 했을까. 그냥 “소년법”이라고 하면 좀 촌스럽나?


 59세, 조금 있으면 60세 생일을 맞을 피오나와 잭 메이 부부에게 난데없이 파도가 몰아친다. 잭에게 멜러니라는 이름의 젊은 여자가 생긴 것. 나이가 들고 고등법원 판사인 아내가 워낙 바빠 건조한 사랑의 단계에 접어든지 벌써 오래. 잭은 아직 열락과 흥분을 필요로 하는 반면 피오나는 샤워실에서 스스로의 알몸을 비춰보면서 자신에게 흥분을 느낄 남성은 세상에 한 명도 존재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잭은 여전히 피오나를 사랑하지만 내세가 있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혼상태를 유지한 상태에서 멜러니를 통해 열락과 흥분을 즐기고 싶다고 과감하게 고백해버렸다. 이 상태를 묘사하는 몇 페이지, 참 재미있다.
 추석을 맞아 아이들이 와서 밥상 앞에서 이 이야기를 했다. 여든 넘어서도 소위 열락과 흥분을 원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 노년에도 그런 상태를 유지하는 건 저주받은 일이라고 의견을 같이 했다. 잘 생긴 이성을 보면서도 흥분하지 않는 단계가 되면 세상이 건조한 대신 얼마나 편한 줄 모른다. 근데 그 나이가 돼서까지 습식 사랑(열락과 흥분)을 원하면, 게다가 잭 메이 선생처럼 그걸 만족시킬 대상이 적법하지 않거나 대상 자체가 없는 노인이면 얼마나 불행하겠는가. (이야기가 좀 더 심화 확대되어) 가족은 공창제도의 긍정적인 면을 조명했으며, 아내는 어떤 매춘부의 경우 주로 노인과 장애인들에게만 성 매매를 한다면서 인도적 견지에서 공창제도에 찬성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들은 피오나 메이 판사는 곧바로 남편 잭 메이 교수를 내쫓아버린다. 어, 이러다 멜러니한테 진짜로 가버리는 거 아냐, 후회하면서. 이러니 골이 지끈지끈 아픈 건 당연하겠지. 딱 이런 상태에서 법원 당직 서기한테 전화가 걸려온다. 긴급을 요하는 판결 건이 병원으로부터 접수되었다고.
 만 17세 9개월짜리 청소년. 석 달 차이로 아직 칠드런 액트, 즉 소년법을 적용받아야 하는 애덤이란 소년이 긴급 백혈병에 걸려 입원치료 중인데, 사흘 안에 혈액을 투여하지 않으면 사망. 극적으로 치료가 잘 되어 만일 산다고 해도 눈이 멀거나, 폐에 피가 차거나, 평생 혈액투석을 해야 하거나, 급성 뇌졸중으로 식물인간이 될 확률이 많단다. 문제는 환아 애덤과 그의 부모인 헨리 부부조차 수혈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것. 1945년, 뉴욕 브루클린의 한 건물에서 성경의 몇 귀절을 해석하다가 전 신도에게 수혈을 거부할 것을 명령한 여호와의 증인 교도였던 거다. 그래 사안이 화급하니 당장 내일 오후에 첫 번째 심리가 열겠다고 재판 당사자에게 통보하라 하면서 소설은 본격적인 줄거리를 잡아간다.
 가뜩이나 철없는 남편 때문에 골 아파 죽겠는데 하필이면 이때 당직이라 골치 아픈 결정을 해야 하는 피오나. 병원 측은 위에서 쓴 것과 같이 만일 수혈을 하지 않을 경우 가까운 시간 안에 벌어질 일들을 설명하며 병원에게 환자와 환자의 보호자 의견과 관계없이 수혈할 수 있는 권한을 달라고 요구하고, 인권과 신념과 개인의 결정권을 들어 수혈을 거부하는 환자와 보호자. 이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다. 마그나카르타의 나라 영국 가정법원 판사 피오나 메이는 환자가 수혈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 소년 스스로, ‘진정한 의미에서’ 스스로 그렇게 결정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심리를 중단시키고 직접 병원에 방문해 한 시간 가량 애덤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대화뿐이랴. 마침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애덤의 반주로 노래도 하나 한다. 예이츠의 시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에 벤저민 브리튼이 곡을 붙인 노래.


 

 강변의 들판에 내 사랑과 나는 서 있었지.
 기울어진 내 어깨에 그녀가 눈처럼 흰 손을 얹었네.
 강둑에 풀이 자라듯 인생을 편히 받아들이라고 그녀는 말했지.
 하지만 나는 젊고 어리석었기에 이제야 눈물 흘리네.


 피오나는 완전히 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이 노래의 가사에 영감을 받는다. 그리고 매스컴에 공개한 재심리에서 이렇게 판결한다. 그 중 일부를 옮긴다.


 “저는 A의 정신, 견해가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A는 아동기 내내 강력한 하나의 세계관에 단색으로, 중단 없이 노출된 채 살아왔고, 그런 배경이 삶의 조건을 좌우하지 않았을 수는 없습니다. 고통스럽고 불필요한 죽음을 감수하는 것, 그리하여 신앙을 위해 순교자가 되는 것이 A의 복지를 도모하는 길은 아닐 것입니다. (중략) 요컨대 저는 A와 그의 부모, 회중의 장로들이 본 법정이 가장 중시하는 A의 복지에 해로운 결정을 내렸다고 판단합니다. A는 그런 결정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합니다. A는 그의 종교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병원의 손을 들어줬다. 애덤은 순순히 수혈을 받아들였으며, 애덤의 부모, 헨리 부부는 병실 밖에서 눈물을 철철 흘리며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애덤은 나중에야 알아차린다. 부모가 운 이유는 아들이 더러운 타인의 피를 수혈 받아서가 아니라, 아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이야기는 끝난 거 같다. 그러나 작가가 다른 이도 아니고 이언 매큐언이다. 이 정도로 끝낼 사람이 애초부터 아니었다. 이제야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올 차례.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서 꺼내지 않겠다.
 심지어 늦바람 난 잭 메이 선생이 어떻게 됐는지는 아무 말도 보태지 않았잖은가. 직접 읽어보시라는 뜻에서. 이렇게 변죽만 울리고 중도에서 뚝 그치는 심통이, 생각보다 재미있는 거, 그거 아시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