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하일지 지음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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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들어 사람들 입 끝에 가끔 오르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 포스트에선 오직 하일지의 소설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겠다.

 첫 하일지가 1990년의 <경마장 가는 길>. 민음사에서 나왔고, 신문광고를 보고 제목이 특이해서 얼른 사 읽어봤는데, 느낌이,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이런 작가가 출현했구나, 라는 감탄이었다. 완전히 건조한 문체로 쓴 소설. 프랑스 유학 동안 뜨겁게 사랑을 불살랐던 남녀. 남자는 유부남이고 여자는 미혼녀. 여자는 남자가 유부남인 걸 처음부터 알았으며, 귀국해서 이혼해버리고 둘이 결혼할 계획이었는데, 이혼은 안 되고 여자는 남자를 귀찮아한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참, 귀국한 다음에 연인(이라기보다 그냥 남녀라고 하는 게 더 나을 관계)이 식당에 가서 참 열심히, 자주 먹던 음식이 육개장이란 거, 파리에선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몸의 즐거움을 나누던 여자가 서울에선 하도 이리 빼고 저리 빼는지라 억지로 관계를 하는 바람에 팬티스타킹이 찢어졌고, 찢어진 팬티스타킹을 내려다보는 여자의 눈길이 지금도 훤히 보이는 거 같다. 28년 전 기억이니 혹시 사실과 다르더라도 양해해주시라. (뭐 그동안 작가가 내용을 바꿨을지도 모르잖아!)
 이후 <경마장은 네거리에서>, <경마장에서 생긴 일>까지 읽고, 초년 대리답게 쇤네도 먹고 살려고 아등바등하느라 책을 끊어버렸다. 조국의 현대화를 위해. 장하지?
 그리하여 큰 기대를 갖고 <손님>의 첫 페이지를 열었다.
 얼라?
 하일지가 28년 전의 하일지가 아니다. 문장은 쉬운 단어들과 감정이 넘실거려 쉽게 팍팍 읽히고, 감정이 넘실거리게 하느라고 (쇤네 전공인) 상스러운 욕설을 남발한다.
 ‘하원’이라는 시골동네가 무대다. 동네에 허표, 허순, 허도, 이렇게 삼남매가 산다. 허표는 심각한 결핵에 걸려 언제 죽을지 기약하지 못하는 허도를 데리고 산다. 그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니라, 장가도 못간 허도를 죽을 때까지 누가 챙겨주긴 해야 하겠는데, 여동생 허순이 아들 둘 달린 이혼녀로 택시 운전을 하는 개망나니 석태와 동거중이라 마나님의 눈치를 보며 거두어준 것뿐이다. 이 마나님이란 작자가 또 보살 흉내라도 내면 좋겠는데 폐병쟁이 시동생이 어디 눈에 들어오기나 할까. 허도는 폐병에 좋다고 어디서 들었는지 동네 하원 입구 고욤나무 밑에서 땅을 슬슬 파다가 실한 지렁이가 기어나기만 하면 낼름, 산 채로 집어 먹으며 소일하고 있다. 그림 그려지시지? 근데 하일지는 형수가 영양식을 도무지 챙겨주지 않아 허도가 지렁이를 잡아먹는다고 얘기하는데, 2012년에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허순은 근처 고등학교에서 방과 후 무용을 가르쳐 먹고 산다.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무용 대회에 참가했던 모양이다. 거기서 미스터 슈를 만나 친교를 다지고, 그저 농담으로 어이, 미스터 슈, 언제 한 번 하원에 놀러와, 라고 했겠지. 그런데 한국 태생의 미국 입양아 출신인 엉클 슈가 진짜로 고속버스를 타고 하원에 놀러 오면서 사달이 나기 시작한다. (외국인한테 이런 얘기 하지 마라. 진짜 온다.)
 좋아, 좋아. 소설가의 변신이란 자유이며 권리니까, 하일지가 이런 식으로 변한 것 역시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 그게 쇤네의 취향이건 아니건 말이지.
 하일지가 만든 허씨 남매들이 전부 문제가 있는 인간들이다. 어떻게 문제가 있는 인간인지 차마 구차해서 여기다 옮기지는 않겠지만, 오죽이나 그랬을까, 쇤네가 두 번이나 책을 덮고, 이쯤에서 읽기를 때려치우자고 작정을 했으나, 읽는 장소가 파티션에 둘러싸인 사무실 구석이어서 이 책 읽는 짓 말고는 할 일이 없어 기어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버리고 말았다. 첫째 허표는 슬슬 눈치를 보며 자기한테 이득이 될지 아닐지를 먼저 생각한 다음에 불고염치하고 사소한 이득을 얻고는 인사도 없이 후딱 사라지는 염치없는 인간이고, 둘째 허순은, 쇤네가 주로 얘가 하는 파렴치한 행위 때문에 책을 덮었을 정도로 형편무인지경의 잡년. 이에 못지않은 잡놈 석태 하는 짓도 가관 중에 가관이다. 폐병이 깊어 오늘 낼 하는 허도란 새끼는 이제 열여섯에서 열여덟 살의 여고생들이 손님이 베푼 활수한 씀씀이에 대하여 몸으로 갚아주지 않는 걸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아쉬워하니, 이게 사람의 새끼냔 말이지. 근데 어째 하일지는 은근히 허도의 시선을 옹호하는 듯해서 쇤네를 극히 불쾌하게 했으니, 이게 쇤네 잘못일깝쇼?
 하여간 쇤네가 읽기에 하일지의 <손님>은 잘 쓴 글도 아니고 재미있는 책도 아니고, 심지어 독자 알기를 매우 우습게 아는 책이었다. 독자는 벌써, 아주 벌써 손님의 정체를 이미 훤하게 알고 있는데, 심하게 친절하게도 여름용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은 채로 손님과 9월 밤의 호수에서 수영을 한 여고생 유나의 입을 통해 “장난이 아닌 물건”을 가진 손님의 정체를 발설하게 만들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작가의 변신은 자유이고 권리. 작가가 변신한 모습을 보고 좋다, 망했다를 결정하는 건 독자의 자유이자 권리. 하일지, 쇤네의 인생에서 사라졌고, 책 <손님>은 “버릴 책”으로 분류되어 책꽂이에 꽂히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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