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로의 비밀 -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소설 2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소설 2
막스 갈로 지음, 이재형 옮김 / 예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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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뭐야!
 역사학자이기도 했던 막스 갈로가 쓴 로마 인물소설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 <네로의 비밀>은, 첫 번째 작품인 <스파르타쿠스의 죽음>과 달리 이 한 권에서 끝나지 않는다. 뒤로 가면 갈수록, 이렇게 뜸만 들이다가 언제 네로가 죽을까…에서, 지금 죽지 않으면 결말까지 못 가는데, 싶다가 기어이 에이 썅, 베스파시아누스가 이제 나오면 틀림없이 다음 권까지 읽어야 한다는 걸 눈치 챈다. 그 허무감이라니.
 네로가 죽인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세네카라는 인간이 있다. 로마 황제 시절의 유명한 철학자로 말더듬이, 절름발이, 간질병 환자였던 클라우디우스 황제한테 미움을 받아 귀양을 간 사람인데, 이이가 작품의 화자인 세레누스의 은사이기도 하다. 세레누스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조카 아그리피나가 나중에 네로가 되는 루키우스 도미티우스를 낳을 때부터 시작해 이 책이 끝나는 시점까지, 그리고 다음 권인 <티투스의 승부수>에서 네로가 죽은 다음까지 험한 세월 동안 독약을 먹거나, 동맥을 끊거나, 목이 잘리거나, 맞아죽지 않고 기어이 살아내는데 성공하여 나중에 네로가 죽을 때까지 그를 둘러싼 사건들을 평전 식으로 기록한다. 화자 세레누스처럼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을 우리는 궁극적 승자라고 하는 거 아냐? 하여간 그렇다는 말씀.
 화자 세레누스는 처음부터 세네카가 죽을 때까지는, 아그리피나가 남편을 죽이고 삼촌인 클라우디우스와 결혼한 다음 황제마저 독살해서 기어이 열여섯 살 먹은 아들 네로를 황제의 위에 오르게 한 후, 네로가 차츰 혼탁해져 클라우디우스의 친아들이자 자신의 배 다른 동생인 브리타니쿠스를 독살하고, 자기 대신 권력을 농락하려는 친어머니 아그리피나를 양날검으로 처단하고, 후환을 없앤다는 명분으로(사실은 포파이아와 결혼하기 위해) 클라우디우스의 친딸이자 자신의 아내인 옥타비아를 죽여 전권을 차지할 때까지, 황제의 옆에서 천륜을 어겨가며 자행한 살인행위에도 불구하고 세네카가 네로에게 옳은 길로 가도록 충언하지 않은, 또는 못한 것을 한탄하기만 한다. 세네카가 죽은 다음엔? 죽기 얼마 전부터 저 촌의 지방도시 작은 별장에 머물러 소낙비를 피하다가, 작품의 화자가 되기 위해 다시 로마로 와서 세네카의 죽음을 지켜보고, 자신이 비난했던 세네카보다 훨씬 더 조용하게, 왕창 겁을 먹고 네로의 눈 밖에 나 죽음을 맞지 않기 위해 조심 또 조심하면서 목숨을 이어간다. 다 그런 거지. 그리고 이런 거, 다 독자가 이해해야 한다. 세레누스 본인이 비겁하게 살아남고 싶었다기보다, 막스 갈로가 그로 하여금 책의 화자 역할을 시키기 위해 창작한 인물이기 십상이니 말이다.
 그러나, 위에서 얘기했듯 결론, 즉 네로가 이 책에선 죽지 않는데 뭘 더 얘기할 것이 있겠는가. 책을 읽으면서 어라? 했던 것만 몇 가지 이야기해보자.


 1. 헨릭 시엔키에비츠가 쓴 <쿠오바디스>에 등장하는 사실상 제일 멋있는 남자, 페트로니우스가 정말 실존했던 인물이었던 거다. 햐, 이 반가움이라니. 이 책에서도 <쿠오바디스>와 같이 자살하기 위해 손목을 그었다가 다시 붕대를 감고 네로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도 등장한다. 물론 시엔키에비츠처럼 명문의 편지는 나오지 않는다. 당연하지, 갈로의 본업은 소설가라기보다 사학자에 가까우니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시엔키에비츠를 능가하는 페트로니우스의 편지, 유머가 가득하면서도 사정없이 네로의 유치한 취향을 비꼬아버리는 날이 퍼런 독설과 비견할 문장을 만들지는 못했을 거다. 기억하시나? 페트로니우스가 네로 개자식에게 보냈던 편지. 한 번 보시라.
 “폐하. 앞으로 만수무강하시더라도 제발 대중 앞에서 노래는 하지 마십시오. 양민을 학살하시더라도, 아무튼 시는 쓰지 말아주십시오. 사람들을 독살하시더라도, 부디 춤은 추지 마십시오. 또다시 불을 지르시더라도, 부탁이니 그 서투른 키타라 연주는 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폐하의 벗이자 ‘고상한 판관’인 페트로니우스가 폐하께 드리는 충고입니다.”
 <네로의 비밀>에서도 똑같은 상황에 처한 로마가 다시 등장한다. 다만 작품의 주제가 네로, 한 개인이기 때문에 <쿠오바디스>와 달리 폭군에게만 초점을 맞춰 서술한다.


 2. 몬테베르디가 지은 오페라 <포페아의 대관>하고 어째 이리 다를까. 몬테베르디는 자신의 작품에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해버린다. 포파이아(포페아)의 남편 오토(오토네)가 황후 옥타비아와 공모해서 포파이아를 죽일 계책을 세운다고? 아이고. 옥타비아의 시어머니이자 새엄마이자 사촌언니인 아그리피나가 아들 네로한테 버림을 받고 권력을 잃어버린 후, 옥타비아가 정통 황실의 후손임을 깨달은 아그리피나가 친아들 네로를 제거하고 옥타비아를 내세워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있을 거라 머리를 굴리다 오히려 아들한테 죽임을 당한 이후인데 무슨 깡다구가 있고 측근이 있고 무리들이 있어 모사를 꾸미겠느냐고. 아 씨, 난 여태까지 <포페아의 대관> 내용이 정말인줄 알고 살았다. 이럴 때 김도향이란 이름의 흰 수염 난 옛 가수는 이런 노래 부르더라.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책 읽어보니까 포파이아가 등장할 무렵 네로는 정식 아내이자 이름뿐인 아내인 옥타비아 말고 동성애 전용 남편 한 명, 동성애 전용 아내 한 명, 이렇게 있었는데, 여기에 포파이아가 합세해 <쿠오바디스>의 영웅 페트로니우스조차 “아크로바틱하다”고 할 정도의 난잡하고 고 난이도의 난교파티에 날 새는 줄 몰랐다고 한다. 그런 네로와 포파이아의 연애를 이렇게 노래하는 게 말이 돼? 

 

 

 게다가 포파이아가 어떻게 죽느냐 하면, (유부녀가)혼전 임신했던 첫 딸이 낳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죽은 다음, 다시 임신을 해 배가 부른 상태에서, 무슨 일로 꼭지가 돈 네로가 본처 옥타비아를 죽이고 들였을 정도로 죽자 사자 사랑했던 포파이아의 아랫배를 힘껏 걷어차, 바로 그 자리에서 푹 고꾸라지더니 죽고 만다(장출혈이지 뭐겠어). 이중창을 들으면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겠으나, 당시 네로가 저질렀던 미친 지랄들을 읽어보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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