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여주인 프랑스 현대문학선 24
레몽 장 지음, 이재룡 옮김 / 세계사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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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카페 주인이면 주인이지 왜 여주인이라고 쓰느냐. 이렇게 주장할 만한 등장인물이 이 책 속에 한 명 있다. 초등학교 교사이자 페미니스트 클라리스. 우리말에는 없지만 서양말엔 거의 성의 구분이 있어서 굳이 ‘여주인’이라 제목을 단 것 같으니 이해해주시라. 심지어 독일에선 정원사도 여자일 경우엔 “Die Gartnerin"이라고 쓰니까. 클라리스도 비슷한 발언을 한다. 남성명사와 여성명사가 합해서 복수가 될 때 왜 남성의 복수형으로 써야 하는지 따박따박 따지는 장면. 클라리스는 이이가 책의 남녀 주인공, 소설가 쟈송과 아름답고 농염한 카페 주인 아멜리를 물 먹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얘기해드리지.
 때는 1961년 초반 약 100대 1의 프랑화 평가절하가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서니까 그냥 60년대 초라고 해두자. 프랑스 남부 아비뇽 근처에 거의 완전한 시골 동네 ‘생플로렝’이라고 있었는데 ‘메일 광장’ 앞에 있는 카페의 유부녀 사장 아멜리가 무척이나 아름답고 관능적인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아멜리 스스로도 자신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생플로렝의 모든 남자가 쉼 없이 자신의 몸을 탐색하고 있는 것을 일찌감치 즐기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녀에겐 단 한 가지, 남편 뤼시엥이 아비뇽에서 사업상 금전적 곤란에 처해 있다는 것만 빼놓고 뭐 하나 아쉬울 것이 없는 상태. 단, 시골의 소박한 경제를 감안해서 그렇다는 말씀.
 이런 찰라, 마을과 좀 떨어진 외딴 언덕 위에 집을 짓고 일 년에 반 정도를 묵으면서 작품도 쓰고, 전원생활도 즐기고, 체력보강도 하는 소설가 쟈송이 등장한다. 이이는 좀 특이한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다. 아, 너무 간단하게 생각하지 마실 것. 뭐 변태, 이런 따위가 아니다. 인도나 중국, 그것도 아니면 티베트 정도에서 도나 기를 닦는 것과 비슷하게, 사진이나 초상화, 아니면 심지어 수시로 등장하는 TV 화면에 정신을 집중하면 해당 여성들과 성적 교감을 ‘홀로’ 느낄 수 있는 신비의 상태에 이른 인물이다. 이이가 하루는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카페에 들게 됐고, 위스키 한 잔을 주문해 아멜리로부터 한 잔 건네 마신 적도 있다. 물론 한 눈에 아멜리의 얼굴과 관능이 넘치는 육체까지 몽땅 훑었음은 당연하고, 아멜리는 모든 남자가 보내는 시선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쟈송의 눈길을 받은 걸,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아무리 도가 튼 인간이라도 눈빛 하나는 별 볼 일이 없었던 모양이다. 쟈송은 그녀의 초상화나 사진 하나 가지고 있지 못해 그의 특기인 건식 섹스, 즉, 드라이 섹스를 즐길 수 없어 전전긍긍, 소설의 초장에 아멜리한테 네 문장으로 된 편지를 보내고 만다. 요약해서, 하룻밤 동침해주면 10만 프랑을 내겠소.
 편지를 받고 기겁을 한 아멜리. 길 건너 어려서부터 친구인 필로멘에게 득달같이 달려가 편지를 보여주니까, 필로멘이 하는 말. “겨우 10만 프랑?” 아멜리가 다시 꽥 소리를 지르는데, “신화폐로 10만 프랑이야, 신프랑으로.” “뭐라? 그럼 몇 달 전의 1,000만 프랑?” 필로멘, 뒤집어진다. 지금 인터넷 검색해보니까 신프랑으로 10만이면 절하 전엔 1,193만 프랑이다. 지금 우리 돈으로 치면 얼마나 될까? 한 5억~10억? 2002년 기준 환율로 유로로 바꾸고, 40년간 이자율을 4%로 봐서 환율 1,300원으로 계산하니 약 1억 원이 나오는데, 40년간 인플레와 구매능력을 생각하면 아무리 적어도 5억 이상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그것도 시골 깡촌에서. 뭐라? 로버트 레드포드와 데미 무어 나오는 <은밀한 유혹>이 생각난다고? 그때 레드포드가 무어에게 하룻밤 동침의 대가로 제시한 돈이 1백만 달러. (IMF 이전이던)당시 환율로 약 8억 원. 비슷한 수준이겠다.
 하여간 아멜리가 필로멘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필로멘과 아멜리는 편지 보낸 작자가 누군지 알기 위해 또 우체국에서 일하는 친구 이르마에게 편지를 보여주고, 이번엔 정작 당사자인 아멜리를 빼고 필로멘과 이르마 둘이서 페미니스트 친구 클라리스와 상의하기에 이르는데, 클라리스가 생플로랭의 이장, 신문기자, 방송국 등등 모든 곳에 다른 것도 아니고 “너만 알고 있어”를 퍼뜨리고 만다. 다 그런 거지.
 김화영이 번역한 <책 읽어주는 여자>를 재미있게 읽고 딱 한 작품만 더 읽어보고 나서 장의 작품을 계속 읽을 것인지 정하겠다고 했는데, 앞으로는 눈에 띄면 사서 읽게 될 거 같다. 우리나라의 대표 불문학자인 김치수, 김화영, 최현무 등이 레몽 장을 사사했을 정도로 소설뿐만 아니라 제3세계에 프랑스 언어와 문학을 널리 알리는데 공헌한 불문학자이기도 하단다. 좀 근엄할 거 같이 생긴 외모지만 그가 쓴 소설(이래봐야 겨우 이제 두 편이지만)을 읽어보니 참 재미있다. 곳곳에 웃음 코드가 숨어 있다. 근데 이게 서양 사람들(특히 잉글랜드 인간들)이 쓴 희극을 읽으면서 느껴야 했던 어색함과 달리 책을 읽으며 킥킥거리는데 불편함이 없게 자연스레 웃긴다.
 이 책은 분명히 소설가 쟈송이 10만 프랑으로 아멜리의 섹스를 사려 제안을 한 것을 다루고 있으나, 이 행위를 매매춘으로 이해하는 건 명백하게 잘못이다. 그럼 이게 몸을 팔라는 제안이지 뭐냐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 동침해주면 10만 프랑을 주겠다는 건 맞지만, 누구도 몸 파는 여인에게 하룻밤에 10만 프랑을 주지는 않는다. 그럼 뭐냐고? 내가 그걸 가르쳐드리면 벌써 인간 됐게? 헌책방에 가시면 구할 수 있으니 직접 확인하시라. 시대 비평적이기도 하고, 궤변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레몽 장의 익살일 수도 있으며, 특히 지금 하는 내 말이 몽땅 거짓일 수도 있으니 주의하시는 게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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