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장 연극과인간 중국현대희곡총서 5
샤오홍 지음, 오수경 옮김, 티엔친신 / 연극과인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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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 소설을 희곡으로 각색한 티엔친신. 한문으로 쓰면, 전심흠田沁鑫. 옥편 찾았다. 심沁. 스며든다는 뜻. 흠鑫은 내가 빌어먹고 사는 회사 동네의 중국음식점 이름에 같은 한자가 있어 벌써 전에 옥편 찾아본 글자. 기쁘다는 뜻. 그래 ‘전심흠’은 기쁨이 스며든다는 이름이다. 발음은 모르겠고 뜻이 참 좋다. 그러나 작품의 내용은 그러하지 않다.
 제목부터 생사장. 나고 죽는 마당이다. 1930년대 초, 흑룡강성 하얼빈 인근의 농촌을 무대로 해서 지주와 소작인, 소작인끼리의 서열과 충돌, 거기다 본격적으로 중국 침략의 기치를 올린 일본군과 앞잡이, 이들이 만들어내는 생로병사의 한 판 마당이다. 원작소설의 번역본은 <생사의 장>이란 제목으로 시공사 세계문학의 숲 시리즈에서 벌써 간행했으며 독자들의 평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조삼과 억척네 (자오싼과 왕씨), 그리고 어여쁜 딸 금지(진즈) 가족은 동네에 딱 한 마리 있는 소를 가진 집으로, 그 덕에 형님으로 추앙받고 있다. 반푼이(얼리반)와 곰보댁, 건장한 아들 성업(청예) 가족은 부모의 정신상태와 외모로 가장 낮은 서열의 소작인(괄호 안은 샤오홍의 작품을 번역한 책에서의 이름이다). 성업은 금지를 자빠뜨리는 데만 열심을 쏟아 드디어 딱 두 번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덜컥 애가 들어선 상황. 조삼과 억척네한테 얘기했다간 금지의 다리몽둥이가 부러져나가고, 잘못했다간 성업이 골로 갈 수도 있어서 진퇴양난의 벼랑에 서 있다.
 별개로 지주 ‘둘째나리’가 소작료를 심하게 올리려 눈알을 벌겋게 물들이고, 결코 요구를 수용할 수 없는 소작인들을 대표해, 조삼이 둘째나리를 죽여 버리려 낫을 들고 침입해 그를 향해 내리쳤건만, 죽은 건 둘째나리가 아니라 때마침 담을 넘은 도둑. 다시 등장한 나리 하시는 말씀이, 내 집 담을 넘은 도둑을 때려죽인 건 참으로 장한 일이지만 사람을 죽인 것 또한 사실이니 너도 죄를 목숨으로 갚아야 하리라. 이에 처음엔 나리를 죽이려 했건만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걸 알게 된 조삼이 나리에게 무릎을 꿇더니 당국에 선처를 빌어달라고 싹싹 빈다. 남편의 못난 모습을 보고 가슴에 천불이 난 억척네는 농약 한 사발을 벌컥벌컥 마시고 죽어버린다.
 와중에 태를 품은 금지와 성업은 타지에 나가 돈을 벌기로 하고 가출을 해버렸지만 토굴 속에서 몇 밤을 지내지도 못한 채, 성업은 항일 의용군으로 끌려가고, 금지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사산을 한다. 여기에 또 일본군이 마을로 들어와 밥을 얻어먹고 곰보댁을 윤간하는 등 정신없이 돌아가는 중국 현대사, 그것도 일본군의 가장 앞에 섰던 만주국 일원의 한 촌 마을에서 벌어지는 잔혹극이다.
 각색자는 제목처럼 생사, 낳고 죽음. 여기에 늙어감과 병듦은 포함해 생로병사를 곳곳에 배치했다. 생로병사, 어느 하나 쉽고 가벼운 것이 있겠는가만, 작가는 이렇게 노래한다.

 

 생. 하느님이 밀가루 반죽 주물러서, 켜켜이 부풀린 찐빵처럼 한 시루 두 시루 쪄서 세상에 내보내는 거지.
 로. 뻣뻣한 밀가루떡 같고, 늙은 황소 힘줄 같아, 염라대왕 외엔 아무도 씹어 먹을 수가 없다는 거지.
 병. 몸뚱이는 망가져 가는데, 마음만 살아가지구, 짐은 남한테 떠넘기구 이부자리만 지고 있는 거지.
 사. 눈 허옇게 뒤집고 다리 벌렁 들고 나자빠지는 거지, 저승에 가면 아무것도 들추지 마셔, 허 참, 확실히 죽었지?

 

 극의 전반은 이런 생로병사의 한 평생을 중심으로 하다, 후반엔 적극적으로 일본군과 싸워 죽고 죽이는 것으로 변한다. 그리하여 완전히 초토화된 중국 북방의 한 모습. 그래도 여전히 새로운 생명은 태어나고, 늙어가고, 병들고, 죽어가는 대륙의 만주족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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