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0
뮤리얼 스파크 지음, 서정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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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소재의 마샤 블레인 여학교. 19세기 중반 에든버러에 제본업으로 돈을 많이 벌어놓고 죽은 남자의 과부가 있었는데, 이 과부로 말할 거 같으면 가리발디를 열렬하게 추종하는 민족주의자로, 스코틀랜드의 여성교육을 위하여 거금을 쾌척해 학교를 설립한 거였다. 학교의 중앙 복도에 여사의 늠름한 초상이 걸려 있어 해마다 창립자의 날(이라 표현했다. 개교기념일인지 여사님의 제삿날인지는 모르겠다)이 되면 초상화 아래에 있는 성서대에 꽂아놔도 오래가는 국화, 달리아가 놓였고, 바로 옆에 성서가 펼쳐 있어서 한 구절에 붉은 밑줄이 쳐져 있었으니, 바로 이랬다.
 “누가 어진 아내를 얻을까?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다.”
 쉽게 얘기해서 마샤 블레인 여학교는 현모양처를 양성하는 고루한 보수주의적 학교라는 뜻이다. 지금은 바꿨는지 모르지만 나 대학 다닐 때도 “현모양처를 양성”하는 일을 대학의 교훈에 집어넣은 여자대학이 몇 곳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 정말이라니까!
 소설의 시대적 무대가 1930년대이니 그럴 수 있다. 이 점은 양해하고 지나가자. 하지만 그래도 완고하고, 보수적이고, 이른바 왕당파 비슷한 그런 분위기의 학교라는 점. 세상은 참으로 다양하여 완고한 보수적 여학교에, 저학년을 담당하는 진 브로디 선생이라는 좀 진보 성향인 교사가 있었다. 이이는 예술이 모든 학문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고 아랫단에 철학, 제일 말단에 처량하게 앉아 있는 것이 과학이라 믿는 한편, 교과를 진행하는 방식 등을 감안하면 진보적 자유주의자로 얼핏 생각하게 만드는 교사였다. 학생들 입장에서 보면 참 재미있고, 매력 있어서 존경할 교사로 보이기 십상이며, 교사 역시 자기 마음에 드는 학생들을 따로 몇 명 모아 고학년으로 올라가도 계속 친하게 지내고 싶어 했다. 쉬운 얘기로 자기 병사들을 길렀단 것이지. 물론 우리의 진 브로디 선생과는 달리 의도가 조금은 순수하지 않은 교사로 탁월한 학생들을 자신이 관리하고자 하는 인물을 우리는 영화를 통해 한 명 알고 있다. 누구인가 하면,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에서 시작해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기어이 살아남는 순수혈통의 마법사 호레이스 슬러그혼. 가물가물하신가본데, 사진 한 번 보시면 기억날 듯.

 

 

 슬러그혼 교수는 사람이 좀 띨빵해 학생들에게 따돌림도 받고 그러지만, 브로디 선생은 학과 시간에 마치 정상 수업을 진행하는 것처럼 학생들에게 책을 반듯이 들고 있으라 하고, 별의 별 이야기를 다 한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휴전 1주일 전에 전사한 첫사랑 ‘휴’ 이야기, 작년에 휴가차 다녀온 이집트 여행, 가장 감명 깊었던 유적지로 이탈리아 이야기 등등. 지식주입을 강요하는 학교 정책에 반기를 드는 거 자체가 열 살 먹은 소녀들에겐 참신한 매력이고,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진정한 금과옥조인 걸 어찌하나. 그러나 선생은 자신의 팔로 단 몇 명의 학생만 거둔다. 소설은 몇 명의 ‘브로디 학생들’ 중에서 작은 눈 때문에 나중에 미술교사로부터 자신이 여태까지 본 가장 못생긴 여자 가운데 한 명이란 극언까지 듣는 ‘샌디’의 시선이 제일 중요하게 작용한다.
 샌디. 이름이 Sandy, 어째 좀 모래알처럼 서걱거릴 거 같지 않은가? 근데 총명한 학생이다. 이 학생이 만 8년 동안 브로디 무리의 우두머리 비슷하게 있으면서,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가며 동시에 브로디 선생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면서, 독자는 선생에 대한 진짜 모습을 조금씩 알게 된다. 선생으로부터 거의 습관적으로 질책과 무시를 당하던 메리는 불이 난 건물 복도에서 매우 당황한 채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질식해 불에 타 죽고, 관능적 외모로 천부적인 모델이랄 수 있는 예술 감각이 뛰어난 로즈는 돈 많은 평범한 남자와 숫처녀로 결혼해버리고, 선생이 가장 의지했던 샌디는 난데없이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더니 수도원에 들어가 수녀가 돼버렸다. 와중에 보수적인 마샤 블레인 여학교에서 미운털이 박혀 계속 해고의 위협 속에서 끝까지 견뎌내던 선생은, 자신의 군대 중 배신자 한 명의 고발로 인해 학교로부터 해고당하고 만다. 지극히 정당한 사유로.
 좀 이상하시지? 극히 보수적인 학교에 재직하며 총명한 학생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가는 진보적이고 예술지상주의적인 고상한 의식을 가진 교사가 해고라니. 그것도 정당한 사유라니. 진 브로디 선생도 사람이었던 것. 그도 사랑을 했고, 애인이 전사를 했고, 유부남을 사랑했을 수도 있고, 자기를 사랑하는 남자한테 (줄 듯 말 듯?)애를 먹이다가 기어이 다른 여자하고 결혼해버리게 만들고, 하필이면 전체주의를 사랑하게 되는 반면에 (걸스카우트의 전신인) 걸 가이드의 줄맞춘 행진은 경멸하고, 자신의 소망을 무리의 일원으로 하여금 대신 충족시키게 하고 싶어 하는, 그냥 인간의 모습도 분명히 있었던 것. 나는 지금 여기서 한 마디도 삐끗할 수 없다. 조금이라도 더 힌트를 주면, 재미있는 이 책을 정말로 읽으실 분에게 김을 확 빼버리는 일이 될 것이라서. 주인공 진 브로디 선생을 정의내릴 수 있는 딱 한 단어가 있는데, 차마 밝히지 못하겠으니, 궁금하신 분은 비밀 댓글 쓰시라. 그러면 가르쳐드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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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7 10: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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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7 11: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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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7 12: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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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7 13: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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