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염소를 몰고 올 수 있을까 민음의 시 210
심언주 지음 / 민음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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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는 게릴라처럼


 

 


 풀잎에 나뭇가지에
 눈알을 매달고 우글거리지.

 

 봄비는
 떼거리로
 묵은 플라타너스 잎을 에워싸지.

 

 무거워지는 플라타너스의 명분과
 빗소리와
 시간,

 

 나는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양철 지붕의 투덜거림을 세지.
 숱 많은 봄비의 머리카락을 세지.

 

 봄비는 한랭전선마다
 비누 냄새를 널어놓지.

 

 봄비는 아무한테나 시비를 걸고
 나는 민들레 곁에서
 젖은 머리카락을 한 올씩 뽑지.

 

 여승이 쪼그리고
 거울에 뒤통수를 비춰 보다가 웅덩이를 보다가

 

 한 솥 가득 끓고 있는 봄비.

 

 내 실핏줄이 터지고 있지. (전문)



 이 시가 시집 가운데 가장 좋아서 전문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시집 <비는 염소를 몰고 올 수 있을까>에서 유일하게 시를 읽으며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지는 시이기 때문이다. 첫 연부터 봄비가 풀잎에, 얇은 나뭇가지에 떨어져 방울방울 맺혀있는 장면이다. 그걸 시인은 “눈알을 매달고 우글거리지”라고 표현한다. 나름대로 참신한 시어다. 플라타너스는 잎이 널찍하다. 빗물이 눈알처럼 오글거리며 매달려 있지 않다. 빗물에 적셔져 있는 모습을 “봄비는 / 떼거리로 / 묵은 플라타너스 잎을 에워”싼다고 말한다. 이하는 읽는 분이 직접 상상해보시라.
 이 시 말고는 오리무중. 난감한 시어들이 넘실대 시인이 “시”의 옷을 입혀 주장하고 있는 바가 과연 무엇인지 도무지 추리할 수 없다. 이럴 때 시적 조예가 가비야운 독자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우린 평론가라고 부른다. 이 책 뒤편에 ‘김수이’라는 이름의 문학평론가가 “질문만이 존재의 가능하고 유일한 화법?”이란 제목으로 일반 독자는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심언주의 시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첫 부분 부터 역시 문학평론가라는 이름은 그냥 얻은 게 아님을 증명한다.
 “어떻게 하면, 언어의 안에서 또 밖에서 의미의 공회전을 멈출 수 있을까. 의미 없는 것, 의미로 환원될 수 없는 것, 의미가 모호한 것 들을 언어화하려는 가망 없는 작업을 의미에 대한 강박 없이 수행할 수 있을까. 언어 속에서 말할 때나 언어의 밖에서 침묵할 때, 의미 없는, 의미 아닌, 의미를 넘어선, 또 그 밖의 모든 언어를 우리가 갖지 못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서도 그 한계에 갇히지 않을 수 있을까.” (87쪽)
 라고 하면서, 의미의 언어화를 직업으로 삼는 시인 심언주의 첫 번째 시집 가운데 <시뮬레이션 - 새>라는 시의 한 부분을 인용한다.
 “나는 부서져 내린 언어의 등에 불을 지핀다. 부서진 언어들이 도르르 말린다. 번데기처럼 웅크린다.” (88쪽)
 나는 양 팔을 번쩍 들었다. 쏘지 마! 항복!
 백기투항이다.
 2004년에 등단해, 2007년 45세의 나이로 처녀시집 <4월아, 미안하다>를 펴낸 범띠 시인의 관심사는 이렇단다. (물론 시인 본인이 아니라 평론가의 의견이지만) 의미 없는 것, 의미로 환원될 수 없는 것, 의미가 모호한 것들을 언어화하려는 시도. 과거에도 이런 시도가 없지 않았을 것이긴 하나, 의미가 없는, 심지어 의미가 있다고 우길 수도 없는 것, 의미가 모호한 것들을, 언어화하여 기호로 표시하려는 높은 단계의 시적 실험에 나는 독자라는 이름의 관객으로 참여하고 싶지 않다. 의미 없는 것들은 “의미 없음”의 상태로 의미가 있으니 그걸 기호화 했겠지. 그러나 결과는 기호화한 문자들의 나열은 또다시 “의미 없음”으로 읽힌다는 것. 적어도 내가 읽기에 그랬다. 대표적인 시를 하나 인용한다.




 축구공이 날아가는 동안


 

 

 

 아침에 안 일어나면
 살았나 죽었나
 당신은 꽁치를 뒤집는다
 전복을 좋아하는 당신
 뒤집힌 옷을 뒤집어 세탁 바구니에 던지며
 겉과 속이 뒤집힐 때
 항복을 좋아하는 당신
 당신과 구운 생선의 눈동자를 흘깃거리며
 바둑을 두어도 괜찮을까
 뒤집어 놓은 풍뎅이가 날아갈 확률을 점치며
 축구공을 몰아도 괜찮을까
 흑, 백, 흑, 백이 견해를 바꿔 가며 날아가는 동안
 맨 앞에 선 사람부터 맨 뒤 달리는 사람까지
 발등과
 발바닥과
 눈동자는
 몇 번이나 뒤집힐까
 공이 골문에 다다르는 순간
 공은 당신의 눈치를 살핀다 (전문)



 평론가 ‘님’ 김수이는 이 시를 해설하며, “심언주는, 소통의 진정한 의미는 소통의 달성 여부가 아니라 소통의 열망과 실행 과정에 있다고 믿는다. 소통의 완성도와 순도로 말한다면, ‘당신’도 ‘나’도 용맹 정진하기에는 안팎의 여건이 녹록지 않다”(98쪽)고 말한다. 이 시를 읽으면서 당신도 평론가 ‘님’처럼 시를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의 불통, 소통을 위한 용맹정진도 불허하는 상태라고 이해할 수 있겠나. 평론가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님이 확실하게 증명된다. 나는 진정한 창작은 시나 소설을 쓰는 작가가 아니고, 작가가 쓴 시나 소설을 읽고 그걸 온갖 방식의 이야기로 재창조하는 평론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가끔 든다. 혹시 모른다. 날이 하도 더워 내가 미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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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1 08: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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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1 08: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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