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인간 연극과인간 중국현대희곡총서 3
궈스싱 지음, 김우석 옮김 / 연극과인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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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의 해설에 의하면 극작가 궈스싱은 대대로 이름난 바둑 명인을 배출한 기가棋家에서 태어나 이것저것에 관심을 기울이다가 결국 신문사 북경만보北京晩報에서 수습기자를 했는데, 이때 주어진 ‘업무’가 연극에 대해 취재하고 공연평을 쓰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궈스싱은 단기간에 수백편의 연극을 관람하면서 연극에 관한 모든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똑같은 직업 또는 업무를 한다고 해도 누구나 궈스싱처럼 단숨에 한 분야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제일 중요한 건 자신이 해야 하는 일과 궁합이 맞아야 하고, 재미있어야 하며, 지금 자신이 알고 있는 수준보다 조금이라도 더 깊게 알고 싶어 하는 끊임없는 호기심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 일이라는 것이 다 그렇다. 여기까지 이른다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관해서 확실한 관점, 이른바 일가견이란 것이 생긴다. 이쯤에서, 특정 노래를 자주 들으면 반드시 그 노래를 불러보는 것처럼, 이이도 어느 날 드디어 자신이 직접 희곡을 써보기에 이르렀다.
 사람에게 따라 간혹 주어지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행운이 이런 사람을 맞이할 때, 드디어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인데, 연극과 희곡에 대한 궈스싱의 경우, 그가 맞이한 행운은 당대 중국 최고의 연출가 린자오화였다고 한다. 린자오화는 주로 프랑스로 망명한 극작가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오싱젠과 작업을 하다가 이젠 궈스싱과 작업하며 그를 독려하여 드라마를 만들게 했다고 한다. 비록 나이차이가 16년이나 나지만 이 둘의 궁합은 저 춘추시대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의 예를 좇을 정도였다고 역자는 말한다.
 고백하건데, 난 가오싱젠의 <버스 정류장>을 대단히 재미없게 읽은 바 있다.


 (여기까지 쓴 시간이 2018년 7월 21일 오전 8시 조금 넘었었다. 이 날이 토요일. 더워도 너무 더워서, 이제 겨우 오전 8시 조금 넘어 아직도 한국방송에선 <남북의 창>이 한창인데, 그만 썼다. 엉덩이에 진물 날까 도무지 더는 못 앉아 있겠다. 책 읽는 방엔 에어컨이 없다. 여름 끝날 때까지 도무지 휴일엔 책을 읽지도, 독후감을 쓰지도 못하겠다! 지금이 23일 월요일 오전 열시. 시원한 사무실에 앉아 계속한다. 얼마나 좋은 회사인가. 하늘에 달린 시스템 에어컨에서 시원한 바람 쏟아지지, 하루 종일 놀다 퇴근하면, 내일 모레, 또 봉급날 돌아오지. 불평하지 말고 하여간 은퇴할 때까지 잘 다녀야겠다. 오해하지 마시라.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아 쫓아내기 좀 그런지 업무를 최소한으로 줄여주어 하루 종일 시간이 많은 거다. 만 32년 직장생활 중 제일 힘든 게 뭔지 아시나? 바로 ‘놀고먹는 거.’ 나도 나름대로 고생하고 있다. 웃어야 해, 말아야 해.)


 다시 이어 쓰자면, 문학적 소양이 별로 없는 내가 읽기에 (위대한 극작가)가오싱젠의 <버스 정류장>보다 <물고기인간>을 포함한 중국현대희곡총서의 작품들이 훨씬 편하고, 쉬워 좋은데, 그게 <버스 정류장>에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문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코드가 숨어있으나 그걸 찾아내지 못해 그런지 어쩐지는 모르겠다. <물고기인간 魚人>은 지극히 우화적이다. 가상의 호수 대청호에 ‘대청어’라는 신화적인 물고기가 산다. 일흔 살 먹은 노인 ‘낚시의 신’이 30년 전에 대청어를 잡다가 함께 낚시를 하던 큰아들이 호수에 빠져죽고 말았다. 대청어란 영물이 대청호에 아무 때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어서 30년에 한 번 보이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30년 전, 낚시의 신이라 불리는 노인이 화제의 물고기를 거의 잡아채는 순간, 갑자기 소리를 질러 물고기의 주위를 돌려버리는 바람에 대청어 대신 맏아들만 물에 빠져죽게 만든 위씨 영감도 중요 인물로 등장한다. 이이는 호수의 대청어에 대하여 애니미짐animism 비슷하게 숭앙하는 인물로, 대청어가 다시 나타나면 낚시의 신 영감도 돌아와 기어이 대청어를 죽일 수 있으리란 생각으로 30년 동안 호수에서 양어장을 운영하며 시기를 기다린 사람이다.
 물론 희곡에는 한 번도 대청어가 등장하지 않지만, 낚시의 신이라 일컫는 노인은 미끼 없는 빈 바늘과 자신이 직접 나일론 줄을 엮어 만든 낚싯대로 30년 만에 만나는 대청어와 자신의 인생 마지막 대결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하여 (30년 만이라니까)세대의 대결이 이루어지는데, 어찌 되는지는 알려드릴 수 없다. 다만 앞에서 이야기했듯 대단히 우화적인 장면이 연출된다는 것만 일러드릴 뿐.
 다른 문학작품 또는 문학 장르와 마찬가지로 희곡 또는 연극도, 읽고 보는 독자/관객이 어떻게 작품을 해석하는가, 느끼는가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물론 극작가, 연출가의 의도도 있겠지만 그들도 독자/관객이 받아들이는 방식까지는 좌우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더욱 그러하다. 나는 이 드라마를 다분히(또는 단순히) 우화적 관점에서 읽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 내 독법을 권하지는 않는다. 현대화에 따라 희생하는 자연으로 읽을 수도 있겠고, 해설에서 나와 있듯이 부조리극으로 읽어도 좋으며, 심지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는 말장난만 따라가도 왜 안 되겠는가. 마지막은 도저히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조리로 마감해버리는 건, 혹시 짓궂은 작가의 경쾌한 심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모두 여덟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중국현대희곡총서’를 읽어나가며, 내가 그동안 한국의 현대 희곡을 읽어본 적이 있었는지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최인훈 전집’에 실린 희곡집 <옛날 옛적의 훠어이 훠어이>에 실린 것들과 천승세의 <만선> 이후 단 한 편의 한국 현대 희곡도 읽어보지 않았다는 게 부끄럽다. 중국의 현대 희곡들을 읽는 일이, 앞으로 이쪽으로도 시야를 넓혀보리라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최인훈 전집에 있는 <옛날 옛적의 훠어이 훠어이>를 위에서 잠깐 얘기한 오늘, 최인훈 선생의 부고가 떴다. 나로하여금 소설읽기의 재미를 알게 해준 분 가운데 한 명이 또 저물었다. 아, 이런 날 소주 한 병 해야 하는데, 날이 너무 덥다. 아무쪼록 가시는 길, 평안하시라. (앞으로 줄창 삼복 더위에 제사 지낼 자손들이 조금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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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8-07-24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는 어떤 의미로든 이 나라에서 의미 있던 사람 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지요. 최인훈 선생의 죽음이 그 바람에 너무 조용히 다뤄진 것 같아서 어떤 면에서는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저는 대학 졸업논문을 최인훈으로 썼었거든요. ㅎㅎ 암튼 이런저런 이유로 어제는 저도 술 좀 마셨습니다. 더워서 소주는 아니고 맥주로요. ㅎㅎ

Falstaff 2018-07-24 16:02   좋아요 1 | URL
저도 특정 마트에서만 파는 진로소주 사다가 한 병 깠습니다. 제 좌우명이 ˝진로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여서 말입죠. 쿨럭.
저도 최인훈 선생의 전집을 싹 독파한 1인 가운데 한 명으로 당대 작가로 최인훈, 장용학을 최고로 아는 인종입지요. 다른 한 분은 (아, 죽긴 왜 죽어!) 거 참... 생각은 많지만 이야기하기는 좀, 그런 거 있잖아요. ㅠㅠ

잠자냥 2018-07-24 14: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문지에서 나온 <한국 현대 희곡선>이 저는 좋았습니다. 시대별로 엮어놔서 그 흐름을 살펴보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됐고요.

Falstaff 2018-07-24 15:18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저도 지금 희곡 책들 헌팅 중인데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