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희극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9
윌리엄 사로얀 지음, 안정효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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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영어 제목이 <The Human Comedy>. 이걸 ‘인간희극’으로 번역하는 건 난센스라고, 이 책의 역자 안정효도 뒤편의 작품해설에서 분명히 했다. 안정효는 제목으로 <인간극장>이 어울린다고 단정하며 심지어 “《인간희극》이라고 우리나라에서는 제목이 굳어진 《인간극장》은 1943년에 발표되었고”라 운운하고, 이걸 굳이 ‘인간희극’으로 번역하는 것은 “단테의 《신곡》이 Divina Commedia라고 해서 ‘하나님의 희극’이라고 번역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꼬았다. 그럼 역자인 안선생이 출판사한테 딱 부러지게 주장해 <인간극장>으로 제목을 바꾸지 말이야, 자기주장을 작품해설 자리에서만 불평하듯 설파할 건 또 뭐야. 문학동네를 필두로 다른 출판사에선 그냥 <휴먼 코미디>로 제목을 다는 경우도 많다. 그냥 그렇다는 것. 굳이 시비하지는 않겠다. (시비할 거 다 해놓고 이런 말을 또 써놓는 심보는 뭐냐고? 내 맘이지.)
 작가 윌리엄 사로얀은 아르메니아 이민자 가정의 아들로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단다. (이하 네이버 지식백과, ‘해외저자사전’에서 참고함) 세 살 때 작가인 아버지가 사망해 윌리엄과 동생들은 고아원에 맡겨져 5년 후에야 다시 가족이 함께 모여 살았으며, 이때부터 윌리엄은 학업과 가정생활을 이어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일을 닥치는 대로 해야 했단다. 이 모습은 방과 후에 전보배달원 일을 하는 주인공 호머 매콜리의 모습과 거의 유사하다. 또 작품 속에 아르메니아 이민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관계가 있을 듯. 아르메니아. 나는 아르메니아, 하면 위고의 책을 통해 알게 된 바르톨로메오가 떠오른다. 앙리 4세 시절에 가톨릭  교도에 의하여 벌어진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밤의 학살이 아니라, 당시 터키 영토의 일부였던 아르메니아에서 예수의 말씀을 전하다가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고문을 당하다 죽은 기독교 성인. 물이라고는 큰 호수 하나 있고, 사방이 육지로 막혀 바다 구경을 할 수 없는 작은 땅. 딱 거기까지인데 허튼 소리한다고 산채로 사람의 가죽을 벗겨 죽인 종족의 후손들도 글을 쓰고 소설도 썼다. 물론 그들 탓이 아니다. 유럽과 서아시아 일대의 고문/사형 방식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그냥 해본 얘기다.
 작가 윌리엄 살로얀은 이 재미난 책을 타쿠히 살로얀이란 이름의 누군가에게 헌정한다. 헌정사를 보면 아르메니아에 있는 자신의 선대의, 또는 현재 아르메니아에 살고 있는 누군가다. 영어로 된 책이 아르메니아 언어로 번역이 되어 그가 읽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고, 특히 이런 문구가 눈에 띈다.
 “이 이야기는 당신을 위해서 썼습니다. 당신이 이 작품을 좋아하기를 바랍니다. 특히 당신이나 우리 집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엄격함과 경쾌함을 융화시키며 가능한 한 쉬운 글로 이 작품을 썼습니다. (중략) 당신에게는 분명히 만족스러울 터이니, 그것은 이 작품을 당신의 아들이 썼으며, 그토록 좋은 의도에서 썼기 때문입니다.”
 일찍 작고한 아르메니아 이민자의 아들이 소설을 썼다. 아르메니아 출생일지도 모르는 작가의 아버지에게 헌정했을 수도 있고, 그곳에 사는 선조 또는 모든 아르메니아 사람을 대표하는 이의 아들이라고 자신을 지칭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책에서 작가는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일요일 오후에 자동차를 타고 간 피크닉 장소에서 눈에 띄는 이탈리아 사람들, 그리스 사람들, 세르비아 사람들, 아르메니아 사람들 모두가 미국인이라고.
 “미국인들이지! 그리스인, 세르비아인, 폴란드인, 러시아인, 멕시코인, 아르메니아인, 독일인, 흑인, 유대인, 프랑스인, 영국인, 스코틀랜드인, 에이레인, 다 꼽아보라구. 그게 우리 민족이니까.”
 이민자들로 구성된 위대한 아메리카 합중국이 자신의 모국이라고 반듯하게 선을 긋는 가운데, 불행하게 아시아 사람은 반듯한 선 안에 들어온 종족이 하나도 없다. 전쟁 중이니 식민지 조선을 포함한 일본인은 빼더라도(사실 독일인을 포함시켰으니 일본만 빼는 것도 말이 안 된다만)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인, 그에 못지않은 인도인, 인구에 관한 한 아쉬울 거 없는 인도네시아인, 인도차이나 반도 사람들에 관해선 입도 벙긋하지 않는다. 이해하자, 이해해. 책을 낸 당시가 1943년. 사로얀의 입장에선 거기에 흑인을 집어넣는 것도 쉽지 않은 용기였을 수도 있다. 근데 도시에서 가장 험악한 우범지대로 차이나타운을 꼽은 건 뭐지? 하여간 그렇다는 말씀. 왜 이리 유별나게 까탈을 잡느냐 하면, 정말 특별하게 착하고 아름다운 심성을 지닌 사람들만 등장시키는 선량한 보통 사람들의 집합체인 <인간희극>에서 가장 강조한 것 가운데 하나가 기독교를 믿는 미국인의 일반적 특성이기 때문.
 정말 읽어보시라. 유년, 소년, 청소년, 처녀총각, 결혼적령의 젊은 남녀, 기혼자, 중년, 장년, 노년 등 모든 등장인물이 딱 한 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착한 역할의 천사들이다. 악당 한 명조차 결국 다른 천사들에 의하여 용서를 받고, 강도로 등장하는 젊은이마저 삶의 곤고함에서 진짜로 믿을 만한 사람을 확인하기 위해 그냥 시험을 해봤을 뿐. 부유하고 훌륭한 심성을 지닌 젊은이와 가난하고 훌륭한 심성을 지닌 젊은이들이 등장해 만들어내는 전쟁 중 미국의 지방도시 이야기.
 캘리포니아 한 구석에 이타카라는 작은 도시가 있어, 도시 안의 아르메니아 출신 가정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따뜻하고, 선량하고 그래서 눈물깨나 빼기도 하는 이야기. 근데 이런 소설은 청소년기에 읽어야 좋을 거 같다. 아름다운 이야기에 감동하기엔 내가 너무 낡았다.


 * 이타카. 어디서 들어보신 도시 이름일 걸? 책의 주인공이 호머 매콜리. 이 아이가 열네 살이고, 네 살 먹은 참 괜찮은 유년의 동생이 있는데 이름이 율리시스 매콜리인 거. 아이의 특기이자 가장 즐겨하는 일이 이타카에서 벌어지는 온갖 기이한 일, 구경거리를 쫓아다니며 관찰하는 것. 작명부터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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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8-07-20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저는 낡았는지 아닌지 조만간 꼭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ㅎㅎㅎ

Falstaff 2018-07-20 16:06   좋아요 0 | URL
ㅋㅋㅋ
분명한 건, 이 소설이 독자를 울린다는 겁니다. 그만큼 아름답고 착한 소설이더군요.
전 착한 것들하고 좀 척이 져서요. ^^;;